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밧’의 ‘밧’이 ‘남편’의 뜻이기에 이는 ‘아내’를 뜻하는 ‘가시’와 ‘남편’을 뜻하는 ‘?’이 결합된 합성어가 된다. 그러므로 ‘가시밧’은 정확히 ‘婦夫’의 의미가 된다. (…) 특이한 것은 남녀와 관련된 단어를 합성하는 데 여성 관련 단어를 앞에 내세운 점이다. ‘부부(夫婦)’를 뜻하는 중세국어 ‘남진겨집(?남진계집)’이나 한자어 ‘부부(夫婦)’ 등은 남성인 남편 관련 단어가 앞에 오고 있다. ‘가시밧’이 여성 관련 단어를 앞세운 이유는 이것이 부부에 대한 낮춤말이어서인 것으로 추정된다. ‘연놈, 비복(婢僕)’ 등에서 보듯 욕이나 나쁜 의미를 갖는 단어의 경우에도 여성 관련 단어가 앞에 온다. 단어 만들기에도 남존여비(男尊女卑) 의식이 깊숙이 박혀 있음을 볼 수 있다.
--- p.19
16세기 이전만 해도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개골개골’로 들리지 않은 듯하다. 왜냐하면 16세기 이전에는 ‘개구리’가 아니라 ‘머구리’라는 단어가 쓰였기 때문이다. ‘머구리’가 15~16세기 문헌에 다수 나온다. ‘머구리’는 ‘개고리’가 등장하기 전에 ‘개구리’를 뜻하던 단어이다. 이것은 ‘머굴’에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 ‘-이’가 결합된 어형인데, ‘머굴’ 또한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상징한 의성어이다.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머굴머굴’로 들렸기에 그 대상을 ‘머구리’라고 명명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시대에 따라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머굴머굴’로 들리기도 하고, ‘개골개골’로 들리기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같은 울음소리라도 듣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도 들리고 저렇게도 들릴 수 있다.
--- p.30~31
어떤 과정을 거쳐 ‘아치설’이 ‘까치설’로 변했을까?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다. 언중이 ‘아치설’의 참뜻을 잃어버린 뒤 그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에서 ‘아치’와 우연하게도 음상이 유사한 ‘까치’라는 단어를 연상하여 임의적으로 결부시켰기 때문이다. 마침 ‘까치’는 지혜와 부지런함을 갖춘 새로서 ‘설날’이 지향하는 이미지와 맞아떨어지기에 ‘아치설’을 의심 없이 ‘까치설’로 바꾸어 불렀을 것이다. ‘아치’가 ‘까치’로 변한 단어에는 ‘까치설’ 말고도 ‘까치고개, 까치밭, 까치산’ 등과 같은 지명도 있다. 이들에 대해서는 ‘까치〔鵲〕’가 많이 살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실제 ‘까치’와는 무관한 지역이 대부분이다. 본래 작은 규모의 지역이어서 ‘小’라는 의미의 ‘앛-’과 관련된 어형이 결합된 것인데, 이것이 우연히 음이 비슷한 ‘까치’로 변한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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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어 규칙을 어긴 새말이 사회성을 획득하여 일상어 범주로 들어와 안착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이와 같은 단어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풋내기’도 이와 같은 예에 속한다. ‘풋내기’는 ‘풋-’이라는 접두사와 ‘-내기’라는 접미사가 결합한 형태로서 우리말 조어 규칙에서 벗어난 것이지만 지금 표준어로 인정을 받고 있다. 조어법을 어긴 ‘풋내기’가 사회성을 얻어 표준어로 대접을 받고 있다면 같은 성격의 ‘새내기’가 표준어로 대접을 받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그리하여 현대국어 사전에서 ‘새내기’를 표준어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예외는 언제나 또 다른 예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실제 ‘새내기’에 힘을 얻어 ‘헌내기’라는 희한한 단어가 만들어져 쓰인 적이 있다. 군대에 갔다가 대학에 돌아온 ‘복학생’을 한때 대학가에서 그렇게 불렀다. ‘헌내기’가 세력을 잡지는 못했지만, ‘새내기’와 같은 기형적 단어를 방치한 결과 같은 부류의 단어가 또 생겨난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 p.211~212
‘얌체’는 한자어 ‘염치(廉恥)’에서 출발한다. ‘염치’는 “염치와 담쌓은 놈”, “염치를 차리다” 등에서 보듯 ‘체면과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염치’는 ‘얌치’로 어형이 변하는데, 이때만 해도 의미상의 변화는 없었다. ‘염치’와 ‘얌치’는 미세한 어감(語感) 차이만을 보이면서 지금까지 공존하고 있다. ‘염치’에서 변한 ‘얌치’는 다시 ‘얌체’로 변한다. 제2음절의 ‘치’가 ‘체’로 변하여 어형이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염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을 띠어 그 의미도 달라졌다. ‘체면과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는 추상적 의미가 ‘그 마음과 관련된 사람’이라는 구상적 의미로 바뀐 것은 자연스럽지만, 긍정적인 의미가 부정적인 의미(곧 ‘염치가 없는 사람’)로 바뀐 것은 아주 특이하다.
--- p.286~287
‘오라질’은 이들 가운데 형벌과 관련된 욕이다. 형벌과 관련된 욕에는 ‘오라질’을 비롯하여 ‘경을 칠’, ‘난장맞을’, ‘오사랄’, ‘육시랄’, ‘주리를 틀’ 등도 있다. ‘오라질’은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오라를 질 놈(년, 것)’이라는 긴 욕에 닿는다. ‘오라를 질 놈(년, 것)’이 줄어들어 ‘오라질 놈(년, 것)’이 되고, ‘오라질 놈(년, 것)’에서 후행 요소 ‘놈(년, 것)’이 생략되어 ‘오라질’이라는 욕이 만들어진 것이다. ‘오라를 질’의 ‘오라’는 예전에 도둑이나 죄인을 묶을 때 쓰던 ‘붉고 굵은 줄’이다.
--- p.313~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