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그 시절엔 한 번도 꿈꾸지 않았던 인생을, 결코 닮고 싶지 않았던 내 엄마 같은 인생을, 어쩌다 보니 지금 내가 걸어가고 있다. 아무리 봐도 뻔하디 뻔한, 진부하고 지루한 인생을! 그리고 그런 삶을 근근이 버텨내고 있는 내 자신이 때때로 낯설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즐겁게 살 거라던 청춘의 외침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만큼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은 지 오래다. 무엇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흔들리지 않는다는 나이 불혹을 훌쩍 넘긴 지금도 여전히 모르겠다.
예전의 나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천천히 가라앉는 배처럼, 그렇게 서서히 가라앉는 줄도 모른 채 바닥으로 내려앉은 것일까? 인생이란 게 결국 이런 건가? 이제는 깊은 무력감만이 오랜 친구처럼 내 곁을 지키고 있다. 그저 두 아이의 엄마로, 내 엄마같은 인생을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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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한다는 건, 솔직히 생각만큼 즐겁지는 않다. 여행지에서 맛보는 낭만과 여유? 그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에선 애초에 기대하면 안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길가에 펼쳐진 멋진 풍경들에 도취해 한껏 기분을 낼까 하다가도, 차 안이 떠나갈 듯 소리를 내지르는 아이들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만 같은 순간도 부지기수다. 혹자는, 그런데 왜 굳이 아이들까지 줄줄이 데리고 여행을 가세요? 라고 물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게 말이다. 나조차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나 혼자 혹은 남편과 단둘이 여행을 나오면 꽤 오랫동안 기대했던 여행조차 맥없이 싱겁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어느새 집에 두고 온 아이들 생각에 여행이 퍽이나 재미없어진다는 사실에 때로는 당혹스럽기도 했다. 이건 대체 왜 그러는 건가요? 라고 나부터가 그 이유가 궁금해서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집을 나서는 순간만 해도 이제 아이들 일이라고는 싹 다 잊고 재미있게 놀다 와야지 했지만, 만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그리워지니 말이다.
--- p.107
한때 내가 꿈꾸었던 ‘인생’이라는 것이, 고작 이런 것이었나? 한없이 교만했던 자신을 조금씩 깨달아 가는 과정. 인생이란 결국 교만했던 자신을 내려놓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왜 그 누구도 내게 미리 알려주지 않았던 걸까? 부모님도, 선생님도, 먼저 인생을 살아본 인생선배 그 누구도. 고작, 젊은 나에게, 좋은 때다, 라는 (철없다는 충고인지 질투인지 모를) 그런 아리송한 말만 해주고 만 것일까? 그래, 잘난 너도 인생의 쓴맛을 직접 느껴 봐라, 뭐 그런 심정들이었을까?
아무튼, 지금은 그때 그 산에서 만난 아저씨보다 더 나이를 먹어버린 내가, 저 까마득한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자이언 협곡 어느 강가에 주저앉아 지난 시간들을 후회하고 있다. 그사이 강물은 저만치 흘러가버렸고, 삶도 저만치 흘러간다.
--- p.128
차가 솔트레이크 시티를 완전히 빠져나와 89번 도로로 진입하자, 기대했던 대로 근사한 풍경이 도로 주변으로 펼쳐졌다. 파릇파릇한 숲으로 뒤덮인 산들 사이를 가로질러 달려가자, 가슴이 뻥 뚫리는 듯 청량함이 느껴졌다. 어제까지 보아왔던 황량하고 와일드한 풍경과 달리, 풋풋한 싱그러움으로 가득한 길이었다.
이제 또 다른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건가? 이제부터는 대지의 황량함이 아닌, 대지의 싱그러움, 대지의 생명력을 마음껏 누리게 되는 건가? 분명 나는 어제도 오늘도 똑같은 미국이라는 나라에 있는데, 어제와 오늘의 풍경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이런 게 바로 미국 여행의 매력임을, 그리고 그런 매력에 어느새 푹 빠지고 말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어쩌다 미국에 와서, 어쩌다 미국 여행 예찬자가 되고 말았다.
“네가 지금처럼 미국 예찬자가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어.”
