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인생의 어려운 시절을 통과할 때마다 희망이라는 낱말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만물에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지만, 현상의 좋은 점을 헤아리고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살아나가는 것. 순진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생각보다 많은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준다. 서재의 아침 풍경처럼 단순하고, 맑고, 청명한 시간들을 앞으로도 누리고 싶다. 이 책에 그런 마음들이 서려있기를. 그 마음이 독자 분들께 전달되기를 바라본다."
--- p.7, 「작가의 글」 중에서
"'그래, 예술가라면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에 있어야 하는 거야!’ 그런 확신 속에 신나게 캠퍼스를 누볐다. 석관동 캠퍼스는 前 안기부 건물을 물려 받아쓰는 것이었기에 교사가 말끔하다고 볼 수 없었다. 영상원은 지층에 편집실이 있었는데 옛날 안기부 고문실이라는 소문, 이곳에서 밤샘 편집을 하다 보면 발 없는 귀신이 걸어 다닌다는 소문, 전통예술원 쪽 건물에 높이 올라와 있는 굴뚝은 고문으로 죽은 이들의 화장터로 사용되던 것이라는 소문 등 캠퍼스 괴담도 많았다."
--- p.11, 「석관동」 중에서
"태양극단은 무기 화약고였던만큼 예술로 채워지지 않으면 삭막하고 황량한 공간이다. 전쟁을 위한 공간. 살상을 위한 무기가 수없이 들락거리던 곳이다. 이젠 더 이상 인간을 대량살상하고 삶을 폐허로 만들기 위한 의도를 가진 공간이 아니다. 그 공간은 태양극단에 의해 새롭게 살아난 공간이었다. 사람의 의식을 고양시키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인문에 대한 고민이 스며, 연극을 위한 매우 인간적인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 p.28, 「파리, 한 달」 중에서
"우리는 연희104고지 정거장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길목의 ‘스테레오 카페’라는 곳에 정을 붙였다. 배우 이나영을 닮은 신비로운 언니가 주인장이었고 때로 그녀의 남자친구가 조용히 원두를 볶는 곳이었다. 요즘 커피 맛 좀 낸다는 카페에 있을 법한 위엄있는 로스팅 기계가 아닌, 성글은 철망에 원두를 넣고 난롯불에 볶고 튀기는 방식이었다. 커피 맛을 몰랐던 그때 처음으로 핸드드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강배전, 약배전이라는 말도 배웠다.
주인장 언니와 남자친구는 손재주가 좋았다.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는 그들은 카페 내에 있는 모든 기물과 가구를 만들어 썼다. 목공과 페인트칠, 테이블과 의자, 조명까지 커플의 심미안과 손맛이 스민 특별한 것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카페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물건은 LP 턴테이블이었다. 플레이리스트는 언제나 훌륭했다. 이게 무슨 연주일까? 마음을 확 사로잡는 그 음악은 키스 자렛의 일본 투어를 담은 음반이었다. 명반을 알아보는 귀와 특별한 취향이 있던 주인장 언니 덕분에 새로운 음악가들을 내 20대에 만날 수 있었다.
스테레오 카페에 친구와 노닥이며 앉아 있노라면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그곳은 아날로그 그 자체였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두 남녀의 마음이 그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일 거다. 해질녘 그곳에 앉아 있으면서 턴테이블에서 느릿느릿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바쁘고 조급하게 살아왔던 날들의 맥을 놓고 이완할 수 있었다.
그렇게 스테레오 카페에서 노닥거리던 어느 날. 수다를 나누던 중 친구가 “안은미라는 현대무용가가 있는데, 그 분이 하이델베르크라는 도시로 해외 공연을 간대. 그 공연에 참여할 해금 연주자를 구한대.”라는 말을 건넸다.
순간 머릿속에서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심장박동도 빨라졌다. “나, 나, 나! 나 하고 싶어!”라고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안은미 선생님께 오디션 의사를 전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공연이 어떤 음악그룹과 같이 하는 것 같던데, 장영규(現 이날치 그룹의 리더이자 베이시스트)라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이 음악감독이고 재미있는거 많이 하는 것 같아.”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연희동 친구의 추천으로 장영규 감독님과 보통의 만남이 몇 차례 있었다. 감독님의 작업실에 초대되었다. 첫 만남에 뜻밖의 장면이 연출되었다. 장영규 감독님은 냉동고에서 유산지에 고이 싸여있던 참치횟감을 꺼내었다. 실험용 흰 고무장갑을 끼고 번쩍이는 일본제 회칼로 알맞게 얼어 있는 참치살을‘슥슥’ 썰어주셨다.
음악적인 질문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장 감독님, 나, 친구는 묵묵히 “맛있다!”를 연발하며 참치회를 먹었을 뿐. 입단 오디션 같지 않은 입단 오디션이었다. 맛있게 먹을 줄 아느냐가 선발의 기준이었을까?
스테레오 카페에서 시작된 비빙과의 인연은 8년간 계속되었고 여러 도시를 투어하며 맛있는 요리를 먹게 된다. 물론 멋진 연주를 하며!
