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는 내가 만난 첫 유기견이다.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만났다. 그렇게 될 일은 결국 그렇게 된다는 말처럼, 어떤 사소한 문제도 없이 내 삶에 스며들었다. 수지를 만나고 나는 억지로 걸어 잠근 내 마음속 문 하나를 열 수밖에 없었다. 삶은 아무런 인과도 없이 누군가는 사랑받고 누군가는 고통받는다는 걸. 어떤 동물은 따뜻한 집 안에서 맛있는 밥을 먹고 양껏 산책하지만 어떤 동물은 집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못하거나 위험한 바깥을 떠돌아야 하고, 난 그 문제들을 해결할 힘도 용기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렇게 문을 활짝 열고 나자 질문이 쏟아졌다.
--- p.24-25
알고 보니 고양이는 각자 특성이 다 다르다는 게 특성이었다. 인간하고 마찬가지다. 하나로 정의 내려지지 않는다. 그리고 쉽게 이해할 수도 없다. 나는 이제 사회생활을 하며 ‘인간이란 무엇일까’ 의구심이 들게 하는 일이 생기면, 집에 있는 요미와 쿠키를 떠올린다. 고양이도 그렇게 서로서로 다른데 인간은 더 하겠지. 슬프지만 자연스러운 일이야. 타인을 위해 내 특성을 바꿀 필요도, 나에게 맞추겠다고 다른 사람의 특성을 바꾸라 종용할 필요도 없다. 다른 건 다른 대로 남긴 채 대-충 같이 살아버리는 우리 고양이들처럼.
--- p.38
* 반려동물이 자존감이 낮다고 느끼나요?
* 반려동물을 다른 동물, 식물에 비유한다면 어떤 이미지와 가장 유사한가요?
* 반려동물을 볼 때 아련하게 떠오르는 느낌, 혹은 특별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나요?
잠깐, 이런 질문을 한다고…?
내 아이들의 자존감? 비슷한 동물? 아련하게 떠오르는 느낌? 낯선 질문들에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활발한 성격, 산책 때 보이는 행동 등을 막힘없이 써 내려가던 우리의 손이 멈췄다.
내가 쥬딩이와 수지, 부기와 아찌의 자존감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나? 아니, 없다. 그들을 다른 동물이나 식물에 비유하고 이유를 떠올린 적은? 역시 없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행동만이 아닌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는, 또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유도하고 가족의 심리까지 묻는 다채로운 질문지를 보며 많은 생각이 스쳤다. 그래, 가족이라면서 사람을 대하는 것만큼 아이들을 생각해 본 적이 없구나. 생각한다고 해도 ‘귀엽다, 사랑스럽다, 활발하다, 식욕이 많다’ 정도의, 1차원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구나. 더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깊이 생각할수록 더 편하고 수월하게 교감할 수 있을 텐데…. 조금 감동했고, 재미있었다.
--- p.129-130
사람은 마음이 힘들 때 자기 자신과 너무 밀착되어 있으면 안 된다고 들었다. 그럴 때 책이나 강연에서 자주 추천하는 것이 ‘타자화’다. 하지만 아무리 타자화를 해도, 여전히 인간인 나에게는 딱 인간을 대하는 만큼만 너그러워진다. 그럴 때 나 자신을 고양이라고 생각하면 웃기고, 기특하다. 살아 있기만 해도 고맙고 감사한 고양이인데, 뭘 이렇게까지 했어? 쿠키를 안고서 “엄마 엄청 대단하지?” 우쭐거려 본다. 요미 옆에 누워 “엄마 좀 쓰다듬어줘” 하고 내 머리 위에 손을 올린다. (그러면 진짜 쓰다듬어준다. 어디서 배운 거지? 이것도 대단하죠 여러분!?)
--- p.168
사실 집 안에서 용변을 보는 아이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외출해도 아이들 방광이 터질까 봐 초조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실제로 의사 선생님이 방광염이나 결석 등을 걱정해서 화장실 훈련은 꾸준히 하는 편이다) 결국, 중간에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음이 편안해짐과 동시에 짜증이 밀려온다. 너무 급할 땐 그냥 집에서 싸면 안 되겠니? 생각하다가도 다시 마음을 고쳐먹는다. ‘화장실은 밖에 있어, 밖에 있어. 이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자 습관이야.’
천재지변이 와도 나가야 한다. 비에 젖고 함박눈에 파묻혀도 나가야 한다. 아이들이 원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게 원하는 건 많지 않다.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그 애들의 바람을 채워주지 않는 건 게으르고 가혹한 일이다. 그리고 난 잘못한 만큼의 세월을 쥬딩이에게 갚아나가야 하고!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산책한다.
--- p.178
그리고 이제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심지어 내 부모님도 아직 살아보지 않은 나이에 쿠키와 요미가 먼저 다다른다. 나는 고양이들을 통해 나이듦과 노화를 배우게 될 것이다. 나는 몰랐다. 쿠키와 요미의 시간 흐름과 나의 시간 흐름이 이토록 차이가 난다는 것을, 그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았더라면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거란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몰랐어서, 몰라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앞으로도 미안하겠지만… 그 마음의 크기만큼 더 부지런히 배워가겠노라는 약속과 함께.
--- p.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