감탄사를 연거푸 쏟아내는 내게, 정곡을 찌르는 남편의 말 한마디가 들려왔다.
--- p.143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아이와 함께 동남아를 두어 달 여행했던 적이 있다.
여행을 한다고 해서 답답한 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때 나는 특별한 목적 없이 무작정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방황하는 엄마를 지켜보던 아이가 어느 날 작은 연등 앞에서 이런 소원을 빌었다. 태국 북부의 작은 마을 빠이에서 연등을 날리던 12월의 마지막 밤이었다.
“우리 엄마, 강해지게 해주세요!”
아이가 내뱉은 그 말은 나를 끝내 울리고 말았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결국 나를 돌아보는 일이었다. 젊은 날 한껏 오만하고 뾰족했던 내가, 아이를 키우는 동안 한없이 작아지고 있었다. 출산과 육아를 거치는 동안, 뾰족한 모서리는 수없이 정을 맞고 또 맞았다.
그날 밤, 노란 연등을 띄우며 아이가 빌었던 소원처럼, 나는 지금 강해졌을까? 그때 내 손을 잡고 걸었던 일곱 살 아이가, 엄마가 강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던 그 아이가, 이제는 한참 뒤처져 걷는 엄마를 응원할 만큼 훌쩍 자랐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내가 이렇게 변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이렇게 변하는 것도,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도 모두 다 이상한 일이다.
--- p.173
‘그리즐리 곰’이 많이 살고 있어서 주의 애칭도 ‘그리즐리 Grizzlies’라는 몬테나 주에 들어선 지 몇 시간째. 여전히 글레이셔 국립공원은 멀기만 하고, 이렇게 계속 달려가다가 어둠이 깔리면 어느 숙소에 들러 하루 밤 청했다가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길에 나설 것이다. 어디에도 정착되지 않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그런 여행의 일상이 벌써 이십여 일째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이런 무소속의 자유, 무정착의 일탈이 주는 여행의 재미에 푹 빠져버렸다. 게다가 원하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자동차 여행의 매력에 흠뻑 빠져 들었다. 어느 순간 오히려 미서부 자동차 여행이 체질적으로 아주 딱 맞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 p.180
그녀처럼 나도, 이곳 크레이터 레이크에서 기도라도 올려야 하는 것일까? 우주를 향해, 저 호수 깊은 곳에 살고 있다는 원주민들의 신 랄로를 향해, 내게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빌어야할까?
이미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엄마이기 이전에 한 여인으로 한 인간으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평생 전업주부로 가족들 뒤치다꺼리만 한 내 엄마와는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해야 할까?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틈틈이 써내려간 이 글이, 일요일 하루 푹 쉬고 싶은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겨놓고 혼자 카페를 찾아 글을 쓰며 보낸 시간들이 모두 헛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해야 할까? 그리하여 엄마가 뭐하는 사람인지 아이들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해달라고, 또한 엄마는 꿈이 뭐야? 엄마는 왜 일 안 해? 같은 질문을 아이에게서 받는 당황스런 순간들이 더 이상 없게 해달라고, 그런 간절한 기도를 이 코발트빛 호수 아래 숨어있는 랄로 신을 향해 올려야 할까?
--- p.226
조금 창피한 얘기지만, 샌프란시스코만큼은 금문교를 통해 들어서고 싶다는 로망이 오래전부터 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생애 처음 샌프란시스코에 발을 디디는 이 역사적인 순간에, 이 멋대가리라고는 없는 샌프란시스코-오클랜드 베이 브리지로 진입해야 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어쩐지 지금까지 간직해오던 로망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은, 서운한 기분마저 들었다.
“어디로 가든 금문교로 가기만 하면 되는 거 아냐?”
그런 내 로망 따윈 들어도 이해 못할 남편이, 도대체 쟤는 왜 저러는 걸까, 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저기 101번 해안도로를 따라 내려오다가 붉은 금문교가 바라보일 때쯤,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금문교를 마주하며 유유히 도심으로 들어서고 싶었어, 그게 지금껏 내가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를 떠올릴 때마다 늘 꿈꾸어왔던 로망이었어.’라고는 차마 내 입으로 말할 수는 없었다. 이런 소녀 취향의 로망까지 밝히기엔, 정말 엉뚱해 혹은 진짜 이해할 수 없어, 라는 소리를 지금껏 남편에게서 지겹도록 들어왔다.
