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마키아벨리:정치 그리고 폭력의 경제학
월린은 마키아벨리를 근대에 들어와 ‘정치사상의 자율성’을 선구적으로 확립한 사상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역설적인(?) 사실은 통상 우리는 유럽의 ‘종교개혁’(‘기독교 개혁’이 탈서구 중심적인 용어일 것이다)이 종국적으로 서구 문명의 세속화, 정치의 세속화를 초래한 주된 역사적 사건으로 이해하는 바, 만약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판단한다면 (종교나 도덕으로부터) 자율적인 정치사상의 전개가 ‘기독교 개혁’으로 인해 종교적·신학적 논쟁이 격렬하게 진행되던 곳에서 일어났어야 한다고 생각할 법한데, 실상 미래 예시豫示적인 자율적인 정치사상의 전개는 장차 일어날 ‘기독교 개혁’의 격변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면제되어 있던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월린은 역사적으로는 마키아벨리보다 다소 후대 인물인 루터와 칼빈의 정치사상을 『정치와 비전』의 제5~6장에서 논하고,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을 제7장에서 논하고 있다.
월린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집필되기 거의 1세기 전에 생동력 있는 전통으로서 ‘현실주의’가 이탈리아 정치사상에서 이미 발전하고 있었으며, 종교적 논쟁의 부재를 특징으로 하는 이 시기에 이론가들은 ‘질서’나 ‘권력’의 문제들을 매우 엄밀하게 정치적인 관점에서 조명할 수 있었다고 서술한다.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은 이런 잠재적인 가능성들을 포착했고, 이를 기반으로 (도덕이나 종교로부터 자율적인) ‘순수한’ 정치 이론에 관한 최초의 위대한 실험을 전개했다는 것이다. 월린은 마키아벨리를 최초의 진정한 근대적인 정치사상가로 만든 그의 사상적 특징을, 중세적 사고방식과의 결별, 자연법과 같은 전통적인 규범의 거부, 거의 전적으로 권력의 문제만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의 모색, 나아가 엄밀한 의미에서 정치적인 것이 아닌 것은 무엇이든지 정치 이론으로부터 배제하고자 한 이론적 시도 등에서 구한다. 나아가 월린은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정치적 야심가인 새로운 인간, 곧 ‘신생 군주’를 근대 정치를 사로잡게 될 특징적인 인물로 그려냈다고 해석한다. 그 새로운 인간은 끊임없는 야망의 시대의 산물이며 급격한 제도의 변화와 엘리트 집단 사이에서 벌어지는 권력의 무상한 부침의 소산으로서 정치가 지닌 변전무상變轉無常, 비영구성 및 끝없는 진행형의 속성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흔히 ‘폭력과 기만’의 화신 또는 악의 교사로 알려져 왔는데, 제5절 “폭력의 경제학”에서 월린은 그런 해석이 잘못된 것 또는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적 격동기가 아니라도 기득권과 기대, 특권과 권리, 야망과 희망 같은 이 모든 것이 희소한 재화에 대한 우선적인 접근을 요구하는 정치적 갈등의 상황에서 정치적 행위자는 불가피하게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마키아벨리는 명료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월린은 마키아벨리가 이런 정치적 상황의 절박성을 십분 이해하면서 강제력의 통제된 사용에 관한 학문(월린의 표현에 따르면, 폭력의 경제학)을 창조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그는 폭력의 사용 목적과 관련하여 마키아벨리가 정치적 창조와 정치적 파괴 사이에 명확한 구분을 내렸다는 점에 주목한다. 