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 배우가 연극의 꽃인가요?
노연출 : 그래, 너희가 연극의 꽃 아니냐. 조명 아래서 빛 받는 것도 배우고, 마지막 박수 받는 것도 배우잖아.
평론가 :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예술가죠. 창조자이면서 동시에 창조되는 대상은 이 세상에 배우밖에 없어요.
기획 : 그게 무슨 소리에요?
평론가 : 배우는 자기 몸으로 예술을 하잖아요. 그러니까 다른 예술가들처럼 창조만 하는 게 아니라 창조된 작품이기도한 거죠.
노연출 : 그런 건 말장난 좋아하는 학자들이나 하는 소리고, 괴물이지 뭐.
여배우 : 저 여자 누구야?
배우1 : 평론가래
여배우 : 그래? 어쩐지. 난 저런 사람들 싫더라. 말하는 게 좀 이상하지 않아?
배우2 : 야, 듣겠다.
여배우 : 선배님, 배우가 연극의 꽃이래요. 난 지금부터 꽃이야.
배우2 : 꽃은 꽃인데 생화가 아니라 조화지.
여배우 : 그래 향기 없는 꽃이다. 언니, 여기 소주하고 잔 더 주세요.
--- p.333 (《카페 신파》 중에서)
여자 : (식탁 위에 하얀 접시를 올려놓고 하트 모양으로 그 위에 케챱을 잔뜩 뿌린다) 자기, 볶음밥 좋아하잖아. 내가 케챱을 듬뿍 뿌려줄게. 케챱을 뿌려야 완성되는 거야. 핫도그, 햄버그, 볶음밥.
남자 : 첼리스트에게 가장 치명적인 게 뭔지 알아. 손가락 부상... 손이 마비를 일으키거나 왼 손가락 하나만 잘려 나가도 현을 잡을 수가 없어지지. (남자가 꿈꾸듯이 자신의 손을 들여다본다) 주변이 온통 피바다야. 차안에서 사람들이 엉금엉금 기어 나오고 안전벨트에 묶인 채 거꾸로 매달린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주변이 온통 피바다였지. ... 첼로가, 저기 있는데 손이 안 닿는 거야. ... 손이 안 움직여. ...일상생활은 멀쩡하게 해내는데 첼리스트로선 무용지물이 되는 거지. ... 다리도 안 부러지고 팔도 안 잘렸는데, 그냥 바보건달이 되는거야. 갑자기 길을 잃은 미아처럼, 공황에 빠진 것처럼 허망하고 두려워 자신을 해치기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지지. 손가락을 돌로 짓이기고 싶어질 정도로 황폐해져서, ... 아니야 망치로 내리쳤던가. (남자가 왼 손을 주무른다)
--- p.201 (《첼로와 케챱》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