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슈, 지붕, 그리고 하얀 구두 신은 고양이」의 ‘나’는 아내로부터 버림 받고, 가족들에게까지 등을 돌린 채 지붕에서 생활한다. 지붕에서 우연히 비를 쫄딱 맞으며 앉아 있던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하는데, 웬일인지 고양이에게만은 유일한 친근감이 느껴진다. 어느 날 손등으로 낯선 티슈 한 장이 떨어지고, 그 후 티슈는 아파트 어딘가로부터 지속적으로 떨어져 내린다. 티슈에는 립스틱 자국이 묻어 있기도 하고, 절박한 메시지가 적혀 있기도 한다. 티슈에 대한 궁금증은 점점 커져만 가는데……
「대기자들」의 ‘나’는 썩은 사랑니를 발치하기 위해 치과에 간다. 대기실에서의 나의 순서는 네 번째. 그런데 웬일인지 예약 시간이 훨씬 지나도록 의사는 나타나지 않고, 간호사들은 무관심하다. 동요한 대기자들은 화를 내기도 하고, 병원을 그냥 나가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밖에 비가 온다거나 나의 순서가 몇 번째인가에 대하여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데……
「여름 팬터마임」의 ‘진’은 선배의 결혼식장에 간다. 진의 남자친구는 신부가 시인이라면서, 진에게도 얼른 등단을 하라고 종용한다. 진은 고교 시절 백일장에서 상을 탄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 상을 받았던 시가 비에 젖은 전단지 이면에 적혀 있던 시를 그대로 적어낸 것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시가 바로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한 대문호 파블로 네루다의 시였다는 사실을……
「엘로」의 마법사 ‘마르한’은 백마법(좋은 마법)이라고 믿었던 자신의 마법이 실은 흑마법(나쁜 마법)이 아닐까 의심한다. 기르던 고양이 흰둥이가 죽고 난 뒤부터다. 대마법사인 ‘나흡 자누얀’의 자문을 구하고자 길을 떠나지만, 나흡 자누얀은 이미 죽은 뒤였고, 그의 딸로부터 의심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법사가 해야 할 세 가지 일이 적힌 양피지를 얻는다. 양피지에 적힌 내용에 따라 다시 길을 떠난다. 우연히 낯선 소녀를 만나 여정을 함께하게 되고, 소녀로부터 갖가지 도움을 얻는다. 특히 세 가지 일 중의 마지막인 빗방울 언덕에서는, 내리지 못하는 빗방울을 따다가 목걸이와 귀걸이를 만들어 팔아 필요한 돈을 얻기도 한다. 점점 더 소녀에게 익숙해진 마르한은 소녀의 이름이 ‘엘로’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란다. 그것은 ‘불운의 덩어리’를 뜻하는 말이었는데……
「키즈스타플레이타운」의 ‘나’는 남편과 함께 ‘키즈스타플레이타운’이라는 이름의 어린이 실내 놀이터를 운영한다. 나는 어린 시절 친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았는데, 남편은 자꾸만 소아를 탐한다. 심지어 키즈스타플레이타운의 어린아이들까지. 그런데 웬일인지 나는 이러한 남편에 대해 함구한다. 그러던 중 나와 은밀한 관계에 있던 ‘태현’이 남편의 비밀에 대해 알게 되고, 급기야 알 수 없는 죽음에까지 이른다. 무언가 심증을 가지고 키즈스타플레이타운에까지 들이닥친 경찰은 나를 점점 추궁한다. 그날 새벽에 들어온 남편은 물비린내가 가득한 몸으로 거칠게 나의 옷을 벗기는데……
「낙하하다」의 ‘나’는 삼 년째 떨어지고 있다. 검은 공간을 그저 하염없이 떨어져 내린다. 어째서 떨어지고 있는지도, 혹시 위아래가 뒤바뀌어 상승하고 있는 건 아닌지도, 심지어 죽었는지도 모른 채 떨어지고만 있다. 애초 사람들이 말하는 빗소리도 실은 빗소리가 아니라 빗방울에 얻어맞은 물질의 소리라고 생각하며 떨어진다. 끊임없이 떨어지는 일이 지하철역에서 칠 번 출구의 방향을 묻던 아주머니처럼 외롭고 쓸쓸하다고 생각하는데……
「멸종의 기원」의 ‘나’는 죽어가던 할아버지로부터 ‘날씨표시상자’와 함께 ‘불행하라’는 유언을 얻는다. 할아버지의 유언대로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 양쪽으로부터 모두 잊혀진다. 나는 축구선수를 꿈꾸거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지만, 언제고 결국은 멸종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날씨표시상자의 탑에서 왕이 사라지고 여왕이 나타난다. 그리고 오랜 건기에서 우기로 바뀌어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