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뚝 그치자
마늘밭에 햇볕이 내려옵니다
마늘순이 한 뼘씩 쑥쑥 자랍니다
나는 밭 가에 쪼그리고 앉아
땅 속 깊은 곳에서
마늘이 얼마나 통통하게 여물었는지 생각합니다
때가 오면
혀 끝을 알알하게 쏘고 말
삼겹살에도 쌈싸서 먹고
장아찌도 될 마늘들이
세상을 꽉 껴안고 굵어가는 것을 생각합니다
-<마늘밭 가에서>전문
--- p.23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은 것이다.
나를 끝 닿는 데까지 한 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 위에
지금은 인정머리없이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래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한지 손을 뻗어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 p.14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p.13
<아내의 꿈 >
당신이 부여 안고 있는 깃발이
하늘보다 더 푸르고 싱싱하게 휘날릴
그날이 오면
당신을 쫓아낸 사람들의 허물도
그 깃발로 감싸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어느새 아내는 나를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다시 분필을 드는 그날이 오면
죽어도 교단에서 내려오지 말고
언제까지나 사모님 소리 좀 듣게 해 달라고
아내는 상추같이 웃으며 아침 상을 차립니다.
--- p.112
<아내의 꿈 >
당신이 부여 안고 있는 깃발이
하늘보다 더 푸르고 싱싱하게 휘날릴
그날이 오면
당신을 쫓아낸 사람들의 허물도
그 깃발로 감싸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어느새 아내는 나를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다시 분필을 드는 그날이 오면
죽어도 교단에서 내려오지 말고
언제까지나 사모님 소리 좀 듣게 해 달라고
아내는 상추같이 웃으며 아침 상을 차립니다.
--- p.112
- '나에게 보내는 노래' 중에서
너를 위해 내가 불러줄 노래가 있으니
아직은 집으로 돌아갈 때가 아니다
가야 할 길이 많아서 철길은 꿈쩍도 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철도노동자는 푸른 제복을 벗지 않고 있다
기다리는 기차는 오지 않았지만
대합실을 이대로 비워 둘 수는 없다
죽어도 누울 곳이 없는 껌팔이 소년과
귀싸대기 빨간 능금들을 좌판대 위에 두고
아직은 집으로 돌아갈 때가 아니다
집이란, 돌아가 편히 쉬는 곳이 아니라
국물을 끓여먹고 등짝을 데우는 곳이 아니라
단지 떠나야 할 때 구두끈을 조여매는 곳
....(생략)
--- p.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