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30만 명 이상의 소년 소녀 병사가 있다. 때로 10살이나 그 이하의 어린이가 병사로 충원될 때도 있다. 가장 어린 병사는 무거운 짐을 옮기거나 지뢰를 시험하기 위해 길을 빗자루로 쓸어 정리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어린이들이 전투에 동원되면, 상대방은 더욱더 모든 민간인을 잠재적 적으로 간주하기 쉽다. --- p. 28
질병은 한때 적군의 공격보다 더 큰 위협이었다. 2차대전 때 병사의 67%가 전투 외의 부상과 질병에 시달렸고, 한국전쟁에서는 그 수치가 77%에 달했다. 오늘날에는 항생제와 나아진 교육 덕분에 이 비율은 낮아졌는데, 걸프전에서는 15%, 보스니아에서는 6% 정도 되었다. --- p. 43
총에 맞았을 때, 거칠게 말해서 그건 폭발의 중심에 있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주위에서 큰 총소리가 들리고 눈을 멀게 하는 섬광이 스치는 듯 했다. 그리고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는데 고통은 없는, 마치 전기 단자를 쥐었을 때 같은 격렬한 충격을 느꼈다. 완전하게 약해지는 느낌이었고, 무엇인가로부터 얻어맞고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번개에 맞으면 아마 똑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나는 상상한다. 나는 즉각적으로 내가 총에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모든 것은 1초 안에 일어난 일이다. 다음 순간 무릎이 꺾이면서 쓰러졌고 큰 소리를 내며 머리가 땅에 부딪혔는데, 다행스럽게 머리를 다치지는 않았다. 나는 아무 감각도 느낄 수 없었고 멍한 기분에 휩싸였는데, 심함 부상을 입었다는 자각은 있었지만 고통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 p. 52
핵공격을 받는다면 언덕 뒤에 숨거나 진지나 참호로 몸을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개활지에 있다면 눈을 감고 가능한 한 피부를 노출시키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폭발이 일어나는 방향의 반대편으로 얼굴이 위치하게 눕고, 폭발이 일어나는 을 보지 말아야 한다. 눈이 멀 수 있기 때문이다. 폭발파가 지나갈 때까지 엎드려 있다가 나중에 부상과 장비의 손상을 확인한다. 폭발 세 시간이나 네 시간 이후라도 방사능 요오드를 방지하기 위해 요오드칼륨 알약을 복용한다. 그 알약은 다른 방사능 물질에는 효과가 없다. --- p. 76
실전 상황에서 뇌는 ‘싸울 것인가 도망할 것인가’의 시스템을 작동할 것이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대량 방출될 것이다. 분당 70회 정도 뛰던 심장이 순식간에 분당 200회 이상으로 뛸 것이다. 큰 근육으로 흘러들어가는 혈액이 증가해서 신체가 더 강해지고 더 빨라질 것이다. 상처가 나도 피를 덜 흘리게 하려고 손과 발의 미세혈관이 수축될 것이다. 이런 반응의 일반적인 부작용들은 시야가 좁아지고, 운동 조절 능력을 잃고, 사고를 명확히 할 수 없게 하는 것 등이다. 급작스러운 위험에 직면하게 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잘 볼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고, 몸을 제대로 컨트롤할 수 없을 것이다. 첫 번째 실전 상황을 경험하는 동안 병사는 발작적으로 경련을 일으키고 자궁 내의 태아처럼 몸이 말려질 수도 있다. 며칠이 지나면 아마 회복될 것이다. --- p.94
전투 중 사람을 죽일 때 아마 몇 번의 감정적인 반응을 겪어야 할 것이다. 이런 감정들은 보통 연속적으로 일어나는데, 모든 사람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첫 번째 단계는 몸이 얼어붙고 방아쇠를 당길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는 실제적인 살인의 단계인데, 훈련의 결과 반사적으로 행동에 옮기게 될 것이다. 아마 고양감을 느낄 것이다. 살인은 아드레날린을 만들어내는데, 반복되는 살인은 ‘살인중독’을 유도할 수 있다. 이런 감정은 중간 정도의 거리나 원거리에서 사격할 때 특히 강해질 수 있다. 다음 단계는, 양심의 가책과 감정의 급격한 변화를 느끼는 단계인데, 다시는 적을 사살 할 수 없게 할 수도 있다. Dave Grossman은 이것을 ‘고통과 공포의 꼴라쥬’라고 표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 경험은 감정의 격변과 혐오 같은 것이었다...나는 내 총을 놓고 울었다. ..피가 흥건했다...나는 토했고... 울었다...나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부끄러웠다...나는 ‘미안해’라고 바보처럼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리고나서, 그저 다시 토했다.” 많은 병사들이 전투를 계속 수행하기 위해서 양심의 가책 같은 감정을 거부하지만, 소수의 사람만이 사람을 죽이고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수 있다. 그런 단계를 거친 이후의 살인은 더 쉬워진다. 마지막 단계는 합리화와 수용이다. 이것은 자신이 행한 일들을 설명하려는 생애의 과정이다. 대부분의 병사는 자신이 옳고, 필요한 일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만일 자신의 살인을 합리화하지 못한다면 전후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될 수 있다. --- p.98
전체 인구의 2%가 ‘타고난 킬러’라고 한다. 한 부대가 사살한 적 사망자의 50% 이상을 이 2%의 병사가 죽인다. 나머지 98%의 병사들은 살인에 대한 저항감을 극복해야 한다. --- p.101
2차대전에서 격렬하게 싸운 한 사단에서 병사들의 25%가 전투 중 두려움 때문에 토했다고 한다. 또 25%의 병사들이 바지를 입은 채 소변이나 대변을 지렸다고 말했다. 이런 것은 공포에 대한 신체적 반응이다. 그것은 교전 능력이나 전투 의지와는 상관없다. --- p.103
참전의 경험은 아마 전 생애에 걸쳐 영향을 미칠 것이다. 2001년에 2차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한 59세에서 89세 사이의 퇴역군인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19%가 참전 경험 때문에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받는다고 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참전 경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고통스러워한다. 다른 연구는 종전된 지 50년이 지난 2차대전의 외상이 아직도 남아 있는 퇴역군인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어떤 연구는 75년이 지난 1차대전의 외상도 아직 남아 있는 퇴역군인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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