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물질적으로 원시적 삶으로 '행복'하게 살아왔던 티베트의 라다크 마을 사람들이 그때까지 상상조차도 전혀 할 수 없었던 편리하고 물질적으로 풍요한 문명생활을 맛보았고, 그들에게 문명 이전의 삶과 문명화된 삶 가운데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들은 과연 문명 이전의 삶의 양식을 선택할 것인가? 각별한 단서가 없는 한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이다.
동물로서의 인간이 생물학적 만족을 끝없이 추구하는 것은 그의 본질이다. 상상적 동물로서의 인간이 항상 보다 나은 것을 향하여 자신의 끝없는 이상을 파우스트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또다른 그의 본질이다.
환경위기의 구체적인 원인이 인류의 과도한 물질적 생산과 소비에 있다면, 그러한 식의 물질생산과 소비중지는 환경위기 극복의 하나의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우리가 현재 처하고 있는 환경위기가 생활용품의 소비절약이나 검소한 생활 등과 같은 소극적인 방법으로 소박하게 극복하기에는 그 정도가 너무 심각하고, 그 규모가 너무 크며, 그 형태가 너무 복잡하다.‥‥
오늘 우리가 처한 환경, 생태계, 문명의 문제는 소극적으로 대처하기에는 너무나 방대하고 다급하다. 그것은 문명으로부터의 탈피, 소비절약, 과거의 삶의 양식으로의 귀환 등이라는 소극적 방법과 아울러 과학기술적, 정치적 차원에서의 전면적이면서도 계획적이고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 「계획적 실천」중에서
요컨대 인간중심적 윤리가 인간중심적 세계관의 틀 안에서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있다면 똑같은 논리에서 생태중심적 윤리는 생태중심적 세계관의 틀 안에서 성립될 수 있다. 인간중심적 세계관이 생태중심적 세계관으로 대치되어야 한다면, 인간중심적 윤리는 생태중심적 윤리로 대치되어야 한다.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환경오염 문제, 지구적으로 나타난 생태계 파괴문제의 심각성은 문명의 계승, 인류의 생존 그리고 생태계 보존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문명, 인류의 생존, 생태계 문제는 곧 환경의 문제이다.
그러나 문명, 인류, 생명체, 즉 환경위기의 근원적 원인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주체는 인류뿐이다. 인류만이 지구상에서 유일한 행동의 주체이며, 따라서 윤리적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문명, 인류 그리고 생태계에 대한 책임과 그러한 것들이 당면한 위기극복에 대한 윤리적 책임과 의무는 오로지 인류의 몫임을 말해준다.
문명, 인류, 생태계의 앞으로의 운명은 오로지 인류에 달려 있다. 신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인류만이 문명과 인류, 그리고 지구와 자연을 파멸과 종말, 황폐화된 죽음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인류는 자신의 막중한 책임에 대해서 한없는 무거움과 동시에 긍지를 느끼게 된다.
--- 「생태중심적 윤리」중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의 관점에서 본 환경위기가 인간 이외의 모든 생명체의 생존과 번영을 위협하는 환경의 위기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문명 더 나아가서는 인간의 생물학적 존속까지를 위협하는 오늘의 자연적, 문화적 지구의 상황이 당장은 어떤 특정한 생명체의 존속과 번영의 관점에서 보면 최적인 것으로 판단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모든 생명체의 종말을 뜻할지도 모른다는 추론과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바로 환경문제는 인간의 관점에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생명체 일반인 생태계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대처해야 할 문제로 바뀐다.
문명의 위기와 환경위기의 개념적 구별과 그 관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환경문제를 보다 합리적으로 논하고 이해하며, 접근하고 대처함에 있어서 전제되어야 할 필수적 조건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환경위기는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에서 문명의 위기와 동일한 것으로 전제된 채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사정 하에서 환경문제를 올바로 이해하고, 적절히 풀어나가자면 우선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의 환경 그리고 문명 위기의 원인을 어떻게 진단한 것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 「환경과 자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