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로건의 부름에 제프리가 책상 위 서류에 고정했던 시선을 들어 올렸다.
“아내가 대학교에 다녔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맞습니까?”
“맞습니다.”
로건의 질문에 제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는 쓸데없이 여자를 많이 가르쳤다고 비난했지만, 제프리에게 제 아내의 대학교 졸업은 그의 자랑거리였다.
“10년 전에 최초로 대학에 입학한 5명의 여성 중 한 명이었습니다.”
제프리가 무척이나 뿌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누가 보면 그가 이루어 낸 업적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가 첫눈에 반해 매달렸던 여자의 가장 뛰어난 점은 미모도, 재력도 아니고 ‘두뇌’였기 때문이었다.
‘숫자 계산도 틀리는 게 무슨 수학의 천재.’
제프리가 아내를 만난 것은 수학 경연 날이었다. 그날, 제프리는 자신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과 신뢰를 잃었다. 대신 저의 능력을 비웃는 사랑을 얻었다. 눈앞이 새하얗게 흐려지며, 그 여자만 보이는 경험은 그가 난생처음으로 경험한 일이었다.
“수석으로 졸업했고요.”
제프리는 이제 가슴을 당당하게, 혹은 그 이상으로 넓게 펴고 있었다. 자부심이 지나쳤다. 숫제 위압감을 주려고 몸통을 크게 부풀린 수컷처럼 보일 정도였다.
“언제 부인의 시간이 되는지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갑자기 제 아내는 왜…….”
로건의 질문에 잠시 고개를 모로 기울인 채 곰곰이 생각하던 제프리가 아, 하고 짧게 소리를 흘렸다. 그가 왜 관심도 없던 제 아내를 만나고자 하는지 눈치를 챈 탓이었다. 신디 클래번은 이제 클래번 공작가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예정이었다. 정확히는 쫓겨날 예정이라고 봐야 옳았다.
‘신디 클래번의 뒤처리를 부탁합니다.’
‘……예?’
며칠 전, 로건은 그렇게 말했다. 그 앞뒤 자른 말에, 제프리는 이제 하다 하다 죽을 사람의 뒷수습까지 맡아야 하나 고민했다.
‘이미 짐은 다 싸 두었다고 하니, 브룩스 후작가로 돌아갈 수 있게 조치만 취해 주면 됩니다.’
물론, 로건의 부탁이 그런 뜻이 아니란 것은 바로 알게 되었다. 어찌 되었거나 신디가 로건의 의지 때문에 내몰리는 것은 같았지만.
‘정말로 대부인을 내보낼 생각이십니까?’
제프리가 질문했다. 당연히 몰인정하다고 로건을 비난할 사람은 없었다. 그는 이미 배다른 동생인 올리비아를 보살피고 있었고, 제 아버지가 죽은 이후에도 지금까지 신디를 대우하고 보호해 왔다. 신디가 제 딸인 올리비아, 그리고 로건의 약혼녀에게 저지른 잘못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제 아버지의 유언을 존중하여.
‘신디 클래번은 내 경고를 우습게 보고, 선을 넘었습니다.’
그러니 로건 클래번은 신디 클래번에게 할 만큼 했다. 제프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처럼 조금의 여지도 없이 신디 클래번을 내쫓아도 되는지를 생각하면 다소 찜찜한 것은 사실이었다. 올리비아가 신디의 딸이며, 클래번 공작가의 고명딸로 남는 이상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브룩스 후작가로 완전히 돌려보내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각하.’
그러니 제프리는 자연스럽게 로건의 행동에 제동을 걸었다.
‘가정의 문제에 있어서 타인의 이목까지 고려할 필요는 없지만, 어쨌거나 올리비아 아가씨의 친모이지 않습니까.’
로건은 차마 제프리의 주장을 무시하지 못하고, 느리게 한숨만 내쉬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