폭력에 대한 통제는 새로운 학문이 특정한 상황에 적합한 정확한 폭력의 양을 처방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할 것을 요구하는 바, 마키아벨리는 극약을 처방하는 의사의 심정으로 폭력에 대한 적절한 통제에 부심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월린은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이 정치적 윤리와 사적인 윤리를 구분하고자 했고, 인민의 지지를 받는 것이 정치 지도자의 권력 유지에 가장 긴요하다는 점을 역설함으로써 근대의 도래와 함께 정치의 장에서 위력을 발휘하게 될 ‘대중의 출현’을 예상했으며, 마지막으로 인간의 선한 내면bona interiora과 정치적 행위가 추구하는 선善 사이의 증대하는 소외를 예리하게 인식함으로써 서양정치사상사에서 “국가 통치술”statecraft과 “영혼 통치술”soul-craft 간에 형성되어 온 오래된 동맹 관계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8장 홉스 : 규칙의 체계로서의 정치사회
월린은 홉스가 주권자에게 부여한 ‘절대 권력’이 통념적 해석과 달리 사실상 그리 절대적이지 않다는 참신한 해석론을 전개한다. 월린은 이런 해석을 철학에 대한 홉스의 개념에 내재하는 고유한 한계로부터 도출한다. 홉스에게 철학적 지식은 언어적인 진리와 동일시되었으며, 또한 그것은 정의定義와 의미의 명료함을 통해 추구되는 것이었다. 그 정치적인 변형에서, 철학은 과학적 진보보다는 평화를 목표로 삼았으며, 평화는 사람들이 규칙들을 따르는 조건으로 간주되었다. 규칙이란, 행위에 대한 명료하고 권위적인 정의定義의 집합체로서, 수학자가 수학자로서 행한 모든 냈동이 수학에서 받아들인 그 용례에 의해 지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민이 시민으로서 행하는 모든 활동을 지배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정치철학의 연구 주제는 정치적 규칙들과 그것에 적합한 언어 및 개념 정의로 국한되었는바, 언어와 규칙의 중요성은, 자연 상태의 개념, 신의계약의 형식, 주권자와 신민의 지위, 법과 도덕의 위상 및 정치에서의 이성의 역할을 채색하면서, 홉스 정치철학에 각인되었다. 홉스 정치철학의 이런 특징은 결국 정치질서의 역할을 매우 협소한 차원으로 국한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홉스의 자연 상태의 개념을 논하면서 월린은 대부분의 해석자들처럼 이 개념을 주권의 기원이라는 차원에서만 다루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연 상태의 개념이 정치적 지식의 문제에 대한 홉스의 접근법을 조명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지적한다. 곧 자연 상태는 단순히 사람들로 하여금 저항할 수 없는 권력의 창조에 동의하게 하는 인간관계의 극단적인 무질서뿐만이 아니라, 의미의 무질서로 인해 혼란에 빠진 상태 역시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홉스의 자연 상태를 단순한 주권의 부재로서보다 주관성의 상태로서 묘사하는 것은, 통상적 해석처럼 주권의 해체가 사회적 붕괴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그 결과라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고 월린은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자연 상태는 공통적이고 근본적인 의미들에 관한 불일치의 점진적인 증가가 그 절정을 이루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홉스에게 있어서 자연 상태와 시민사회의 구별이 얼마나 유동적인지, 그리고 그의 사상 속에 당대의 상황들이 얼마나 깊게 각인되어 있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이 점에서 홉스의 자연 상태는 영국 내전기에 장로교파의 근엄함에서부터 천년왕국파의 황홀경에 이르기까지 당시 존재하던 수많은 종파들과 수평파Levellers, 개간파開墾派, Diggers 등 정치 세력들이 모두 사적인 판단과 사적인 양심에 근거하여 종교적 사안은 물론 정치적 사안을 놓고 격렬하게 대립했던 상황을 상징한다.
