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osse/ 람세스 2세는 실물보다도 풜씬 거대한 석상들을 여럿 세우게 했다. 이것들의 크기는 대략 2미터에서 20미터에 달하는데 이집트인들은 이 중 가장 규모가 큰 것들을 '거상'이라고 물렀다. 거상들은 신격화*된 왕의 존재를 발현하는 '카'의 이미지로 받아들여졌다. 거상들에는 이러한 기능을 설명하는 이름이 부여됐다. 가령 피 람세스*에 있는 '신 아몬이 사랑하는 람세스'라든가, 룩소르*에 있는 '왕자들의 태양 우세르마아트라 세테펜레', 카르나크*(숨어 있는 마당)에 있는 '아몬 무 엔 카무테프가 사랑하는 람세스'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거상들은 주로 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되었는데, 호르베이트에서 발견된 일련의 비석들을 보면 특히 군사적인 용도로도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에스 사드르 만쉬예트에서 발견된 글에는 이 거대한 조상들의 제작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8년, 파종의 두번째 달, 여덟번째 날... 폐하께서 거대한 규암을 발견하셨다. 레*의 시대 이래 누구도 그처럼 큰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 높이가 화강암 오벨리스크를 능가하는 그런 바위를 폐하께서 몸소 찾아내신 것이다....8년, 파종의 세번째 달, 스무 하룻날에 폐하께서는 숙련된 장인들과 똑똑한 일꾼들을 몸소 발굴대로 임명하셨다.
그 작업은 9년, 파종의 세번째 달, 열 여드레 만에 끝이 났으니 '람세스 메리아몬 신'이라고 부르는 조상을 완성하기까지 1년이 걸린 셈이었다....폐하께서는 근처에서 또 다른 채석장을 발견하시어 흡사 붉은 나무처럼 보이는 규암 조상들을 제작할 수 있게 하였다. 다시금 폐하는 프타*신전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셨다. 우리는 이 조상들을 폐하의 이름을 따서 '프타의 아들 람세스 메리아몬'이라 불렀다. 이 채석장에서 생산된 다른 조상들은 람세스 메리아몬의 프타 신전과 피 람세스*에 있는 람세스 메리아몬에게 바쳐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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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 2세에 대해 쓴다는 것은 전기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 아니다. 이 작업을 위해 필요한 왕의 성격이나, 사상, 측근을 대하는 행동으로 본 기질 등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 우리는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를 묘사한 어떠한 개인적인 증언도 남아 있지 않다. 결국 다른 이집트의 군주들처럼 완전히 공식적인 자료에 의지 할 수밖에 없다. 외모 역시 그의 미라를 근거로 하여 추정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그의 부친, 조부, 그리고 세티 군대의 대장이었던 증조부의 이름은 밝혀졌다.
모친은 '대왕대비' 투이로 그녀의 모습은 바티칸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거상과 무덤에서 출토된 카노푸스 단지(장례 의식에서 미라를 만들 때 시체에서 내장을 꺼내 행료로 방부 처리해 넣어 두었던 뚜껑 달린 그릇 : 역자)의 뚜껑을 통해 알 수 있으며 부계 쪽 증조모는 사트레였다. 사트레는 왕비들의 계곡에 처음으로 붇힌 '대왕대비'였다.
전해지는 자료는 여러 왕비들이 낳은 100여 명 가량의 왕자와 공주들이 있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 그러나 넷째 아들인 카에뫄세트 왕자를 제외하고는 그 개개인의 면모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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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 2세는 실물보다도 훨씬 거대한 석상들을 여럿 세우게 했다. 이것들의 크기는 대략 2미터에서 20미터에 달하는데 이집트인들은 이 중 가장 규모가 큰 것들을 '거상'이라고 물렀다. 거상들은 신격화*된 왕의 존재를 발현하는 '카'의 이미지로 받아들여졌다. 거상들에는 이러한 기능을 설명하는 이름이 부여됐다. 가령 피 람세스*에 있는 '신 아몬이 사랑하는 람세스'라든가, 룩소르*에 있는 '왕자들의 태양 우세르마아트라 세테펜레', 카르나크*(숨어 있는 마당)에 있는 '아몬 무 엔 카무테프가 사랑하는 람세스'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거상들은 주로 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되었는데, 호르베이트에서 발견된 일련의 비석들을 보면 특히 군사적인 용도로도 쓰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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