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정 (sbbonzi@yes24.com)
어느 빌라의 3층, 열대어를 기르는 그 집에는 얼마전에 아주 슬픈 일이 있었다. 아저씨가 돌아가신 일이다. 다정했던 아저씨는 회사 일에 쫓겨 아이들과 많이 놀아주지도 못하고, 강아지를 기를 만한 뜰이 있는 집으로 이사 가자고 한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하늘나라에 가셨다. 아저씨가 지키지 못한 약속을 지켜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줌마는, 바람이 많이 불던 어느 날 전자상가 지하도를 건너다가 새끼토끼 한 마리를 사 온다. '깜동이'라 이름 붙여진 토끼는 그 집에 머물러 있던 슬픔을 조금씩 밀어내며 가족들 사이로 섞여 들어간다.
토끼집이 달리 없어 쥐새끼 햄스터의 집에 살게 된 깜동이. 어른스럽고 배려심 깊은 잠꾸러기 큰 언니와 자신을 늘 깜동이 멍멍이라고 부르는 새침데기 작은 언니,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은 조용한 아줌마를 보며 그 일상을 꼼꼼하게 적어내는 이 책은 깜동이와 식구들이 사는 알콩달콩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깜동이가 그곳 빌라 3층에 살기 시작한 것도 어느덧 한 달 반이 지났다. 깜동이는 식구들이 하필 자기의 궁둥이가 커졌다는 얘길 했다며 창피해하기도 하고, 이젠 키가 자라서 햄스터의 집에 있을 수 없자 새장으로 옮길까 하고 가족들이 의논을 하자 이번에는 새장이라며 투덜대기도 한다. 또 깜동이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상추 잎만 뜯어 먹는 게 미안하던 차에 아줌마가 큰 언니를 깨우라고 하자 기뻐하기도 한다. '쓸모 있는 토끼'가 되었다는 뿌듯한 기분으로 말이다. 기왕 쓸모 있는 토끼가 되기로 결심한 깜동이는 강아지를 사주기로 한 아저씨를 원망하며 그리워하는 작은 언니를 위해 강아지 흉내를 내기도 한다.
깜동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가던 어느 날 하늘나라에 가 계신 아저씨의 기일이 되었다. 낯 모르는 사람들이 그곳에 오고 아줌마와 두 언니들은 제사를 지내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깜동이는 아빠가 없는 언니들에게 무언가 도울 일이 없을까 생각하며 전보다 더 바빠질 결심을 한다.
"재롱도 떨고 말썽도 부리고. 그래. 그게 좋겠어."
그러나 깜동이의 그 결심도 다 소용없게 되었다. 깜동이의 성장 속도가 빨라 애완용으로 기르기에는 버거워지고, 두 언니들의 몸이 가려운 게 깜동이 탓일지도 모른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또 작은 언니가 강아지라고 놀리는 게 심술이 나면 콱 물기도 했는데 그렇게 무는 버릇이 생기면 나쁜 병을 옮길 수 있다는 등의 이런 저런 말 끝에 작은 언니가 다니는 학교 사육장으로 깜동이를 보내기로 의견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드디어 정들었던 깜동이를 사육장으로 보내는 날. 아줌마는 언니들에게 함께 갈 것을 물었지만 언니들은 고개를 젓는다. 씩씩한 깜동이와 함께 한 시간이 아쉽고 섭섭해서 깜동이를 보내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줌마와 함께 간 작은언니네 학교 사육장에는 잿빛 몸을 한 토끼친구도 있었고 꽥꽥 오리친구도 있었다. 그리고 들었던 대로 늙은 수탉 한 마리도 있었다. 처음 그곳에 가던 날 수탉은 깜동이에게 시비를 건다.
"이름이 뭐야?"
"앞숏뒤롱이야"
"모, 모라구?"
"앞숏뒷로옹"
"옵숑도룡?"
"앞숏뒷로오오오옹"
큰 언니가 깜동이를 처음 봤을 때 앞다리는 짧고 뒷다리는 길다며 '앞숏뒷롱'이라고 지어준 별명이었다. 그렇게 말도 잘 못 알아듣는 수탉과 귀를 뜯겨가며 힘겨루기를 하지만 쉬 결판이 나지 않는다. 같은 사육장에 있던 칠면조, 청공작, 중병아리 그리고 언제 왔는지 큰 언니, 작은 언니, 아줌마가 응원을 하고 있다. 깜동이는 큰 응원에 힘입어 앞차기, 옆차기, 돌려차기, 이단옆차기, 감아차기, 목조르기, 털뽑기, 찍기의 수법으로 수탉을 이긴다.
아줌마네 가족들이 그렇게 깜동이를 보러 오기를 몇 번, 계절은 흘러 사육장 안의 감나무 잎이 발갛게 물드는 가을 어느 날, 깜동이는 열 마리나 되는 새끼를 낳는다. 깜동이는 토끼를 낳아 엄마가 되면서 예전에는 몰랐던 엄마 아빠에 대한 사랑과 자기를 돌봐준 아줌마네 가족들을 자신이 깊이 사랑하고 있었던 마음을 알게 된다. 아줌마네 또한 아저씨가 없던 휑한 자리에 말썽을 피우며 그 슬픔을 밀어내던 깜동이를 깊이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