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다음 세대’를 비관적으로 전망합니다. 매년 교회의 학생 수가 급감하고 있고, 이제는 기독교 교육이 예전만큼 전수되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게다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절망감을 느낍니다. 점점 ‘다른 세대’가 되어 간다고 말합니다. 이런 날카로운 분석 뒤에는 언제나 무거운 책임론이 따릅니다.
그중 하나는 구시대적 프로그램이나 교재가 문제라는 겁니다. 계절에 맞게 옷을 바꿔 입듯 오늘날 청소년 교육도 시대에 발 맞춰 프로그램과 교재를 개발하고 흥미로움을 갖춰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부족한 온라인 사역이 문제라는 겁니다. 양질의 온라인 콘텐츠를 만들어서 미디어 세대를 사로잡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진단, 과연 맞을까요?
---「부탁해#2 “부모의 마음을 가진 스승이신가요?”」중에서
그리고 꼭 선을 넘습니다. “저는 우리 부서 목사님이 아니라 그 목사님이 훨씬 좋아요”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저는 점잖게 응대합니다. “너희 부서 목사님인 나를 먼저 좋아해 줘야지, 그렇게 말해서 되겠니?”라고 말합니다. 물론 마음속으로만 말입니다. 이 말을 입 밖으로 내었다가는 ‘왕질투’, ‘질투의 화신’ 등의 오명을 쓸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 그 순간 뭐라고 했다가는 아이들은 ‘에이 장난이었어요’라는 말로 빠져나가고, 저만 바보가 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장난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겉으로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지만 내면에서는 풍랑이 일 때가 있습니다. 가끔씩은 아이들의 입을 꿰매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부탁해#3 “아이들의 반응 앞에서 흔들릴 때”」중에서
회의감이 찾아온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먼저는 너무 빨라지는 ‘청소년 세대교체’ 때문이었습니다. 과거에는 학년과 성별이 달라도 그들만이 독특하게 공유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청소년 문화는 쉽게 규정하기 힘들어졌습니다. 갈수록 다양해지고 복잡해졌습니다. 매년 신입생으로 완전히 ‘새로운 인류’를 만나야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조금 적응할 때면 졸업입니다. 그리고 또 새로운 인류를 맞이합니다. 주도하기보다는 뒤따라가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빠른 청소년 세대교체가 깊은 피로를 느끼게 했습니다.
---「부탁해#4 “하나님의 마음이면 충분합니다”」중에서
사춘기가 응답이 없을 때라지만 또래끼리 있을 때는 굉장히 수다스럽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소그룹 시간에 말이 없던 아이들이 친구들과 있을 때는 말이 많은 것을 보면서 일종의 배신감도 들었습니다. 청소년을 만날수록 한 가지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사실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입을 여는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신뢰입니다.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속마음을 수다스럽게 늘어놓습니다. 신뢰는 함께 보내는 시간에 비례합니다.
---「청소년 교사의 속마음#1 “나 이대로 괜찮을까?”」중에서
[중1(14세) - 스파이더맨 “나는 누구일까요?”] 중학교 1학년생은 스파이더맨과 비슷합니다. 스파이더맨처럼 본격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합니다.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터널 속에 진입해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자기 존재를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이때 아이들에게 필수로 성경적인 자기 정체성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고,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이며, 그분의 소유된 백성임(벧전 2:9)을 전수해야 합니다.
중학교 1학년생은 또래 친구, 특히 동성 친구에 관심이 많습니다. 동성 친구를 통해 본격적으로 또래 집단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들을 움직이는 주된 동기는 동성 친구입니다. 교회에 동성 친구가 많으면 정착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소그룹 멤버를 동성으로 구성하는 것이 정착에 도움이 됩니다. 아이들과는 운동이나 대화를 통해 친밀함을 더하고, 약간 오버해서라도 환대하여 어색함을 덜어 내야 합니다.
---「부탁해#8 “내가 맡은 학년, 이렇게 해보실래요?”」중에서
청소년과 대화를 열어 가는 채널이 있다면, 대화를 망치는 실수도 있습니다. 이 실수는 교사가 자각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교사 편에서는 선의로 한 말이지만, 받아들이는 학생 편에서는 마음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물론 청소년에게도 옳고 그름을 가르쳐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화는 다릅니다. 대화는 동등한 상태에서 나눠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청소년은 훈계나 잔소리 정도로 듣습니다. 청소년과의 대화중에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네 잘못이야”, “왜 그것밖에 생각을 못해”와 같은 가치 판단은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선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꼭 해야 할 상황이라면 대화를 마치고 아이가 충분히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기회를 봐서 조심스럽게 꺼내야 합니다.
[선입견과 편견 가지기] 청소년에게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서는 온전한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누구보다 교사 자신이 알고, 학생이 압니다. 선입견과 편견이 대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해답을 제시하기] 대화를 하는 청소년은 대부분 공감을 원합니다. 해답을 제시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꼭 필요할 때만 그렇습니다. 모든 대화에서 해답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공감이 필요합니다
---「부탁해#13 “청소년과의 대화, 이렇게 해보실래요?”」중에서
답을 유도하거나 정답 맞추기 식의 닫힌 질문은 소그룹의 분위기를 딱딱하게 합니다. 물론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닫힌 질문이 주된 흐름이 되어선 안 됩니다. 이렇게 질문을 했더라도, 이어서 열린 질문으로 마무리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떻게 생각해?”, “왜 이렇게 기록되었을 거라 생각해?” 같은 질문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다음은 같은 요셉 이야기로 구성된 열린 질문입니다. ·요셉은 왜 17세부터 소개될까? ·형들이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야곱이 여러 아들들보다 요셉을 사랑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로 던질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요셉이 보디발에게 팔려갈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부탁해#15 “청소년 소그룹, 이렇게 해보실래요?”」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