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에 바치는 불로초
김희조 (rarity@yes24.com)
하필 마침 이 때 '청춘'이라는 단어에 눈을 돌리게 된 건, 누군가 '당신은 청춘인가'하고 물어올 때 '그렇다'고 답하기에 이제 영 머쓱해진 까닭이다. 어디 청춘의 문장이 있다면 이만 떠나려는 청춘을 붙들어 맬 수도, 어쩌면 이미 지나쳐 가 버린 청춘을 되새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초라한 생각의 발로이기도 했다.
다행히도 새삼스럽게 그런 걸 물어오기엔 사람들은 여전히, 좀, 바빠 보인다.
아니, 첫 페이지에 오롯이 자리한 글귀가 눈길을 잡아끌었는지도 모르겠다.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그렇다면 고양이 발걸음마냥 무게감도 소리도 없이 즉흥적이고 가벼운 투로 일관해 보기로 한다. 그의 단상이 청춘의 이곳저곳에 나비처럼 잠시 머물렀던 것처럼.
그는 도넛으로 태어났다고 했다. 텅 빈 한가운데를 채우기 위해 사랑할 만한 무엇에든 빠져들었고 아파야만 한다면 기꺼이 아파했으며 이 생에서 다 배우지 못하면 다음 생에서 배우겠다고 결심했단다. 하지만 그 텅 빈 부분은 채워지지 않았고, 서른 살이 되면서 그 가운데가 채워지면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나 역시 서른 즈음에 뜻 모를 안타까움을 가진 걸 보면, 우리네 청춘은 역시 통통하게 들어찬 보름달 빵 씩은 못 되는 모양이다. 단지 명백한 차이점이 있다면 그럴 때마다 그는 허전한 맘을 달래줄 시를, 문장을 곁에 두고 읽는다는 사실이다. 삶을 설명하는 데는 때로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니까 어디, 나도 좀 봅시다 하는 심정으로 바싹 다가 앉았다.
그는 참으로 다채롭게 또 한편으로는 담담하게 그의 청춘을 내보여 주고 있다. 이를테면, 생각만으로도 짠한 고향 풍경과 따뜻한 가족의 모습, 남다른 사춘기 시절, 소설을 쓰게 된 과정(?)과 소설가로서의 행복, 대학 시절의 방황과 군대 시절 이야기, 추억이 잔뜩 깃든 정릉 자취방, 직장을 다녔을 때의 소회, 소중한 딸 열무에게 세상을 보여주고픈 자상한 부성애가 그렇다. 뿐만 아니라 해박한 지식와 독서 편력, 즐겨 듣던 노래, 훌쩍 떠난 여행, 깊은 밤하늘을 보며 문득문득 떠올리는 자잘한 생각, 그리고.. 사랑에 이르기까지. 어찌보면 평범하기도 하고 누구나 건넜을 법한 구불구불한 청춘의 강을 속속들이 말이다. 물론 그 강 모퉁이마다에는 아귀가 딱 들어맞는 보석같은 시가 함께 하고 있다. 그것들을 여기 일일이 나열하지는 않겠다. 당시(唐詩)에 대해 그가 이렇게 말했다.
'소리내 읽다 보면 입에서 향기가 날 것 같다. 세상 살아가는 데 그런 향기 입에 담고 친구와 술 마시는 일보다 윗길인 일이 없다.'
조금 조급증이 날 수도 있겠다. 그가 읊어주는 당시나 하이쿠, 조선의 문장을 기웃거리면서 운자니 율격이니 하는 한시의 묘미를 일찌감치 깨우쳐 두지 못한 데서 생겨난 아쉬움일 것이다. 해석을 빌지 않고서도 무릎을 탁 치는 짜릿한 감동을 얻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하긴 뭐 그 쯤이야.. 아릿한 에피소드 사이에서 피어나는 추억과 위로로 마음 속의 '울결'을 솔솔 풀었다면 썩 충분한 보상을 받은 셈이 아닐까. 그건 마치 글 속에서 이따금씩 얼굴을 내민 김광석을 우리들 모두가 그리워하고 있는 것처럼, 입으로 내어 말하지 않아도 맘 속에서만큼은 당연한, 설명하기 힘든 어떤 묘한 동질감이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왜 누군가를 사랑하는가? 그건 우리가 살면서, 또 사랑하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모세를 닮은 재벌 3세가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내 이름을 새긴 기념비를 남산 꼭대기에 세워준다고 해도 나는 그 일들과 맞바꾸지 않을 것이다. 때로 너무나 행복하므로, 그 일들을 잊을 수 없으므로 우리는 살아가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 정도면 인간은 충분히 살아가고 사랑하고 글을 쓸 수가 있다.'
책을 덮을 즈음에는 청춘이란 놈이 곁에 없다고 해도, 그리 서운하기만 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조금씩 고개를 든다. '잊혀진 것들은 변하지 않고 고스란히 내 안에 남아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청춘을 기억했지만 우리는 각자의 청춘을 생각하기로 한다.
세상이 빨리감기 버튼을 누른 것처럼 흘러간대도 그저 두릿두릿한 몸짓으로 걸어가는 건 어떨런지. 어딘가에서 청춘의 뒷모습이라도 만난다면 그의 등을 한 번 툭툭 두드려 주는 건 어떨지. 청춘이 이미 떠나고 없어서 그런지는 잘 알 수 없지만, 가끔씩 가슴이 날이 잘 선 칼로 잘디잘게 다듬은 양 저며올 때가 있지 않은가. 바로 그 때 그의 부드러운 문장에 잠깐씩 기대어 한 박자 쉬어갈 일이다.
어느새 가을 멀리 가버렸으나 숲나무엔 가을 뜻 아직 남았네
적막한 바위 틈엔 물기 마르고 맑은 시내 어귀에 뗏목 깔렸다
나무꾼은 상수리 밤톨 줍고 스님은 우물에서 무를 씻네
석양빛 아직 아니 사라졌는데 등나무엔 초승달 벌써 올라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