뒷좌석에 가만히 앉아 이런 소동을 지켜보던 첫째아이가, 마치 ‘엄마, 혹시 그 날이야?’라고 묻고 싶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p. 243
으슥한 밤길을 수차례 돌고 돈 끝에, 그렇게 찾아 헤매던 숙소가 드디어 눈앞에 나타났을 때의 기분을 과연 어떤 말로 표현할 수가 있을까? 불안함이 해소되자, 이번엔 극도의 피로가 찾아왔다.
새벽 1시 반. 로비에서 배정받은 2층 방으로 향했다. 반쯤 널브러진 아이들을 일일이 안아서 데려다 눕히고, 마지막으로 꼭 필요한 짐들을 방으로 옮겨놓은 후에야 드디어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내일은 좀 늦게 일어나도 되는 거지?”
불을 끄고 자리에 누운 남편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긴 한데, 여기 체크아웃 시간이 오전 11시야.”
체크아웃이 11시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 시간까지 자고 싶어도 잘 수 없다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내일 아침이면 일찌감치 잠에서 깬 둘째아이가 엄마, 아빠를 계속 자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는 걸, 우리 부부에게 그런 낭만적인 여행 따윈 사라진지 오래라는 걸, 누구보다 그도 잘 알고 있다.
--- p.288
바로 그때, 눈 앞에 HOLLYWOOD라는 글귀가 불쑥 나타났다. LA를 배경으로 하는 모든 영화나 드라마 등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바로 그 글귀. 동시에, 아주 오래 전 소규모 영화수입사에서 일하던 젊은 날의 내 청춘을 떠올리게 하는 글귀였다. 당시 내가 일하던 영화사 대표가 해외영화제에서 사온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동료들과 수없이 반복해서 보며 그 영화 속에 수십 번 등장하던 바로 이 할리우드 거리를 동경했던 젊은 날의 내가 떠올랐다.
그로부터 벌써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가수 윤종신의 노랫말처럼, 지금 내 곁엔 (나만을 믿고 사랑해주는 지는 알 수 없으나, 꽤 오랫동안 같이 살아온) 한 남자와 두 아이가 함께 하고 있다. 눈 깜짝할 할 사이에,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그렇게 훌쩍 시간이 지나버렸다.
--- p.302
“내가 뭐랬어? 이미 지난 거 같다고 했지? 끝까지 내 말은 안 들어!”
차가 돌비극장 앞에 서자, 기어이 남편이 내 고집에 대해 불평을 쏟아냈다. 아까부터 그 말이 하고 싶은 걸 꾹 눌러 참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무작정 그렇게 헤맨 탓에 할리우드 간판을 바로 코앞에서 봤다고! 뭐, 꼭 정석대로 가라는 법 있어? 인생에 정답은 없어!’
그렇게 항변하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은 결코 가는 법이 없는 원칙주의자 남편에게, 나의 이 항변이 먹힐 리 없다. 이런 내 항변을, 그는 분명 루저들의 자기변명 혹은 자기위안으로 취급할 게 분명할 테니…. 그래도 어쨌든, 그런 호기심 많은 성격 탓에 지금껏 이렇게 여행할 수 있었던 거라고 나는 믿는다. 남편이 뭐라 하든, 나는 나대로 이렇게 살면 되는 것이다.
특히 그곳이 LA라면, 길을 잃는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LA에서라면, 무작정 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녀도 좋다. 걷다보면 무언가 재미난 일들이 잔뜩 생기는 곳이 바로 이곳 LA이니까. 딱히 볼거리가 없다고 해도, 전 세계에서 몰려온 온갖 인간 군상들이 다 모여 있는 이 도시를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일이니까. 그렇게 즐기면 될 일이다. 딱히 무언가를 찾으려 애쓰지 말자.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 무언가는, 처음부터 우리 곁에 있었는 지도 모르니….
--- p. 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