월린에 따르면 사적인 판단에 대한 이 같은 공격은 홉스의 가장 독창적이지만 정치 이론에 대한 그 기여가 가장 적게 주목을 받아 온 인식에 의해 촉발되었다. 이것은 정치 질서가 권력, 권위, 법 그리고 제도 이상의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인식, 즉 정치 질서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언어적인 기호나 행동 그리고 몸짓 등으로 구성된 체계에 의존하고 있는 민감한 의사소통의 체계였다는 인식이었다. 따라서 정치사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는 공통된 정치적 언어였다. 특히 홉스는 정치적 언어가 다른 영역의 언어와 달리 그 의미의 공통성이 그것을 강제할 수 있는―예를 들어, 어떤 권리의 정확한 의미를 선언하고 이를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을 처벌할 수 있는―지배적 권력에 따라 좌우된다는 점에 주목했으며, 지배적 권위에 의한 강제적 개념 정의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자신의 정치철학을 전개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각 개인이 자신의 자연권을 주권자에게 양도하는 계약 행위는 단순히 평화를 확립하기 위한 방법 이상으로서 명료한 의미로 구성된 정치적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행위였다. 자연 상태에서 시민사회로의 전환은, “각자의 독특하고 진실된 추론”이 “최고 통치자의 이성”으로 대체되는 변화를 그 특징으로 했다. 따라서 사회계약에서 주권자에 대한 동의는 주권자가 내린 공적인 개념 정의를 받아들인다는 약속을 당연히 수반했다. 이처럼 주권자에게 절대적인 입법권을 부여함으로써 사람들은 ‘위대한 개념 규정자’a Great Definer, 공통된 의미를 주권적으로 분배하는 자, 곧 ‘공적 이성’을 확립했다.
그런데 월린은 규칙의 체계로서 정치사회를 개념화한 홉스의 정치철학이 정치의 본질적인 문제가 규칙의 해석, 위반에 대한 판정, 심판의 최종성과 관련된 문제로 환원될 수 있다고 믿는 오류에 기반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 결과 홉스의 주권자의 권력은 인위적인 그리고 언어적으로 결정된 기호와 정의定義의 체계라는 영역으로 제한되고 말았는데, 이는 정치에 대한 잘못된 개념에 근거한 것으로서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정치적 결정이란 상충하고 있는 정당한 주장들을 취급해야 한다는 어려움을 안고 있으며, 이런 어려움은 분배되어야 하는 재화의 희소성과 그 재화가 지닌 상대적인 가치로 인해 더욱 복잡해진다. 그런데 홉스의 주권자는 이런 문제를 다루는 데 무력하다는 것이다. 또한 월린은 홉스의 정치철학을 ‘공동체(성)’을 결여한 권력이라고 비판한다. 홉스에 의해 정치 질서는 그 강력한 필연성에도 불구하고, 낯선 존재로 남아서 인간의 ‘외부’에 작용하는 것으로 제한되었다. 이 점에서 홉스적 인간은 서구 정치사상사에서 많은 사상가들이 결코 등한시한 적이 없는 ‘공동체(성)’을 결여하게 되었다. 즉, 홉스는 권력의 재료가 수동적으로 묵묵히 따르는 유순한 신민이 아니라, ‘활동적인’ 시민, 곧 공적인 관여에 대한 능력과 적극적인 지지를 통하여 통치자와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시민에서 발견된다는 인식을 결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월린은 정치권력에 대한 홉스의 개념화가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고 심지어 공허하기까지 한 것이었다고 비판한다. 그는 홉스의 주권자에게 부여된 권력 개념이 시민들의 사적인 권력과 지지를 적극적으로 동원하기보다는 단순히 방해물의 제거를 요청할 뿐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시민의 역할은 권력자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기보다는 단지 옆으로 비켜서서 간섭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했다. 이 점에서 홉스는 주권자의 효과적인 권력이 사적인 권력의 지지에 결정적으로 의존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고 비판한다.
이런 비판과 함께, 월린은 자유주의의 출현과 함께 진행된 정치철학의 쇠락을 논하는 제9장에서 홉스의 정치철학이 기여한 바를 지적한다. 홉스에게 한 사회 내의 정치적인 것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는 바, 그것은 전체를 감독하며 다른 형태의 활동을 직접 통제하는 것을 그 특유한 직분으로 하는 권위, 자신이 한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에 기초하는 의무, 그리고 공적으로 중요한 행동을 다스리는 공통된 규칙의 체계를 말한다. 이 점에서 홉스는 정치철학의 기본적인 과제가 진정으로 정치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규정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고 월린은 주장한다.
