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피라미드들을 왜 지었느냐는 질문에 대한 가장 단순한 대답은 파라오가 신성의 증표인 영원한 삶에 집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설계와 건축의 거의 모든 측면에서 피라미드는 이집트 신화와 상징적인 연관성을 지닌다. 완만하게 직선으로 상승하는 피라미드의 네 면은 비스듬히 비치는 햇빛을 모방한 것으로, 이집트 종교에서 태양이 지닌 중심적 위치를 보여준다. 건축물 자체는 시간이 시작되던 때 물로 뒤덮인 혼돈 속에서 솟아오른 태초의 둔덕을 표현 또는 재현한 것이다.
……오늘날 이집트 학자들은 피라미드가 단지 죽은 왕을 기리기 위한 건축물일 뿐만 아니라, 부활에 대한 총체적인 믿음을 나타낸 것이라고 본다. 이 기념비적인 건축물과 신전들과 그 주변의 땅에는 태양, 지평선, 범람, 태초의 둔덕, 왕의 부활이라는 개념이 모두 어우러져 있다.
오늘날의 상황에 비춰본다면, 미국에서 점점 논란이 되고 있는 대통령 도서관이 이와 유사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왜 일부 미국 시민은 단지 대통령의 문서를 보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막대한 비용이 드는 거대한 건축물을 짓는 데 수백만 달러를 기부할까? ……이 새로운 공물은 제한적이나마 사회의 어떤 목적을 만족시켜주고, 그 사회의 부와 사회적 전설과 후손에 대한 기대를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피라미드를 짓던 이집트인의 행동과 비슷한 것이 아닌가 싶다. --- pp.133~134
문학에 등장한 최초의 초영웅적 인물은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오래된 서사시로 꼽히는 《길가메시》에 나오는 영웅(혹은 반영웅)이다. 그 주인공은 길가메시라는 이름의 반신반인 왕으로, 놀라운 힘과 대단한 자만심을 지녔다. ……
우루크의 강력한 왕인 길가메시는 자신이 3분의 2는 신이고 3분의 1은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뛰어난 운동 선수이자 변강쇠로 완벽한 육체적 표본인 길가메시는 우루크의 젊은이들을 동원해 성벽을 쌓게 하고, 봉건 시대 유럽까지 계속 이어진 ‘초야권’이라는 관습에 편승하여 도시의 모든 처녀를 상습적으로 범한다. 길가메시의 강요를 더 견딜 수 없게 된 우루크 백성들은 신들에게 도와달라는 기도를 하게 되고, 신들은 엔키두라는 괴물을 만들어 길가메시와 대결하게 한다.
……길가메시는 야수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는 그 괴물과 싸우러 가기보다는 이슈타르 신전의 매춘부인 샴하트에게 도움을 청해 숲으로 가 엔키두를 순하게 길들이도록 한다. ……샴하트는 열정적이고 선정적으로 이 야만인에게 사랑의 기술을 가르쳐준다. 7일 동안 조금도 쉬지 않고 격렬하게 섹스를 한 뒤에야 엔키두는 순하게 길들여졌다. ……
모든 처녀가 결혼하기 전에 길가메시와 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엔키두는 분노에 차서 백성에게 많은 욕을 먹고 있던 왕에게 도전하러 간다. 둘은 난투극을 벌이다가 서로 친구가 될 운명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신들의 도움을 받아 숲의 괴물을 죽이고 그 목을 베어 뗏목 위에 싣고 우루크로 돌아간다. --- pp.200~202
탁 트인 장소에 원형으로 배열돼 있는 이 거대한 돌들은…… 아서 왕의 전설에 나오는 마법사 멀린이 만든 것일까? ……이것은 ‘뉴 에이지’ 진영에서 인기를 끈 한 가설과 맥을 같이하는 개념인데, 그 가설에서는 멀린도 드루이드였기 때문에 스톤헨지는 드루이드가 제물을 바치던 일종의 거대한 제단이었다고 주장한다. 드루이드가 스톤헨지를 숭배 의식을 거행하는 최적의 장소로 여겼다는 것은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전문가의 견해에 따르면, 스톤헨지는 켈트족이 영국에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 물론 그들이 영국에 온 뒤에 켈트족 드루이드가 스톤헨지를 종교 의식을 거행하는 장소로 이용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을 세우지 않은 것만큼은 거의 확실하다. 최근에 발견된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이 고대 기념비는 기원전 3300년경부터 시작하여 기원전 1500년경까지 거의 2000여 년에 걸쳐 크게 세 단계를 거치며 세워졌다. 원형으로 늘어선 유명한 돌들은 기원전 1800년부터 기원전 1700년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데, 켈트족은 기원전 350년에야 영국 제도로 건너왔다. 물론 일부 학자는 켈트족이 건너온 시기가 기원전 700년경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스톤헨지가 세워진 시기보다는 훨씬 훗날의 이야기다. --- pp.357~358
기원전 800년에서 기원전 500년 사이에 우파니샤드가 도입되면서 인도 신화의 정신 세계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고대의 많은 신은 브라만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축소되고, 사람의 영혼을 절대신인 브라만과 연결하기 위해 죽음과 재탄생, 환생의 끝없는 윤회에서 벗어나는 데 중점을 두게 되었다.
