우리의 맘을 가장 ‘지속적으로’ 파헤치고, 북돋고, 거름 주고, 김매었던 것은 무엇인가? 《논어》가 아닐까? 최근 100년 남짓 뜸하기는 했지만, 2000년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우리의 맘을 형성했던 게 《논어》이니 말이다. 이것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우리의 맘을 형성해 준 책은 없다.
--- p.8
캐순 :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를 첫소리로 뽑아 놓은 게 꽤 인상적이야. 《논어》는 유학儒學 책 중 최고잖아? 그런 책이 ‘기쁨’으로 막을 열어젖히고 있다는 게 의외거든.
범식 : ‘유학은 근엄하다’가 흔히 갖는 인상이어서 의외일 거야.
캐순 : 유학에 대해 갖는 선입관도 한몫했지만, 기독교나 불교와 견주어도 특이해. 불교는 “인생은 괴롭다”로 첫 운을 떼고, 기독교는 “인간은 죄인”이라고 포문을 열잖아?
--- p.19
뭉술 : 그래도 스승과 제자 사이를 ‘벗 관계’라고 말하기는 좀 떨떠름한데…….
샘 : 당연히 요즘 의미의 ‘벗’으로 보면 그렇지요. 요즘은 벗 사이의 주요한 특성을 ‘허물없음’으로 놓지만, 《논어》는 달리 말해요. 사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그 관계가 “오래되어도 존경함을 잃지 않는 것”이라 말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조선의 선비들은 친구 사이에도 서로 말을 높이고, 친구의 아이 때 이름은 부르지 않을 정도였어요. 사실 맹자는 성인聖人조차도 벗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 p.29
현재 자기가 이룬 것을 버릴 때만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소리네. 고양이든 누구든 자기가 가진 엄청난 재주를 버리기는 쉽지 않겠지.
--- p.46
샘 : 공자는 무엇이 되었건 개념을 정의하듯 말하지는 않았어요. 그 낱말이 포괄하는 지점들을 가리켜 보여 주었을 따름이죠.
캐순 : 그렇게 한 이유가 있나요?
샘 : 현실화하는 상태를 중시했기 때문인 듯해요. 가령 효를 살펴보면, 특정한 사람과 상황, 특정한 조건, 그때 어버이에게 필요한 게 무엇이냐에 따라 같은 것이라도 효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기에, 개념을 규정하는 대신에 구체적인 예시를 말했지 싶네요.
--- p.52
샘 : 사람의 관계는 크게 두 측면으로 이루어져요. 우선 서로를 하나 되게 하는 측면, 다음은 서로를 떨어뜨려 각자의 자리를 알려 주는 측면으로 이루어져요. 뒤엣것이 ‘예禮’이고, 앞엣것을 추동하는 활동이 ‘악樂’이에요. 《예기》에 있는 다음 말이 증거예요.
--- p.57
악樂은 천지 사이의 화합하는 것이요, 예禮는 천지 사이에 차례를 정하는 것이다. [천지가] 화합하므로 만물이 서로 감화·변화하고, 차례가 정해지므로 만물이 각자 별도의 영역을 갖게 된다.
--- p.58
우리 시대에 효와 충을 복종의 언어로 이해한 데는 크게 세 번의 왜곡이 있었어요. 중국의 한나라 때, 일제 강점기 때, 박정희 군사 독제 때가 그랬어요. 이 중에서 마지막이 결정적이에요.
--- p.89
뭉술 : 그대로 전하면 되는 거지 굳이 익혀야 할 필요가 있나?
캐순 : 익숙하게 하지 않으면 상황과 때에 맞는 변주가 불가능해. 앵무새처럼 반복밖에는 할 게 없어. 한마디로 고루한 거지.
범식 : “변주가 불가능”하면 창의적일 수 없어. 창의적 작품도 사실은 일종의 변주일 뿐이니까.
캐순 : 지금은 과거가 아니고 미래는 더욱이 과거가 아닐 테니까, 과거의 것을 가져와 전한다 하더라도 늘 새로운 상황과 때에 맞추어 변주해서 전해야 한다고 생각해.
--- p.103
따뜻하게 밥을 데웠으면, 이제 ‘새로이’ 한 상 차려야 할 터! 차갑게 얼어붙은 ‘옛 밥[故]’을 데워[溫] 김이 모락모락 나는 더운밥으로 만든 다음, 다른 시대를 살아야 할 학생들에게 ‘새로운[新]’ 상을 차려 그들에게 내어 놓을 줄 ‘알[知]’고, 그 어린 영혼들이 자라서 다시 그런 밥상을 내어 놓을 마음과 힘을 기를 수 있는 길을 ‘알[知]고 있는가?’
--- p.106
맞아요. 《좌전》에선 “농사철과 겨울은 피해야 한다.”고 했고, 《예기》에선 “백성의 노동력을 쓰는 것은 한 해에 사흘을 넘지 못 한다.”고 했어요.