제9장 자유주의 그리고 정치철학의 쇠락
월린은 자유주의 정치사상의 발전과 더불어, 특히 로크의 정치철학을 필두로 하여, 정치적인 것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화가 상실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월린에 따르면 고대 이래로 “정치적인 것은 공적이고 전全 공동체에 공통되며, 일반적인 것에 관심을 갖는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고, 사적인 영역과 명확하게 대조되며, 독특하고 자율적인 것으로 정립되어 왔다.” 그런데 로크 등 자유주의 사상의 대두와 함께 정치적인 것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화는 “로크의 자연 상태에서처럼 ‘사회적인 것’의 영역이 사실상 자기 규제적인self-regulating 영역으로 개념화됨에 따라 상실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정치적인 것의 정체성이 모호하게 되고 그 지위를 잠식당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정치적인 것은 “단지 잔여적인 중요성만을 지니게 되었고……정치 참여는 방어적인 활동으로 가치가 저하되었”으며, 정치적인 것은 “사회의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 되는 대신에……단순히 ‘상부구조’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월린은 정치적인 것의 잠식과 사회적인 것의 부상이 다양한 이데올로기와 교의, 곧 자유주의, 보수주의, 사회주의, 반동주의reaction, 무정부주의, 관리주의managerialism 등에 공통된 근본 주제였다고 지적한다. 이런 이론들에서 정치는 ‘강제’를, 사회는 ‘자유’를 표상하면서 사회가 정치적인 것을 대체했고, 그 결과 사회과학이 출현했다고 주장한다. 월린은 이런 사상사적 경로를 주로 로크, 고전 경제학자들, 프랑스 자유주의자들과 영국 공리주의자들의 저작에 대한 분석을 통해 추적하고 있다. 먼저 자유주의 경제학자에 의해 제시된 자유로운 시장에 의해 규율되는 자율적인 사회에 대한 비전은 사회를 비정치적으로 개념화하게 했으며, 이에 따라 정치적 범주들의 쇠락과 사회적인 것의 상승이라는 현상이 발생했다. 자유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정치적 행위에 대한 관심의 결여 및 경제학이 인류에 대한 진정한 연구이며 경제적 활동이야말로 진정한 목적이라는 확신이 널리 확산되었다. 자유주의자들은 점차 경제학이야말로 개인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 가장 유용한 지식의 형태일 뿐만 아니라 (정치철학이 본연의 임무라고 자임했던) 사회의 공통 업무를 다루는 데 필수적인 지침도 제공해 준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정치 이론의 쇠락은 가속화되었고, 정치철학은 다른 형태의 지식에 압도되게 되었다. 정치사상은 이렇다 할 목표 없는 막연한 활동이 되고 그 전통적인 역할이 유사한 분과 학문에 흡수되어 버리는 상황이 도래했다.
이런 주장을 하면서 월린은 자유주의에 대한 통념을 무너뜨리는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독특한 해석론을 전개한다. 월린은 중세의 기독교적 세계관에 도전하여 자유주의가 승승장구하는 부르주아 계급의 신조로서 인간의 이성이 지식과 행위를 위한 유일한 지침이자 권위로 정립되어야 한다는 당당한 신념을 펼쳤으며, 좀 더 나은 진보를 향해서 끝없이 전진하는 낙관적인 역사관을 전개했고, 인간과 사회를 전체적으로 개조할 수 있는 신과 같은 능력을 인간의 정신과 의지에 부여했다는 자유주의에 대한 통념화된 해석에 도전하고 있다. 이런 통념화된 해석과 달리 월린은 자유주의자 및 고전 경?학자의 저술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자유주의가 이성에는 한계가 있으? 비합리적 요소가 인간과 사회의 저변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월린은 먼저 18~19세기 서구 근대 정치사상사에서 혼재되어 있던 민주적 급진주의의 전통과 자유주의의 전통을 구별하고, 이어서 자유주의가 차분함의 철학philosophy of sobriety이라는 점, 곧 두려움에서 태어나고, 환멸에 의해 숙성되며, 인간의 조건이란 고통과 불안의 연속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 성향을 지닌, 일종의 소심함을 내면화한 철학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월린은 자유주의의 부상에 따른 정치철학의 쇠락 과정 그리고 자유주의에 대한 통념적 해석에 도전하는 독특한 해석을 로크를 비롯한 자유주의 이론가들의 저작에 대한 분석을 통해 치밀하게 밝혀내고 있다. 결론적으로 그는 로크 이후 2세기 동안 전개된 정치사상은 세 가지 주제, 곧 정부와 물리적 강제의 동일시, 스스로 존재하는 실체로서 사회의 등장 및 비인격적인 원천에서 비롯하는 강제의 자발적인 수용에 대한 하나의 긴 주석이었다고 서술한다.
