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응원단장으로 뽑히자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첫째에게 쏠렸다. 친구들이 좋겠다고 말하면서 부러워하니, 첫째는 몸을 배배 꼬긴 했지만,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날 난 말 그대로 온몸을 불살랐다. 얼굴이 화끈거리긴 했지만, 어쩌랴. 물리적으로는 단 하루의 시간이지만, 그날의 추억은 아이의 머릿속에 오래 남을 것이 분명했다. 이보다 가성비 좋은 방법이 또 있을까?
--- p. 24 「한 놈만 팬다」 중에서
만약 누군가 내게 ‘부모로서 가장 마음이 놓일 때가 언제인가?’라고 묻는다면, ‘건강하게 친구들이랑 잘 놀 때’라고 대답할 것이다. 공부 잘하는 거? 말 잘 듣는 거? 아니다. 이런 건 부수적으로 밀어놔도 괜찮다. 정말이다. 첫째와 둘째가 워낙 친구들과 잘 지내서 당연한 건 줄 알았다. 하지만 겪어보니 알겠더라.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게 얼마나 가슴을 애태우는 일인지.
--- p. 57 「때가 되면?」 중에서
‘간섭’의 눈으로 보면 지적할 것이 먼저 보이지만, ‘관심’의 눈으로 보면 필요한 것이 먼저 보인다. 내가 첫째에게 “똑바로 앉아서 먹어야지.” 하고 말한 건, 간섭의 눈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관심’의 눈으로 봤다면, 왜 불편한 자세로 앉아 있는지를 먼저 물었을 것이다.
--- p. 83 「간섭이냐? 관심이냐?」 중에서
“아빠는 우리 딸을 사랑한다.” 어떤 상황에서 되뇌는 말일까? 잠든 아이의 머리맡에서 속삭일 때? 아니면 너무 사랑스러워서 꼭 안아줄 때? 시도 때도 없이? 전부 아니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도 이 말을 쓸 수 있겠지만, 내가 제일 많이 사용할 때는 아이를 혼낼 때다. 의외인데 싶겠지만, 아이를 혼낼 때도 사랑은 필요하다.
--- p. 100 「나에게 거는 주문」 중에서
세상 어떤 부모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싶지 않겠는가? 형편만 된다면, 다 들어주고 싶은 게 아빠의 마음이다. 영화 〈베테랑〉에서 황정민 배우가 말하는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대사를 읊으며, ‘돈이 없어도 소신이 더 중요하지’라고 되뇌지만, 아이들에게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다 보면, 가오도 없어지는 느낌이다. “돈 없어!”라는 한마디 말로 정리할 수 있는 상황을 4절까지 읊어야 하니 말이다. “안 돼!”라는 말이, 슬픈 단어라는 것을 아빠가 돼서야 알았다.
--- p. 148 「목마를 때 주는 물」 중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면, 누구나 하는 착각이 있다. ‘혹시 우리 애 천재 아니야?’ 하는 즐거운 착각. 영재 테스트를 받으러 오는 부모들도 그런 생각으로 찾아오지만, 막상 테스트를 받아보면 일반적인 지능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받은 수학 테스트에서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이미 수학올림피아드에서 수상한 것처럼 부산을 떤다. 왜 그럴까? 그만큼 내가 낳은 내 새끼를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 p. 168 「될 성싶은 나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