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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캬비크 10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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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캬비크 10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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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3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360쪽 | 441g | 128*188*30mm
ISBN13 9788975276163
ISBN10 8975276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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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면 나는 곧바로 일어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항상 어렵기만 하다. 마치 400년 전부터 침대 속에만 누워 있었던 것 마냥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몸을 일으키려고 하면 여섯 개의 발로 흙을 헤집는 벌레처럼 버둥거린다. 매일 아침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눈을 뜨면 얇은 커튼을 통해 밝은 빛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라디오의 디지털 알람시계 숫자가 눈에 들어온다. 문득 그 숫자는 현재 시각이 아니라 연도 표시라는 생각이 든다. 헉, 1601년이다. 앞으로도 족히 400년은 더 지나서 태어나야 할 인간이 너무 일찍 눈을 떴다. 제기랄. 콜라병을 집어 들고, 한 모금을 쭉 빨아 마셨다. 콜라병 주둥이에게 입 냄새 풀풀 풍기는 모닝키스 한 방. 아침에 눈뜨자마자 계집애 입을 쪽쪽 빠는 키스는 절대 금물이다. 죽어서 나자빠진 시체나 마찬가지여서 김빠진 맥주처럼 맛이 시들 푸들이고, 그런 계집애들은 키스를 했는지조차 모른다. 절대로 딱 붙어서 같이 잠을 잘 일도 아니다. 잠은 죽음. 매일 아침에 부활이 벌어진다. 육신의 부활. 그런데 항상 맨 먼저 일어나서 혼자 빳빳하게 서 있는 놈은 내 거시기이다.
(……)
내 이름은 힐누어 비외르든 하프스테인(Hlynur Bjorn Hafsteinn). 나는 1962.02.18에 태어났고, 오늘은 1995.12.15이다. 이 사이에 있는 모든 날들은 나의 것이고, 이 두 개의 숫자 사이에 나는 존재한다. 나는 토요일에 태어났고, 오늘은 다시 토요일이다. 인생은 하나의 주이다. 매 주말이면 나는 죽는다. 하나의 주가 지나는 동안 세계의 모든 역사가 더불어 흘러가고, 그 후에 또 다른 세계사가 시작된다. 한 주가 끝나면 나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다시 태어나기 전에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 된다. 인생은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의 짧은 휴식시간이다. 사람이 영원히 죽어 있을 순 없는 노릇. 힐누어 비외르든 하프스테인(Hlynur Bjorn Hafsteinn), 1962~95년에 죽음과 탄생이 반복되었고, 이와는 반대로 1995~62년으로 거슬러 돌아가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내가 정확하게 알고 있고, 부인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곧 나이다.
(……)
“그래,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해. 오늘 아침에 내 기분이 어땠는지 알아? 매춘부가 된 것 같았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매춘부한테도 ‘잘 있어’ 하는 인사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니니, 안 그래? 일을 끝내고 방을 나갈 땐 적어도 계산을 해줘야 하는 거 아냐? 근데 넌 왜 계산을 해주지 않는 거야?”
“그런 남자들이야, 그 전에 미리 돈을 지불하니까 그런 거겠지.”
“아, 그래? 넌 이런 일에 통달해 있구나. 지금 네 경험을 얘기한 거니?”
“아냐, 영화에서 봤어.”
“정말이야?”
“왜 그게 문제가 되는 건데? 우린 그저 같이 잤을 뿐이잖아. 너하고 나 사이에는 오래전에 말라비틀어진 파리지엔(콘돔을 지칭하는 속어) 세 개 이외에 더 남아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17년 동안 같이 살았던 부부처럼 그렇게 아옹다옹할 필요가 어딨어. 그러니깐 이건 그냥 하나의…… 과정이지 뭐.”
“하나의 과정?”
“그래. 하나의 작업이야, 의학적인 관점에서.”
“내 생각엔 그 이상인 것 같은데.”
“오케이, 그럴 수도 있겠지. 말로 표현해보면 그렇다는 거야. 작업 중에 수술용 장갑을 끼는 것도 아니니까.”
“넌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생선 내장을 발라내는 일이나 그 일이나 네 입장에서는 다 똑같구나.”
“난 오히려 간단한 외과수술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 그럼 누가 환자야? 내가 환자란 말이니, 그래? 수술을 하려거든 그 전에 먼저 마취부터 해주고, 고무장갑도 좀 끼고, 그럴 마음은 없어?”
“고무장갑에 비하면 파리지엔은 뭔가 좀 다르지 않아?”
“콘돔을 사용하지 않으면 기분이 다를 거란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그렇게 되면 둘 사이를 가로막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하느님 맙소사, 힐누어! 넌 도대체 동정심이란 게 있긴 하니? 상대에 대한 배려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긴 한 거야? 이것도 영화 속에서 본 게 전부인 거 아니야?”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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