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북촌리는 제주 4·3 사건의 상흔이 깊은 마을 중 하나다. 1948년 12월 16일 군경에 의해 24명의 주민이 희생된 것을 시작으로 이곳에서만 5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마을 인구가 약 1,500명이었다고 하니, 마을 사람 셋 중 하나는 죽음을 피하기 어려웠던 셈이다.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사람들은 강요된 침묵 속에 가족을 잃은 슬픔마저 가슴에 묻고 살아야 했다.
--- p.47, 「슬프도록 아름다운 마을」 중에서
터키석을 갈아 넣은 듯 아름답게 반짝이는 바다와 눈부신 하얀 모래, 그리고 이것들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짙은 갯바위의 조화가 가슴을 뛰게 했다. 제주에는 여러 해변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곳은 유독 순수하고 야성적으로 느껴졌다. 이러한 특별함은 해변 가까이 상업시설들이 들어와 있지 않아 만들어진 것이다.
--- p.54, 「순수하고 야성적인 바다」 중에서
여행 작가로 활동하며 가지게 된 고민이 있었다. 대중에게 여행지를 소개하는 행위가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아닐까, 그로 인해 여행지의 자연과 본래의 정취를 파괴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몇 년간 제주도의 변화를 지켜보며 생각이 달라졌다. 지속 가능한 관광을 위해 우선 관광객의 숫자를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절차가 정비되어야 한다. 지역만의 자연과 문화적 가치를 전달하는 작업도 병행되어야 한다. 공간
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여행자로 하여금 이곳만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작은 책임감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 p.63, 「달이 머무는 마을」 중에서
누구나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낯선 풍경을 대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높은 전망대에 올라 가장 먼저 도시의 규모를 가늠해보는 사람도 있고, 현지의 음식을 먹어보거나 언어를 배우며 지역의 문화를 익혀보는 이도 있으며, 어떤 사람은 자신만의 해석으로 대상을 기록하는 것에 집중하기도 한다.
--- p.110, 「탐라의 시작」 중에서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해변엔 잠깐 머물렀다 떠났다. 언제든 당도하고 또 떠날 수 있는 곳, 그래서 사람들이 바다를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사랑스러운 백사장을 품고 있는 마을이 궁금해졌다.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이어진 길을 걷자, 번화한 곽지리의 상가들이 사라지고, 금성리의 정겨운 돌담들이 나타났다. 이웃하는 두 마을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 인상적이었다.
--- p.203, 「닮지 않았지만 어울리던 두 마을」 중에서
중요한 사실은 몸의 절반이 새카맣게 타버렸음에도 나무는 남은 절반의 생명력을 부여잡고 기어코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쓰러질 듯 위태로운 몸 위에 새롭게 잎을 틔워낸 모습이 불타버린 터에 재건된 선흘리의 평화로운 풍경과 겹쳐 보였다. 나무가 내어준 짙은 그늘 아래에 앉았다. 온 힘을 다해 오늘을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 p.344, 「온 힘을 다해 피어나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