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는 경호의 손목만 매만질 뿐 아무 말도 못했다 경호가 이어서 말했다.
"손목 날린 값으로 받은 건, 치료비 몇 푼과 해고통지서였어. 손목 잘린 친구는 더 이상 회사에 나올 필요 없다는 거였지."
"그럴수가..."
진수는 기가 막힌 듯 말을 잇질 못했다.
"나 같은 경우는 약과야. 힘없는 사람은 짓밟히는 세상이더구만. 인간답게 살게 해 달라고, 일한 만큼 달라고 소리치다가 개처럼 두들겨 맞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 나는 용기가 없어서 그렇게 소리를 치지도 못했지만. 노동조합이란 게 있어. 우리 같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자는 건데, 회사에선 노동조합 하는 사람은 빨갱이래. 노동조합 하다가 회사 직원들에게 두들겨 맞고 경찰들에게 질지 끌려가는 사람들 숱하게 봤어. 더러는 감옥에 갇히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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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 우정초등학교 2학년 2반 정화영
우리 마을은 시끄럽습니다. 날마다 날아오는 비행기 때문입니다. 비행기는 폭탄을 쏩니다. 그래서 창문이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흔들리다가 깨질 때도 있습니다. 밤에 비행기가 날아오면 잠을 잘 못 잡니다. 텔레비전 소리도 잘 안 들릴 때가 많아요. 올해는 올림픽을 하는데 그때는 비행기가 안 왔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아저씨는 "저 망할 놈의 비행기"라고 욕을 하기도 합니다.
저도 비행기가 싫습니다. 친구네 집에 갈 때도 빙 돌아서 가야합니다. 사격장 울타리 때문입니다. 울타리가 있어서 가고 싶은데도 못 갑니다. 미국은 왜 남의 나라에 와서 시끄럽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미국 비행기는 자기 나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옛날에 우리 마을에 매화꽃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없습니다. 내 생각에는 사격장 때문에 매화꽃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마을을 시끄럽게 하고, 매화꽃도 없어직 한 미국 비행기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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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잠도 잘 못 자고, 늘 불안하고, 살아가는 데 지장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힘들고.'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격장 때문에 하루하루 사는 게 고통입니다.' 길재가 끼어들었고 경호가 약간 흥분한 투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우리는 사격장이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앤더슨 소령은 두 팔을 벌리고 웃으며 공손햐게 말했다.
'하지만 이곳은 한국에 하나밖에 없는 미군사격장으로서 미국공군 전투력의 생명줄입니다. 따라서 폐쇄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전은 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안 됩니다. 이곳은 낮은 구릉지대로서 안개가 끼는 날이 거의 없고, 바다와 육지의 사격이 동시에 가능하며 조종사의 폭격 결과가 바로 나오는 유일한 곳입니다. 여기보다 더 좋은 사격장은 한국 내에 없습니다.'
'게다가 사람 사는 마을이 있으니, 폭격 연습에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요.'
진수가 말하자 앤더슨 소령은 진수를 바라보며 우물우물 대답했다.
'그 그렇지는 않습니다.'
'무슨 소리요, 그렇지 않다니?' 길재가 다지고 들었다.
'당신네 나라에는 사막도 많다고 들었는데, 사람이 살지않는 그런 데서 사격 연습을 하면 될 거 아니오,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는 곳에서 사격을 꼭 해야 되는 이유는 뻔하지 않소.'
'허 참.' 앤더슨 소령이 대답 없이 웃었고 기자가 다시 물었다.
'그럼, 마을 주민들이 입은 피해는 보상이 되고 있습니까?'
이 물음에 앤더슨 소령이 이상하다는 듯 기자를 보았다.
'기자님은 한미행정협정을 모르십니까? 피해보상이나 사격장의 이전 같은 문제는 어디까지나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다만 손님의 입장으로 있는 겁니다.'
'그래요...'
기자는 씁쓸하게 웃었다. 한미행정협정의 내용을 기자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일방적으로 나라 사이의 조약이라고 보기에는 참으로 부끄러운 것이었다. 미군이 사용을 요구하는 땅은 언제든지 내주어야 하고, 그 땅의 사용비도 받을 수가 없게 되어 있으며, 주민들의 피해를 미군은 보상할 의무가 없는 그런 조약이었다.
'도대체 우리 정부는 뭘 하는 겁니까?' 길재가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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