제10장 조직화의 시대 그리고 정치의 승화
월린은 수정자본주의와 미국 경제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1960년의 시점에서 당시 서구 사회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정치적인 관심의 쇠퇴를 지적하면서 그 주된 원인을 조직화 그리고 정치의 ‘승화’sublimation라는 관념을 통해 포착하고자 한다. 여기서 사용되는 ‘승화’라는 개념은 정신분석학적 용어로서 ‘성적인 충동을 무의식적으로 무언가 비성적(非性的)인 활동으로 전환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 대한 열렬한 짝사랑을 고된 일에 몰두하는 것으로 전환하는 것은 ‘승화’에 해당한다. 따라서 정치에 대한 독특하고 자율적인 개념의 승화는 현대 정치 이론이 전통적인 정치 구조의 외부에서, 곧 이전에 사적이거나 비정치적이라고 여겨졌던 사회적 영역에서 ‘정치적인 것’을 발견하고, 그런 영역에 정치(학)적 개념과 이론을 적용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정치의 승화는 시민들이 전통적인 정치의 영역 밖에서 정치적인 만족을 구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그렇게 본다면 문제는 정치적인 것에 대한 무관심이라든가 정치적인 것의 쇠퇴가 아니라 비정치적인 제도나 활동에 의한 정치적인 것의 흡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월린은 “인간 존재의 조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 정치적인 것의 이런 전환이 초래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10장에서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월린은 제10장의 제목이 이미 시사하고 있듯이 그 답변을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는 조직화와 관료화에서 찾고 있다. 오늘날 개인은 거대하고 복잡한 조직이 압도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시민은 ‘거대 정부’에, 노동자는 거대 노동조합에,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은 거대 기업에, 학생은 관료화된 대학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월린은 19세기 이후 이런 조직화와 관료화를 예언하고, 설명하고, 찬양하고, 비판한 이론가들―대표적으로 막스 베버, 생시몽, 레닌, 뒤르켐, 드 메스트르, 드 보날드 및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현대의 경제?행정?조직 이론가 등―을 분석하면서 그 이론적?사상적 궤적을 추적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월린은 19세기 이론가들이 거의 만장일치로 정치를 경멸했고, 대신 사회를 찬양하면서 이전에 정치 질서에 부여되던 특징적인 지위를 사회에 부여했다고 주장한다. ‘사회’에 대한 몰입은 상호 연관된 두 가지 이론적 경향을 야기했는데, 하나는 공동체의 가치를 재확인하려는 시도이고 다른 하나는 조직화의 우월성에 대한 몰입이었다. 그리고 이 두 경향은 소박한 공동체가 지닌 따사로움에 대한 향수와 대규모 조직의 효율성에 대한 집착이라는 상호 모순적 성격을 띠면서 해결하기 어려운 이론적 긴장을 야기했다.
월린은 조직화 및 정치의 승화와 함께 수반된 이론화 경향이 정치적인 것의 파편화와 해체를 초래하면서 인간의 삶에서 전체 공동체의 선善을 추구하는 정치 질서의 최고성, 우월성 및 포괄성 그리고 시민됨의 통합적 기능, 곧 정의의 관점에서 공동체의 삶을 조망하고 그것에 참여하는 능력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제10장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