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기능 중에서도 언어 기능의 담당 뇌 영역이 처음으로 밝혀진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두 가지 있다. 첫째 이유는 언어를 이해하고 만들어내는 능력은 둘 다 측정이 대단히 쉽다는 점이고, 둘째는 대부분의 사람이 성인이 되는 시기 즈음이면 꽤 비슷한 수준의 언어 능력에 도달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언어의 요소 중 어느 것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은지 판단한 다음, 사후 검사(혹은 좀 더 최근에는 MRI나 CT)를 이용해서 뇌의 어느 부분이 손상을 입었는지 확인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과정이다. 확인된 뇌 손상 부위가 그 사람이 잃어버린 기능을 정상적으로 담당하던 영역일 것이라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비유해보자면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멈추지 못하는 차를 찾아내서 잘 멈추는 차와 부품별로 하나씩 비교해보면 자동차 브레이크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알아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경우다. ---「1장. 우리는 우리의 뇌를 이해하고 싶다」중에서
그럼 항우울제는 뇌의 화학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항우울제에는 작용방식이 조금씩 다른 여러 가지 약물이 있지만, 이 각각의 약물들은 결국 기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노르아드레날린, 세로토닌 등의 활성을 증가시키는 작용을 한다. 셀레길린(selegiline)같은 모노아민산화효소 억제제(Monoamine Oxidase Inhibitor, MAOI)는 1950년대 중반에 처음 사용되었고 도파민, 노르아드레날린, 세로토닌이 자연적으로 분해되는 것을 방지해 시냅스에서 이들 신경전달물질의 유효성(availability)을 증가시킨다. 과거에 이 약물은 일부 음식과 안 좋은 상호작용을 일으켜 구역질을 유발하거나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키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 항우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 중 하나는 이런 약물들 대부분이 복용 후에 증상 완화 효과가 일어날 때까지 2, 3주 정도의 비교적 긴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물질이 시냅스에서 신경전달물질의 농도를 즉각적으로 변화시켜서 효과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와인을 한 잔 마셨을 때나, 담배를 한 대 피웠을 때처럼 당연히 그 효과가 바로 나타나야 옳다. 최근에는 이런 시간적 불일치를 설명해줄지 모를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지만, 종합적으로 보면 이 현상은 우울증의 극복이 그저 신경전달물질의 보충에 달린 일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3장. 약물은 어떤 원리로 뇌에 작용할까」중에서
스트레스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실례다. 코앞으로 다가온 입사면접이나 공연 출연만 생각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나중에 7장에서는 감정 상태에 따라 어떤 신체 증상이 나타나는지 자세하게 살펴보겠지만, 여기서는 스트레스 유발인자(stressor,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모든 사건)에 의해 나타나는 특유의 생리 반응에만 초점을 맞추도록 하자. 스트레스 유발인자는 온갖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어떤 사건은 아주 갑작스럽게 일어나서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한다(예컨대 한 아이가 달려오는 자동차 앞으로 뛰어드는 것을 목격한 경우). 또 어떤 사건은 좀 더 지속적인 도전 과제를 제시하기 때문에 좀 더 장기적인 반응이 요구되기도 한다(예컨대 가족과의 사별이나 이사 등). 다행히도 인간은 이에 대해 두 가지 서로 다른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하나는 ‘빠른 경로’, 다른 하나는 ‘느린 경로’로 설명되는데 이 두 가지가 함께 존재하는 덕분에 우리는 서로 다른 스트레스 유발인자에 대단히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4장. 스트레스받은 뇌는 이런 반응을 보인다」중에서
가장 분명하게 구분되는 기억은 서술기억(declarative memory)이라고도 하는 의식적 기억(conscious memeory)과 비서술기억(non-declarative memory)이라고도 하는 무의식적 기억(unconscious memory)이다. 서술기억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모든 기억을 말한다. 자신의 자서전적 기억, 전화번호 목록, 학습한 지식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우리 일상 행동 중 상당 부분은 비서술기억에 의존하고 있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비서술기억은 기존의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자동차 운전이나 자전거 타기 능력이다. 이런 기술을 처음 배울 때는 자기가 교육받은 내용을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떠올려야 하지만 얼마 안 가 이런 기술은 자동화되어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 무의식적 기억의 사례를 들자면 무척 많다. 특정 상황과 마주했을 때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반응이 나오는 것이나, 모르는 사이에 광고의 영향을 받는 것 역시 무의식적 기억의 경우에 해당한다. ---「5장. 기억은 뇌에 어떻게 남는 것일까」중에서
뇌의 구조물에서 성차가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있으나, 완전히 ‘남성적’이거나 완전히 ‘여성적’인 뇌를 가지고 있다고 분류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들 대다수는 한쪽 끝에는 완전히 남성적인 뇌, 반대쪽 끝에는 완전히 여성적인 뇌가 자리 잡고 있는 연속선상의 어딘가에 놓여 있으며, 그중에는 반대쪽 성의 특성이 더 강한 뇌를 가진 사람도 있다. 사실 실제 상황은 이것보다도 조금 더 복잡하다. 그 차이가 뇌의 영역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편도체는 아주 남성적인데 해마는 여성적인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조엘 교수는 모든 뇌는 독특한 자기만의 모자이크를 구성하고 있으며 각각의 뇌 영역은 각자 고유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6장. 남자와 여자의 뇌는 다를까」중에서
