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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넥타이를 세 번 맨 오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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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넥타이를 세 번 맨 오쿠바

유채림 | 새움 | 2016년 06월 07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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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6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432쪽 | 404g | 128*188*30mm
ISBN13 9791187192107
ISBN10 1187192104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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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내가 누군가.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거치는 동안 재수라는 걸 몰랐던 인간 아닌가. 사법고시에서조차 재수라는 걸 몰랐던 인간 아닌가. 내가 누군가. 맞선 한 번으로 결혼에 골인하고, 첫날밤 동침으로 정확히 10개월 뒤에 아들을 얻은 인간 아닌가. 단 한 번도 주춤거리지 않고 전진 전진만 해온 서울지법 항소3부 부장판사 아닌가.
--- p.11

전진 전진뿐이다가 졸지에 좌절한 나는 종신 대통령 아래에서 더욱 납작해졌다. 주위를 둘러봐도 온통 납작해진 사람들뿐이었다. … 숨 막힌다고 한 잔, 뭐 이런 법이 다 있냐고 한 잔, 바둑이나 두자고 한 잔, 바둑에서 졌다고 한 잔을 마셨다.
--- p.16

만약 또 다른 사람이 증인으로 나섰다면 경찰은 또또 다른 사람을 대라고 했을 것이다. 또또 다른 사람이 증인으로 나섰다면 경찰은 또또또 다른 사람을 대라고 했을 것이다. 경찰은 자신들이 짜놓은 각본에 따라 오직 정황증거에만 집착했다.
--- p.27

비록 신을 부정하고 제 자신을 학대해왔을지언정 저는 결코 살인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스승님 앞에서 뭘 속이겠습니까. 저는 정말 죽이지 않았습니다. 단지 고문을 이겨낼 수 없었을 뿐입니다.
--- p.35

아마도 고문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도대체 실감하지 못하는 데다, 일에 채이다 보니 인간에 대한 애정이고 뭐고 없었던 것 같소. 경찰은 범인을 잡기보다는 범인을 만드는 데 급급했고, 검찰은 사건을 받아 그대로 법원에 넘겨주는 지게꾼 역할만 한 거라고밖에 달리 볼 수 없는 거요.
--- p.60

‘주여’는 올 초 심령대부흥회 때 목이 쉬도록 기도한 뒤부터 얻은 엄마의 습관어였다. 엄마는 밥을 먹다 돌을 씹어도, 주여, 라고 말했다. 길게 비가 내리는 날 툇마루에 걸터앉아 담 너머 어떤 세계를 보다가도, 주여, 라고 말했다.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을 때도, 주여였다. 성북천에 빨래하러 갔다가 너무 많은 사람이 빨래하는 걸 보고도, 주여였다. 그러니 교회에서 목사의 설교를 들을 때면 시도 때도 없이, 주여였다.
--- p.146

이 땅에서도 돈키호테처럼 정신 나간 전쟁이 터졌다. 전쟁이 나면 닷새 만에 백두산 물을 마시겠다던 이승만은 제일 먼저 부산으로 토꼈다. 한강은 폭파됐다. 서울사람은 모두 갇혔다. 갇힌 서울에는 부황 든 얼굴이 떠다녔다. 아예 서울이 부황 든 꼴이었다.
--- p.220

신이 인간의 생사를 관장하지 않았다. 신은 무기력했고 인간의 죽음 안에 갇혀 있었다. 형이나 매형이나 혜화동로터리에서 보았던 구덩이 속 인민군들의 죽음은 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반드시 죽이고야 말겠다는 인간의 의지에 따른 결과였다. 한강다리에서 사라진 게 틀림없는 영치의 죽음 역시, 다리를 파괴시켜야 내가 산다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에 따른 결과였다. 구덩이 속 인민군들의 죽음은 참으로 처연했다. 오쿠바는 원망에 사로잡힌 부릅뜬 눈을 기억하고 있다. 겁에 질려 몸뚱이를 움츠린 채 죽어간 죽음을 기억하고 있다. 두고 온 고향이거나 어머니이거나 아내에게 모든 슬픔을 건네듯 처연한 눈으로 죽어간 죽음도 기억하고 있다.
--- p.253~254

악이 신을 압도했다. 완전자인 신은 신이 창조한 세계 안에서 완전히 실패했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할 게 아니라 선악과를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그 불완전성의 신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분노와 원망과 두려움과 슬픔을 안고 죽어가는 인간을 신은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 무기력한 신을 왜 믿어야 한단 말인가.
--- p.254

생과 사의 불확실성, 전쟁은 그런 거였다.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 그 난폭성이 전쟁이었다.
--- p.269

왜 내가 강간살인범이 돼야 하는가.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가. 당연히 사건은 신이 일으킨 게 아니다. 그러니 사건은 전적으로 내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그러나 나는 이 고통을 감내할 수가 없다. 나는 미친다, 미쳐!
--- p.409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1971년 사법파동으로 판사복을 벗고 변호사사무소를 연 이덕열은 강간 및 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정원탁’이라는 사내의 변호를 맡게 된다. 정원탁이 기소된 사건인 ‘춘천 파출소장 딸 강간살인사건’을 조사하면서 이덕열은 경찰과 검찰이 저지른 고문과 강압수사, 그리고 비상식적이고 총체적인 증거조작을 확인한다. 그리고 피의자 정원탁을 면회하면서 그의 일생에 대해 소상히 듣게 된다.
일제 강점기. 춘천의 한 동네에서 유일한 치과의사의 아들이었던 정원탁은 친구들에게 본명 대신 어금니라는 뜻의 일본어 ‘오쿠바’라는 별칭으로 불리곤 했다. 오쿠바는 모자람 없는 유년시절을 보내며 한때 목사를 준비했지만, 6.25전쟁과 4.19혁명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요동치는 사건들로부터 죽음을 직시하며 점차 신앙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마침내 신학교를 뛰쳐나와 사진관을 연 오쿠바는 곧 아내를 얻고 가정을 꾸려 행복한 시절을 맛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첫째 아들의 투병과 죽음으로 가세가 기울고 상심한 오쿠바는 고향인 춘천으로 돌아가 만화방을 차리게 된다. 그리고 얼마 뒤, 만화방에 간다던 9살 여자아이가 실종된 지 이틀 만에 성폭행당한 채 시체로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진척 없는 수사에 국민들은 공분했고, 이어 열흘 안에 범인을 잡으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시한부 검거령이 떨어졌다. 겁에 질린 경찰은 만화방 주인인 오쿠바를 뚜렷한 증거 없이 정확히 열흘 만에 체포했다. 오쿠바는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혔다.
이덕열이 오쿠바를 만난 것은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후였다. 오쿠바를 만나 그의 무죄를 확신한 이덕열은 오쿠바를 자유롭게 해줄 과학적 증거와 결정적인 증인의 확보에 들어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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