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는 짧으면 2개월, 길면 6개월이라는 시한부의 삶을 선고를 받았다. 나는 안나에게 찾아온 죽음이 너무나 미웠지만, 어떠한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 나는 아직까지 죽음과 어색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소심함을 탓했지만, 안나는 그 무엇도 탓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안나는 씩씩했다.
씩씩한 안나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나이롱 시한부’라고 칭한다. 죽음을 가까이 두고 있는 할머니와 아직 죽음이 뭔지 모르는 손녀는 종일 대화를 나눈다. 대화에는 주제가 없다. 그저 오늘 하루 있었던 일과 앞으로 있을 일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에는 죽음도 심심찮게 등장하는데, 둘의 대화에 등장하는 죽음은 결코 무거운 존재가 아니다. ‘나이롱 시한부’ 안나 덕분에 죽음은 손녀에게 더더욱 알 수 없는 존재가 된다.
--- p.6, 「남은 삶은 조금 더 촘촘하게」 중에서
안나는 자신의 이름을 쓰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이름 석 자만 쓸 수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홀로 동사무소에 가게 되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이름을 말하거나 종이에 이름을 적는 일이니 그것만 할 줄 알면 좋겠다고 했다. 나의 힘으로, 나의 손으로, 직접 내 이름을 어렵지 않게 쓰는 일. 안나는 그것을 바랐다. 그것만 할 수 있다면 다른 건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것을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나의 머릿속에는 늘 ‘안나와 나의 시간이 같지 않다.’라는 생각이 은은하게 맴돌고 있었다. 그랬기에, 무언가를 하는 것에 있어서 특히 그것이 안나와 연관이 있는 일이라면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망설이는 시간도 아까웠다. 안나의 시간은 나의 시간보다 조금 더 빨랐으니까.
--- p.15, 「내 이름을 써 보는 것이 소원이다」 중에서
안나의 전화가 걸려 오는 시간은 늘 같다. 언젠가, 정말 언젠가, 더는 전화가 걸려 오지 않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건, 그런 날이 올 것을 안다는 것과 같다. 그때가 되면 나에게 여덟 시 반은 정말이지, 더더욱 애매한 시간이 되리라. 어떤 날은 그 시간이 너무 공허하게 느껴져 왕왕 울지 않을까. 어떤 날은 살아 내느라 정신이 없어 그냥 지나칠지도 모른다. 또 어떤 날은 하늘에서 수화기가 내려오는 상상이나 하늘 전화국에 전화를 걸어 ‘안나 할머니 좀 바꿔 주세요. 아, 뛰어노시느라 바쁘신가요? 알겠습니다, 전화 왔었다고 전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상상을 하며 억지로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안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척한다. 나는 안나가 나에게 자꾸만 유언과 같은 말을 남기는 것이 싫다. 나는 안나가 자꾸만 나에게 열심히 살라고, 분명 너는 성공할 것이라고, 씩씩하니까 뭐든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용기를 잃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싫다.
나는 안나가 자주 자신은 이제 살 만큼 살았다고 말하는 것이 싫다. 갈 곳이 정해진 것처럼 구는 것이 싫다. 그냥 하는 말일 텐데도 안나가 하는 모든 말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나도 싫다. 살 만큼 살았다는 건 대체 뭘까? 살 만큼 살았다는 건 누가 정하는 것일까?
--- p.32, 「살 만큼 살았다는 건 누가 정하나요?」 중에서
안나는 가끔 자신이 떠나고 난 후에 내가 지켜야 할 것에 대해 말하곤 했다. 나는 그것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일단 어떻게든 살아질 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울다가도 배가 고파지겠지, 죽을 만큼 힘든 순간에도 밥은 넘어갈 것이다. 술을 마시기도 할 것이고, 친구들을 만나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엉엉 울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아직 오지 않은 슬픔을 미리 예습하는 것은 너무 벅찬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반복적으로 그것을 생각했다. 마음을 다지기 위해서였다. 천하의 쓸모없는 짓이었다. 다져지는 슬픔은 없었다. 이별에 대비하는 방법도 없었다.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으면 어떡하지."
나의 말에 안나는 그저 웃었다. 그러다가도 둘 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꾸역꾸역 목구멍을 넘어오는 어떤 것을 힘껏 밀어 넣는 중인 나는 입을 열 수가 없다. 안나도 마찬가지다. 안나는 수많은 말 중에 어떤 말을 골라 나에게 건넬지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 p.234, 「플랜 B는 없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