--- p.118
자하가 물었다. “‘예쁜 웃음에 보조개, 아름다운 눈에 또렷한 눈동자, 하얀 바탕에 그림을 이루었구나’란 시가 있는데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그림 그리는 일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밑바탕을 잘 준비한 뒤의 일이라는 말이지.”
--- p.122
공자가 ‘어짊은 사람의 본성’이라고 여겼다는 것은 ‘어짊’을 예약禮樂보다 더 근본적이라 여겼다는 데서도 알 수 있어요. ‘어짊을 사람의 본성’이라고 여기지 않은 유학자는 찾기가 무척 어려울 정도예요.
--- p.133
캐순 : ‘나보다 못한 이와는 벗하지 말라.’를 문자 그대로 충실히 따른다면, 이 세상에 친구 관계는 있을 수 없어!
범식 : 나보다 낫다고 여겨서 내가 벗을 하고 싶은 사람은 있겠지. 하지만 나보다 더 잘난 그 사람은 자기보다 못한 나와는 벗하려 하지 않을 테니까.
뭉술 : 모순이네. 그런데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니면 벗 삼지 말라.’라는 말씀은 너무 편협하지 않니?
--- p.142
조상을 추모하는 자리는 나를 생기게 하고 키운 ‘생명의 유장함’을 느끼는 자리야. 그 많은 생명들이 떠받치고 밀어 올려서 내 생명이 여기 이렇게 우뚝 솟아 있다는 깨침을 가능케 하는 자리지. 내가 ‘두터운 덕’을 이 이상 사무치게 느끼는 때가 또 있을까?
--- p.150
결코 유학은 ‘자기를 닦는 것’ 자체를 목적이라 하지 않아요. 경지에 오른다 하더라도 ‘자기를 닦는 것’만으로는 반 일 뿐이라고 여기죠. 먼저 ‘수기修己’가 상당한 정도 이루어진 후에 국정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수기’가 ‘안인安人’의 바탕은 맞아요.
--- p.160
뭉술 : 나는 ‘도’가 여럿이 아니라, ‘하나’라는 게 이해가 안 돼.
범식 : 근원적으로 보면 도는 하나야. 하지만 중요한 게 있어. 도는 언제나 구체적인 상황에서 드러나. 도 ‘그 자체’가 현현할 수 없다는 소리야. 그래서 도는 하나이지만, 언제나 사람과 시대라는 스펙트럼을 통과해서 나타나. 나타날 때마다 다른 모습을 띠지 않을 도리가 없지.
--- p.165
큰 ‘악樂’은 하늘·땅이 가진 ‘화합’하는 특성을 한가지로 가지고, 큰 ‘예禮’는 하늘·땅이 가진 ‘조절’하는 특성을 한가지로 가진다. (《예기》 [악기〉)
--- p.173
범식 : 공손한 게 치욕스런 것일 수도 있나? “공손함이 예에 가까우면 치욕을 멀리할 수 있다.”는 걸 보면, 공손함이 치욕이 될 수 있다고 본 것 같아서 말이야.
캐순 : 공손함은 언제나 좋고, 공손하면 공손할수록 더 좋은가? 그러다 보면 내가 무너지는데도?
뭉술 : 요즘 벌어지는 감정 노동과 서비스는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해.
범식 : 교언영색을 권장(?)하는 사회니까!
--- p.185
올곧기만 하고 예禮가 없으면 목을 조르는 사람처럼 된다.
--- p.187
두 마음으로 쪼개져 있지 않고, 하늘이건 사람이건 원망하지 않는 이가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태도라는 거구나.
--- p.206
공자가 말했다. “유야! 너는 여섯 가지 덕이 가질 수 있는 여섯 가지 폐단에 대해 들어 보았느냐? “아닙니다.” “앉아라. 내 너에게 말해 주마. 어짊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리석게 되는 폐단이 있게 된다. 지식 갖추기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방탕하게 되는 폐단이 있게 된다. 믿음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잔인해지게 되는 폐단이 있게 된다. 곧은 것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목을 조르듯 하는 폐단이 있게 된다. 용맹함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난장판을 만드는 폐단이 있게 된다. 강함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바람만 잔뜩 들게 되는 폐단이 있게 된다. ([양화] 8장)
--- p.206
‘여절여차 여탁여마’에서 ‘여’를 줄이면 ‘절차탁마’잖아요. ‘절차탁마 대기만성’이란 말이 그렇듯, 쉬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여 큰 그릇이 된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공자와 자공의 문답에선 그 뜻만이 아니에요. ‘자른 듯 갈아 놓은 듯, 쪼은 듯 갈아 놓은 듯’ 시를 짓고 그것을 노래할 때, ‘그 자체’로 즐겁지 않나요? 그 순간 그 자체로 즐겁다는 뜻도 담뿍 담고 있어요.
--- p.222
유학은 한마디로 ‘수기안인修己安人’ 즉 ‘자신을 닦아서 다른 사람을 편안케 하는 것’이거든요. [학이] 편은 ‘수기修己’에 해당하고 [위정] 편은 ‘안인安人’에 해당하니까, 유학의 본령을 첫 번째와 두 번째 편에 배치한 거죠.
--- p.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