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물은 모른다, 한국인도 한국인을 모른다?
조선영(ssct@yes24.com)
인문사회 분야의 책을 집필하는 사람들은 속도가 더딘 편이다. 3~4년이 흘러도 다음 책을 못 내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것을 보면 강준만 교수는 분명 다작임에 틀림없다. 2005년에만 자신의 이름을 달고 낸 책이 일곱 권, 올해도 벌써 두 권을 출간했다. 살펴보니 3~4개월에 한 권 꼴로 책을 낸 셈이다.
물론 강준만 교수의 집필 방식에 대해선 말들이 많다. 수많은 자료들과 직접 인용을 기초로 한 그의 저작이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느냐는 이야기들도 있지만, 자신의 관심 분야에 있는 도서들을 모두 섭렵하고 자료를 꼼꼼히 모으는 그의 열정은 결코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다.
그의 화제작 <한국인 코드>는 이러한 '강준만식 집필 방식'의 전범(全範)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책의 말머리에서 소개하고 있는 한국이 처한 두 가지 조건과 한국·한국인의 다섯 가지 속성은 다른 이의 저서에서 차용해온 것이며, 열 가지로 나뉜 한국인의 '코드'들 역시 여러 사람들의 책과 신문 기사와 잡지 등에서 인용한 자료들을 근거로 분류되고 제시된 것들이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유행어로 대표되는 자기방어 기제로서의 냉소주의, 역동성과 조급성이라는 양면을 지닌 빨리빨리 문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한국형 평등주의, 최고와 최대·최초에 집작하는 자존주의, 가족주의와 정실주의, 부정부패로 집약되는 '정(情)' 문화, 6.25에 빚지고 있는 심성, 쏠림 현상으로 대표되는 소용돌이 기질, 서열 문화와 아버지 추종주의, '목숨을 거는' 극단주의가 바로 이 열 가지인데, 어느 것을 읽어보아도 공감가지 않는 구석이 없다.
뒤표지에 있는 말처럼, 물고기는 물을 모르고 한국인은 자신을 모르기에 이 책의 의미는 더욱 더 각별하다.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이 '물 밖에서' 한국과 한국인을 바라 본 책이었다면, 이 책은 '물 속에서' 한국과 한국인을 바라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래서 안돼'라거나 '우리나라는 할 수 없어'라고 분통을 터뜨리거나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던 사람들이 책을 읽게 된다면 좀 더 이성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우리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강준만 교수의 독서편력과 자료 수집 능력, 그리고 그에 그치지 않고 이를 모두 모아 분석하는 통찰력에 새삼 감탄했다. 고(故) 이규태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자료 분류법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는데, 강준만 교수의 자료 분류법도 그에 못지 않으리란 생각이 든다. (황우석 박사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황우석 박사에 대한 기사만을 따로 분류해 모아두었다는 그의 예지력(?)에 감탄했다!)
묵직한 느낌을 주는 인문서들은 예전만큼 판매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즘(ism)'이 죽어버린 시대, 수많은 철학자들과 사상이 무겁고 부담스럽게만 느껴지는 시대. 가벼워진 세태 탓도 있겠지만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사상적 논의들은 그저 공허하게만 들리기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시의적절한 주제를 끄집어내 자료를 제시하고 분석적인 결과를 내놓는 강준만 교수의 글쓰기는 이 시대에 잘 들어맞는 것일 게다.
앞으로 이러한 논의들은 좀 더 많이, 그리고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자기를 알면 남을 알 수 있고, 그렇다면 언제나 승리할 수 있다는 옛 말이 있지 않은가. 굳이 승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자신을 돌아보며 옷깃을 여미는 자세는 참으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