우리의 생리적 상태도 시간의 지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고열에 시달려본 사람은 아마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분야에서 초기에 실험을 수행했던 사람은 미국의 생리학자 허드슨 호그랜드(Hudson Hoagland)였다. 그는 독감에 걸린 아내를 간병하다가 시간 지각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가 아내의 침대로 찾아갈 때마다 항상 아내는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느냐고 불평을 했다. 그는 아내가 고열 때문에 시간을 자기와 다르게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궁금해져서, 결국 자기의 가설을 실험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아내에게 1분을 속으로 계산하게 하고 그 시간을 시계로 재보았는데, 아내가 계산하는 1분은 항상 짧게 나왔고 최고 25초까지도 짧아졌다. 아내에게는 정말로 시간이 더 빨리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몸이 아프면 지겹고 단조로운 상태가 되기 때문에 그렇다고도 설명할 수 있지만, 그 후로 여러 실험이 이루어져 체온과 시간 지각에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다는 설명에 힘이 실렸다. ---「8장. 뇌는 어떻게 시간을 알까」중에서
십대의 뇌에 관한 전문가인 사라 제인 블레이크모어(Sarah-Jayne Blakemore)는 청소년기를 사춘기가 시작되는 시점, 그리고 한 사람이 사회에서 안정적이고 독립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시점 사이의 기간이라 정의한다. 뇌의 경우 이 시기 동안에 큰 구조의 변화가 일어난다. 요즘에는 이런 변화를 쉽게 측정할 수 있다. 회색질(세포체와 시냅스) 대 백질(수초화된 축삭돌기)의 비율만 살펴보면 된다. MRI와 사후부검을 통해 확인해보면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거치는 동안 백질의 양이 많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뉴런들이 더 길고, 강력하고, 빠르게 연결되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사춘기가 시작되자마자 시냅스형성이 급격히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뒤로는 항상 신경가지치기의 단계가 뒤따른다. 이런 현상은 뇌의 서로 다른 영역별로 다른 시간, 다른 속도로 일어나는데, 십대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사회적, 인지적, 정서적 특징을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0장. 뇌도 우리와 함께 자란다」중에서
생애 첫 몇 해 동안 둘, 셋, 아니면 그 이상의 언어에 노출된 아이는 그 언어에 계속 노출되기만 한다면 그 언어들을 모두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게 된다. 대부분의 연구에서는 아이가 아무런 노력 없이도 원어민 수준의 발음으로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시기가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시기는 출생에서 시작해서 만 5세나 10세 사이의 어디쯤까지 이어진다. 이 시기를 넘어서면 뇌의 언어 영역이 성숙하기 때문에 외국어를 배우려면 따로 훈련이나 수업을 들어야 하고, 좀 더 의식적인 노력이 있어야만 한다. 최근에는 2개 국어 구사 능력에 대한 뉴스가 몇 번 헤드라인을 장식한 적이 있었다. 꽤 많은 연구에서 이런 능력이 노화가 뇌에 미치는 영향을 줄여주고, 심지어는 치매도 예방해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언어를 두 개 사용한다고 해서 그런 효과가 있다는 것이 말이안 될 것 같지만, 이론가들의 주장을 보면 서로 다른 두 개의 언어 체계를 계속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앞이마겉질을 훈련, 발달시켜주는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고 한다. 앞이마겉질은 나머지 뇌 영역보다 더 빨리 노화되는 영역이다11장 참조. 2개 국어 구사 능력이 어느 정도까지 이로운가 하는 부분은 여전히 논란거리지만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간단한 행동이라 해도 뇌에서 가장 중요한 네트워크의 일부가 폭넓게 활성화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12장. 뇌는 어떻게 말을 할까」중에서
선천적인 부분과 후천적인 부분이 어떻게 함께 어우러져 세상에 둘도 없는 한 개인이 만들어지는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경험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하드웨어적으로 결정되는 부분은 어디까지일까? 왜 어떤 사람은 역경에 강한데, 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지원해주는 든든한 환경 속에서도 우울증이 생길까? 선천성·후천성 논란은 심리학에서 가장 오랫동안 이어진 연구 분야 중 하나일 것이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나 조건은 어디까지가 (유전되거나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선천적인 것이고, 어디까지가 (가족, 사회, 다른 환경적 영향의 결과로 습득된) 후천적인 것일까? 우리의 유전적 구성은 각각의 세포에 들어 있는 DNA 가닥에 저장되고, 이 DNA는 우리 부모가 가지고 있었던 DNA의 독특한 조합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이 유전자들은 본질적으로 단백질 합성에 필요한 지시 사항을 제공해준다. 지나치게 단순화된 메커니즘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런 유전자는 대략 20 -25,000개 정도가 존재하며, 놀랍게도 이 정도만으로도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어마어마한 다양성을 설명하고도 남을 유연성이 생긴다.
---「15장. 뇌는 구축되고 또 재구축된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