--- p.42-45, 「비빙 입단과 스테레오 카페」 중에서
"가난한 여행자였던 우리는 얼떨결에 베니스에서 열린 개츠비의 파티에 초대된 듯 했다. 개츠비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호텔의 스위트룸에 머물게 했으며 극진히 대접해주었다.
다음날 아침 레스토랑 테라스에 앉아 조식을 먹으며 따뜻한 베니스의 햇살 속에 행복과 만족의 극한을 경험했다. 남자친구는 호텔의 세로가 긴 아치형의 창가에 천사처럼 앉아 담배를 피우곤 했다. 그 담배연기처럼 지나간 날은 흩어졌지만 기억과 감각은 남아있다. "People's memories are maybe the fuel they burn to stay alive." 하루키의 말이다."
--- p.159, 「이탈리아 베니스, 개츠비의 파티 초대」 중에서
"엄마는 계속 막걸리는 시켜놓고 자꾸 나에게“한잔 따라 봐, 같이 짠을 하자”며 졸랐다. 나는 또 눈을 흘겼다. “엄마, 웬 술이야. 나 안 먹어. 빨리 집에 가자”며 계속 흥을 깼다.
지금은 엄마가 체력이 현저히 떨어져서 맥주나 와인 한두 잔이면 족하다고 하신다. 그렇게 마실 수 있었던 것도 한 때였다고 한다.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변죽 좋게 엄마 이야기도 들어주고, 내 이야기라도 실컷 늘어놓으며 막걸리 두세 병 쯤은 너끈히 비울 것 같다. 술에 기분 좋게 취해서 사이 좋게 팔짱 끼고 집으로 돌아갔을 것 같다.
지금은 그때 그렇게 투정부렸던 기억에 미안해지면 엄마 집으로 향해서 맥주 한 캔을 사이좋게 나눠마신다. 어떤 이야기라도 안주거리가 된다. 그때 내가 그렇게 못되게 굴었던 걸 이야기하면 엄마는“네가 그랬지”라며 하하호호 웃는다.
엄마의 그런 노력 덕분에 나는 산을 좋아하게 되었다."
--- p.191-192, 「산 그리고 엄마」 중에서
"이 춤사위와 함께 나만 울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이 곳에 모인 언니들도 저마다 삶의 무게를 지고 이곳에 와서는 한을 풀듯 춤을 춘다. 아침에 아이 학교 보내랴, 남편 출근 돕느라 바쁠텐데 매력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단장하고 운동하는 것.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최대한의 아침 리추얼일 것이다. 줌바 수업은 저마다의 아픔을 토해내는 열광의 도가니로 기억된다."
--- p.214, 「줌바」 중에서
"하루키의 작품을 읽으며 깊이 동감하게 되는 것은 체력과 자립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소설 『해변의 카프카』 에서는 주인공인 소년이 도서관과 체육관에서 몸과 마음을 강인하게 만들고 낯설고 두려운 세계와 맞서는 모험담이 펼쳐진다. 부모나 형제 없이 단독자로 등장하는 주인공은 도서관과 체육관, 그리고 모험 그 자체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강화하고 진화해 나간다. 이 소설 뿐 아니라 여러 소설에서 변주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에서 소설 속 주인공의 목소리가 아닌 그의 목소리로 이러한 내용을 직접 전달한다. 〈한없이 피지컬한 업(業)〉이라는 챕터는 읽고 또 읽고 밑줄을 긋고 또 그은 부분이기도 하다. 자주 등장하는 소설 과 소설가 라는 단어는 음악 과 음악가 로 치환하여 생각해 보게 된다. 자신의 세계를 창작하는 창작자로 살아가며 작은 발걸음 즉, 매일의 성과가 보이지 않는 작업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거나 그 무의미함에 지쳐 그만둬 버리고 싶을 때. 이 책을 펼쳐든다. 프리랜서로 살아가며 내게 주어진 무한대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게을러질 때면 이 책을 펼쳐든다.
하루키는 ‘기묘한 모범생’이라 할 수 있다. 예술가로서 과시하곤 하는 영감이나 기행, 일탈에 관한 이야기는 내다버리기로 한다. (자살을 하거나, 귀를 자르거나 하는 것은 이미 지난 세기 예술가의 모델이 아닌가.) 하루키는 일상을 어떤 방식으로, 얼마만큼의 강도로 살아나가야 할지 설명한다. 물론 자신의 일상을 들어서 말이다."
--- p.224-225, 「하루키로부터 배운 것들」 중에서
"해금이란 악기를 만나 고생도 많이 했지만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도 많다. 햇볕이 잘 드는 공간에 앉아 말총에 송진을 바르는 것을 좋아한다. 햇볕이 따스하게 드는 공간, 포근한 방석 위에 앉아 송진을 바르면 빛줄기를 따라 분분히 날리는 송진가루가 보인다. 뽀얀 송진가루가 빛의 움직임 속에 느리게 흐른다. 송진가루가 듬뿍 칠해진 활대를 휘두르면 입자들이 말총에서 이탈해 빠른 춤을 춘다. 송진의 소나무향이 코에 와닿는 순간, 소나무숲을 거니는 마음이 된다. 작은 연습실 안에서 펼쳐지는 송진가루에 의한 빛과 공기, 향기의 향연. 고요하고 평화롭다. 이런 것이야말로 해금연주가로서 누리는 작고도 확실한 행복이다."
