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에 온몸을 담가, 눈과 귀를 막고 물마개를 빼면 나도 이곳에서 물처럼 사라질까, 제발 사라지길 간절히 바라던 시절이 있었다.
--- p.13
새로운 환경에 이질감이 들고 낯선 상황 앞에서 혼란스러운 감정과 두려움을 느끼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가장 아늑하고 친숙한 집을 찾는다. 달팽이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등딱지에 집을 이고 사는 것처럼. 늘 나를 안아주는 따뜻한 사람과 공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 p.22
모두가 각자의 짐을 안고 있지만, 어디 남 힘든 게 자기 힘든 거랑 같나요. 내가 힘든 게 가장 힘든 거지. 누구에게는 어떤 일이 그저 먼지의 무게처럼 가볍게 느껴질지 몰라도 나에겐 우주만큼이나 큰 문제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 일에도 당연히 아프고 힘들 수 있습니다. 나의 힘듦을 타인과 비교하지 마세요. ‘내가 별거 아닌 일로 이렇게 힘들어 하나?’라는 생각이 오히려 나를 더 괴롭게 만들 거예요.
--- p.32
사람들이 나를 밟고 구겨도 나는 구겨지지 않으려는 용기. 누군가가 나를 찢고 무시해도 나는 망가지지 않으려는 용기. 결코 나는 구겨지지 않겠다는 마음. 나라는 종이에 구김을 펴고 나만의 색과 그림을 그려 넣을, 나는 구겨지지 않는 꿈.
--- p.92
참 오랜 시간 동안 엄마를 그리워했다. 나를 떠난 엄마가 아닌, 사랑으로 보살펴주는 엄마라는 존재가 늘 간절했다. 사랑 듬뿍 받고 자란 유년 시절이길 바랐다. 오랜 시간 우산도 없이 소나기를 만난 나는 참 많이 고장 나 있었다. 누군가에게 기대지도, 주는 마음을 받지도 못하는 사람. 그게 너무 어려워서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늘 내 현실을 원망만 했는데 눈 뜨고 주위를 보니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더라.
--- p.99
헤어진 이유를 몰라서 아직도 궁금해한다면, 당신은 그 이유를 몰라서 헤어진 것이다. 소중함을 잊고 상대를 당연하게 여긴 마음이 헤어진 이유조차 보이지 않게 눈을 가려버린 것이다. 부모 자식 사이도 당연하지 않은데 세상 그 어떤 관계가 당연할까.
--- p.117
좋아하는 게 싫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으면 그랬을까. 그것도 참 어려운 건데. 싫어져도 마냥 싫어하지만도 못하는 마음은, 간지럽지 않아도 벅벅 긁어 생기는 상처와 아픔일까. 그 속은 얼마나 문드러졌을까.
--- p.132
나무에 가지치기가 필요하듯, 삶을 살아가다 보면 관계를 내 손으로 잘라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그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다. 시들고 썩은 관계를, 나를 위해 잘라내는 것뿐이다. 내 나무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려면 결단력이 필요한 순간이 왔을 때 단단해져야 한다.
--- p.133
이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사소한 걸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 애정과 배려를 당연시하지 않는 사람,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 기다림은 짧고 만남은 긴 사람. 이 모든 게 흔하디흔하지만 동시에 최고인 것을 아는 사람.
--- p.154
우리는 헤어지지 말자. 다신 안 볼 것처럼 싸우고 등 돌리며 돌아누워도 같은 이불을 덮자. 말다툼하다가 서로 상처되는 말들을 내뱉어놓고도, 내가 받은 상처보다 상대가 더 아파할 걸 먼저 생각하는 지금처럼, 서로를 사랑하자.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포기하지 말고 안고 가자. 힘들면 힘들다고, 행복하면 행복하다고 서로에게 가장 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내가 언제든 안아줄게. 그렇게 우리 두 사람만큼은 오래오래 영원을 약속하자.
--- p.166
사랑하는 이에게 말을 건넬 때 단어를 고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단어의 미묘한 차이와 목소리 높낮이로 인해, 내 생각과는 다르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항상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뜻이 변질되지 않고 나의 진심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면,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단정히 가꾼 후 온몸으로 말해야 한다. 마치 첫 데이트를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장하듯, 옷을 골라 거울 앞에 서듯, 말도 가꿔야 한다.
--- p.172
사랑을 하면 자랑하고 싶어진다. 내가 이 사람에게 이렇게 가득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 나, 정말 행복하다고. 좋은 사람을 만나, 마땅한 사랑을 받고 있노라고.
--- p.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