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문화권으로 이주하거나 상당 기간 거주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놀랍게도 반드시 등장하는 공통 주제가 있다. 바로 겉으로 보이는 유사성은 잠시 그곳을 거쳐 가는 여행객들이나 비즈니스 방문자들이 가진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른 문화권을 깊이 경험한 적 있는 이들은 흔히 “어떤 장소에 오랜 기간 살아보지 않고는 그곳이 나의 고향과 얼마나 다른지 절대 깨달을 수 없다.”고 말한다. 겉보기에 별다른 점이 없어 보이는 문화권일지라도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면 차츰 그곳에 속해 있는 사람들에게 내재된 심리적, 문화적 본성이 나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지 몰라도,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이방인은 결코 뚫을 수 없는 영구 동토층 같은 단단한 벽을 만나게 된다. 이방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 문화 속에 자신이 전혀 모르는 것 혹은 결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따라서 처음에 느꼈던 친숙함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상하이에 사는 중국인들이 구찌(Gucci)나 미쏘니(Missoni)를 입고, 프라다(Prada) 핸드백을 든다고 해서 그들이 뼛속까지 이탈리아인이라는 의미는 아니듯이 말이다.
---「서론」중에서
삶을 기능주의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방식은 미국 문화에 물질주의를 팽배하게 만든 것과 같은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삶을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방식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과거에 그랬듯이 오늘날에도 미국으로 이주해오는 많은 사람의 동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청교도와 미국에 정착한 초기 종교 집단의 핵심 교리가 삶에서 내실보다 형식을 중시하는 것을 죄악시했었다. 검소함, 기본에 충실함, 화려한 겉모습이나 꾸며진 것에 대한 의심은 오래전부터 미국 문화에 존재해왔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짧은 기간 안에 산업사회를 만들어야 했던 당시 상황 역시 사람들로 하여금 좀 더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삶을 취하도록 부추겼다.
---「1장 미국 : 변화를 만들다」중에서
아프리카의 환경은 극도로 통제하기 힘들지만, 이런 통제 불가능성이 다른 지역에서보다 직접적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는다. 이 사실이 아프리카의 문화적 DNA의 중요한 차원으로 이어진다. 즉,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태도다. 아프리카인들은 고도의 에너지와 생물학적 다양성, 예측 불가능하고 쉽게 다스릴 수 없는 환경이라는 난제를 접하며 자연스럽게 ‘일이 생기는 대로’ 한 번에 하나씩 처리하는 본능을 발달시켰다. 마구잡이식이 아니라 정교하게 미래를 계획하는 일은 세계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아프리카에서 더 어려웠다. 사람들은 운명이 정하는 우여곡절에 몸을 내맡겼다. 그리고 격렬하고 걷잡을 수 없는 자연 세계를 통제하려는 미천한 인간의 시도는 헛되다는 것을 마음속 깊숙이 받아들였다. 이로 인해 스토아주의적인 삶의 태도와 강한 회복력, 그날그날 융통성 있게 살아가는 천성이 발달했다.
---「2장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 자연의 그늘 아래에서」중에서
중동은 이 책에서 다룬 전 세계 그 어느 지역보다도 많은 양극성과 모순이 존재하며, 앞으로 그런 요소들은 더욱 복합적인 양상으로 우리 눈앞에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부분적으로 이것은 정착 농업 및 도시 문명과 사막 지역의 유목부족이 제각기 다른 심리적 동인을 낳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동 지역에서는 질서 있는 세계 안에 안주하는 것 대 불확실한 변화에 대한 도전, 독재정치의 수용 대 발언권의 추구, 자신의 부족에만 국한되는 소속감 대 다른 집단과의 공감 및 교감 등의 대립이 개인, 가족, 부족, 집단, 국가 단위에서 관찰된다. 이런 상반된 심리적 동인 간의 역동적인 긴장이 모든 차원에 존재한다. 이는 물론 창의성과 에너지를 낳기도 하지만, 외부인들의 눈에는 서로 다른 감정 상태의 갑작스럽고 빠른 변화가 혼란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앞서 말한 여러 동인은 중동인들에게 감정적 충동을 유발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중동 지역에서 정서가 다양한 형태로 격화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4장 중동 : 양면성과 불확실성」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