--- p.274, 「말총과 송진」 중에서
"어느 날 선생님께서 〈지영희류 해금산조〉의 진양을 타주셨다. 뭐 이렇다하게 강렬한 연주도 아니고, 늘 그렇듯 기운 없이 타시는 것 같기도 했다. 나 역시 가만가만 듣고 있었다. 그때 훅 하고 심장을 가격하는 대목이 있었다. 그 소리는 무방비 상태로 있던 마음 깊은 곳을 쿡 찌르고 도망갔다. 마음의 심연(深淵)이라 해야 할까. 아주 깊은 곳이기에 보통의 상태에서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만한 마음의 공간. 가슴을 치는 그 소리는 그렇게 심연을 두드리고 홀연히 사라졌다. 무심히 내던 소리 가운데 응축되어 내던져진 그 소리는 다른 경지의 것이었다.
그 이후 내가 규정하던 소리와 연주에 대한 관념이 완전히 리셋되었다. 소리는 될 수 있는 한 크게 내야 하고, 화려하게 수식하는 연주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소리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어느 대목에서 “이 소리는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다”라고 하시며 희미한 소리를 내셨다. 부르고 부르다 목이 쉰 듯한 소리. 나는 매번 그 대목을 연주할 때마다 선생님의 음성과 표현이 기억난다.
좋은 소리란 무엇인가? 좋은 음악이란? 선생님의 가르침 이후 종종 질문하게 한다. 이 질문은 음악과 소리,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궁극의 질문이 아닐까."
--- p.303, 「최태현」 중에서
"표층, 중층, 심층을 이루는 마음의 깊이가 있다면, 백병동의 음악은 심층에 가닿는 음악이라 생각한다. 평소에는 꺼내보기 어려운 심리와 감정과 무의식들이 어딘가에 켜켜이 묻혀 있다면, 이곳까지 들어가 길어올려야 하는 음악임을 알게 된다. 마음의 심연(深淵)까지 들어가야만 하는 음악은 결코 흔하지 않다. 그 심연까지 들어갈 수 있는 집중력이나 몰입이 세상살이와 함께 가기 어렵고 그만큼 고독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 p.7, 「관계항2 : 백병동」 중에서
"나는 이 음반이 아이친구 엄마에게 “집안일 마치고 커피 타임에 편안하게 들어보세요”라고 선물할 수 있는 것이기를 바랬다.
당시 내 일상은 이런 것이었다. 아이를 쫓아다니며 어린이집에 보내고, 하원시켜 아이 엄마들을 만나 가벼운 수다를 떨고, 놀이터에 앉아 해가 질 때까지 아이를 바라보는 것. 돌아오면 아이를 씻기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를 토닥여 재우고, 아침이면 아침식사를 차리고,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학교로 수업을 하러 나가고, 아이가 혼자 교실에 남아있지는 않을까 돌아오는 길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운전을 하곤 하는 날들.
그러한 일상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내가 흔히 마주치는 많은 엄마나 아빠가 된 사람들의 것이기도 했다. 고되고 기쁜, 그들의 일상에 스밀 수 있는 농도이기를 바랬다."
--- p.341-342, 「여름은 오래 남아」 중에서
"아름다운 것은 늘 만만치 않은 면이 있다. 이곳은 난방 시설이 없다. 창호지만 바른 창문, 군데군데 구멍이 난 오래된 나무 바닥을 통해 찬바람이 들어왔다. 한기 때문에 손이 곱고 굳는다. 멀리서 개가 짖으면 연주를 중단하기도 했고, 먼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의 소음이 들려도 연주를 중단했다. 한기 속에 오들오들 떨며 며칠 밤을 새어가며 녹음을 했다.
아침이 되어 눈을 뜨면 창호 밖으로 우렁찬 산과 뜰 앞 진달래가 보였다. 창호 사이로 벚꽃잎이 흩날리는 황홀한 광경을 바라볼 수도 있었다. 밤엔 음악을 하는 기쁨으로, 낮엔 유서 깊은 고택이 주는 멋스러움만으로도 벅찬 날들이었다.
봄의 한낮. 거침없이 비가 내린다. 어둑어둑한 빛 속에 감금되어 있던 감정이 흘러 나온다. 바로 이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한다고 선생님과 나는 무언의 합의를 보았다. 봄비가 고택의 기와와 처마와 뜰과 주춧돌에 후두두둑 떨어지고 흩어져 구르는 가운데 연주를 시작했다. 음악이 애드립 부분에서 절정으로 치달으니 빗소리도 거세어졌다. 소리가 종결을 향해 잦아드니 빗소리도 사그라든다. 연출한 것은 아니지만 비와 음악이 함께 움직였고, 빗소리를 음악의 일부로서 흡수한 셈이다. 이 과정은 〈후조〉라는 음반으로 남았다."
--- p.357, 「후조당에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