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목소리
[전략] 플로렌스는 등불을 들고 살며시 방을 나섰습니다. 어둑한 복도를 따라 등불의 환한 빛이 드리워지고, 플로렌스의 발걸음은 기도실로 향했습니다. 대저택의 가장 안쪽에 자리잡은 기도실은 비록 크기는 작았지만 다른 방 못지않게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기도실로 들어간 플로렌스는 등불을 잘 세워 놓고, 평소의 습관대로 문을 안쪽에서 걸어 잠갔어요. 그러고는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하루를 마감하는 감사 기도를 드리던 플로렌스의 머릿속에, 문득 낮에 보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얼른 기도의 내용을 바꾸었어요. 기도를 드릴 땐 솔직해야 한다고 아버지가 항상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오늘 낮에 길에서 이상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아픈 사람들이 거리 곳곳에 누워 있었어요. 부모님 말씀으론 다들 돌림병에 걸린 사람들인데 아무도 돌봐 주지 않아서 그렇게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거래요.”
플로렌스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기도를 이어갔어요.
“하나님, 사실은 제가 오늘 한 가지 마음의 죄를 지었습니다. 돌림병에 걸린 사람들이 왠지 무섭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수님은 더 몹쓸 병에 걸린 사람들도 손을 잡고 위로해 주셨다는데, 저는 그 사람들을 돕지는 못할망정 고개를 돌리고 말았습니다.”
플로렌스의 마음속에 어릴 적 기억들이 떠올랐어요. 유달리 몸이 약했던 플로렌스는 걸핏하면 병이 나서 의사 선생님의 치료를 받곤 했지요. 옛날 생각들을 되살리다 보니, 자꾸만 죄스러운 마음이 밀려왔어요.
“하나님, 저는 여태까지 아프면 치료를 받는 게 당연하다고만 생각했어요. 돈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정말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어요. 그 사람들을 보고 나니,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왔던 저 자신이 너무 철없이 느껴집니다.”
플로렌스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어요. 부모님의 보살핌 아래 편안하게 살아왔던 그 동안의 시간들이 새삼 부끄럽게 여겨졌어요. 플로렌스는 더 이상 기도를 이어가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였어요.
“내 딸아, 울지 말아라.”
어디선가 들려온 낯선 목소리에, 플로렌스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안쪽에서 잠가 놓은 기도실 어디에도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플로렌스는 잠시 무서운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내 딸아, 두려워 말아라. 네 곁엔 항상 내가 있으니……. 플로렌스, 앞으론 나를 위해 봉사하여라.”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플로렌스는 그 순간 스스로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방금 누구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말이에요. 그건 바로, 하나님의 목소리였어요!" [후략]
유럽에서 만난 소녀
[전략] 그 일을 겪은 후, 플로렌스의 눈엔 그 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화려한 도시 곳곳에는 짙은 그늘이 자리잡고 있었어요. 굶주리고 병들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누군가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유럽 여행이 끝나 갈 무렵, 플로렌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 간호사가 되도록 하자. 그게 바로 나에게 주어진 길이야.” [후략]
부모님의 반대
[전략] 그 후 부모님과 플로렌스 사이에 긴 줄다리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플로렌스는 틈만 나면 간호사 얘기를 꺼냈고, 그러면 그럴수록 부모님의 반대는 점점 더 심해졌지요. 하지만 플로렌스는 기죽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정말 이상한 일이에요. 나약했던 제가 부모님의 반대를 어떻게 이렇게까지 꿋꿋하게 버텨낼 수 있는지 정말 신기할 정도랍니다. 유럽 여행 때 마주쳤던 소녀의 모습이 저에게 용기와 확신을 주는 걸까요? 어쨌든 예전의 저와 요즘의 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느낌입니다. 힘은 들지만, 마음에선 희망이 샘솟습니다. 하나님, 부디 제가 간호사가 될 수 있도록 항상 곁에서 지켜봐 주세요."
플로렌스는 매일같이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기도는 플로렌스 자신을 향한 다짐이기도 했어요. [후략]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