이러한 우주적인 도약이 일어날 수 있었던 데에는 우파니샤드가 도입한 또 다른 개념의 도움이 있었다. 그것은 카르마(karma), 곧 업(業)이란 개념으로, 사람의 모든 행동은 그 사람의 영혼이 다음 번에 어떻게 환생할지에 영향을 준다는 인과응보의 원리를 말한다. 올바르게 살아야 사후의 행복한 삶을 보장받는다는 고대 이집트인이나 그리스도교의 개념과는 달리, 인도인의 카르마 개념에서는 한 번의 생애를 올바르게 산다고 해도 그것은 그 영혼이 다음 번 환생 때 좀더 나은 상태로 태어나게 작용하는 데 그친다. 또 한 번의 생애를 잘못 산다 하더라도 곧장 영원한 저주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더 낮은 상태의 존재로(심지어는 동물로) 환생할 뿐이다. ……
이렇게 훨씬 추상적인 종교 개념이 확립되고 나서도, 이전의 제례 의식은 없어지지 않고 다르마(dharma), 곧 법(法)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된 새로운 질서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다르마는 진리와 정의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도덕적, 정신적 ‘의무’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개념으로 기본적으로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을 의미한다. 인도인은 다르마를 지켜야 자연계가 리듬을 유지하고, 사회에 질서가 잡힌다고 믿었다. --- pp.418~149
아프리카 전설들에서는 대개 신들이 인간에게 보내는 중요한 소식을 동물 전령이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바람에 ‘뒤죽박죽이 된 메시지’가 세상에 죽음을 가져왔다고 설명한다. 창조신이 사람들에게 새를 보내, 늙으면 살갗을 벗어야 한다는 말을 전하게 한 이야기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 메시지를 전달하러 길을 떠난 새는 도중에 죽은 동물을 먹고 있는 뱀을 만난다. 새는 고기를 일부 얻어먹는 대가로 뱀에게 허물을 벗으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렇게 해서 뱀은 불사의 비밀을 얻었지만, 정작 그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못해 사람은 죽음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새는 그 벌로 끔직한 병에 걸렸다. 종종 나무 꼭대기에서 새가 고통스럽게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한다.
줄루족의 전설에도 죽음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죽음의 소식을 전달하는 도마뱀이 영원한 삶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카멜레온보다 먼저 도착했기 때문에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한다. 카멜레온이 도착했을 때에는 사람들은 이미 도마뱀이 전한 소식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 p.517
…… 군대의 주목적은 이른바 ‘꽃의 전쟁(la querra florida)’을 벌이는 것이었다. ……‘꽃의 전쟁’은 아스텍족과 다른 부족들이 맺은 협정에 따라 제물로 바칠 포로를 잡기 위해 벌인 가짜 전쟁을 말한다. 정해진 날에 양측에서 젊은 전사들이 나와 자신의 용맹성을 증명하고, 제물로 바칠 포로를 잡기 위해 싸웠다.
아스텍인은 전쟁을 신에게 바칠 포로를 잡기 위한 종교적 의무로 여겼고, 신에게 피를 바치는 것을 신성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의 전투 방식은 적을 죽이기보다는 사로잡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주요 무기는 날카로운 흑요암 조각을 박은 나무 곤봉이었는데, 이것은 상대를 완전히 죽이지 않으면서 무력화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꽃의 전쟁(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전쟁의 꽃’이라고 불렀다)에서 얻은 전리품은 큰 의식 때 신에게 바쳤다. 특히 사람의 심장을 꺼내 우이칠로포치틀리와 그 밖의 신에게 바쳤다. 세계가 이미 네 차례나 파괴되었다고 믿은 아스텍인은 신에게 이렇게 제물을 바치면 우주의 종말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장을 꺼내는 섬뜩한 시술은 사제들이 담당했는데, 살아 있는 사람의 가슴을 갈라 심장을 끄집어냈다. 마야인과 마찬가지로 아스텍인도 신이 힘을 계속 유지하려면 사람의 심장과 피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제물로 바쳐지는 사람은 신을 상징적으로 대표한다고 여겨져, 죽기 전에 멋진 옷을 입고 하인들의 시중과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 pp.581~5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