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쇠 지렛대를 흘긋 본다. 관절이 하얘지도록 움켜쥐고 있다. 그때 문득 가슴속 개가 다시 나타난다. 거대하다. 발이 말굽 같다. 등줄기의 털이 목부터 꼬리까지 쭉 일어섰다. 이가 드러난다. 나를 통째로 삼킬 태세다. 그 뒤에는 저 여자도 삼키겠지. --- p.14
"씹할, 왜 그럴 것 같아요? 사람들이 살인을 하면 어떤 느낌이냐고 물어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동안 앉아서 시라도 쓰고 있었던 줄 알아요? 그게 무슨 느낌인지 분석하면서? 난 그냥 그렇게 된 거라고요! --- p.44
에리크가 울먹이며 밀드레드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녀를 일에 다 빼앗겼다고, 아기를 원한다고 할 때도 있었다. 그럼 밀드레드는 손바닥을 위로 들어 보이며 뭘 기대하냐고, 행복하지 않다면 떠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에리크는 어디로, 누구에게로 가란 말이냐고 물었다. 폭풍은 언제나 지나가고 일상이 비틀거리며 다시 굴러갔다. 그리고 늘, 거의 늘, 그것으로 에리크는 충분했다. --- p.136
“남자들이 여자들을 때립니다.” 밀드레드가 깊이 숨을 들이마신 다음 말을 잇는다. “남자들이 여자들을 얕잡아보고, 지배하고, 박해하며, 죽입니다. 또 여자들의 생식기를 잘라내고, 갓 난 여자 아기들을 죽이며, 베일을 쓰도록 강요하고, 가두고, 강간하고, 교육받지 못하도록 막고, 더 낮은 임금을 주고, 권력을 가질 기회를 빼앗습니다. 또한 남자들은 여자가 사제가 될 권리를 부인합니다. 저는 그런 사실들이 없는 척할 수가 없습니다.” --- p.182
술집 밖의 마당은 어둠 속 커다란 방처럼 소란스러웠다. 달그락거리며 자갈 밟는 소리, 재잘거리고 깔깔대며 수다 떠는 소리가 퍼져 나갔다. 별이 반짝이는 검은 하늘 위로 거리낌 없이 치솟고, 부끄러움을 모르고 밀려 나가 강 건너 집까지 닿았다. 그 소란이 숲 속으로, 검은 전나무와 목마른 이끼들 속으로 스며들었다. 도로를 따라 달려 나가 마을을 깨웠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다고. --- pp.268~269
“늑대들과 여자들 사이엔 뭔가 공통점이 있어. 우린 비슷해. 그 암늑대를 보면 우리의 창조 이유가 떠올라. 또 늑대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참을성이 강해. 생각해봐. 영하 50도까지 내려가는 극지방에서도, 50도까지 올라가는 사막에서도 살 수 있어. 세력권을 확보하는 동물이고 한번 정한 경계는 바꾸지 않아. 그러면서도 수 킬로미터씩 방랑을 다니지. 완전히 자유롭게. 무리 내에서는 서로 돕고 의리도 강해. 새끼들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고. 우리와 비슷해.” --- p.295
밀드레드는 울기 시작한다. 입을 일그러뜨리지 않으려 애쓴다. 얼굴을 개의 털가죽 속에 묻는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낸다. 리사가 원한 게 바로 이거다. 어쩌면 실은 그녀를 때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리사는 밀드레드의 눈물과 고통을 바란다. 하지만 만족하지 못한다. 리사 자신의 고통이 아직도 굶주려 있다. --- p.341
눈앞에 밀드레드가 나타난다. 그 후로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야 깨닫는다. 그 첫 일격 이후에. 그때는 그녀를 향한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그가 산산조각 낸 것은, 모두 앞에 보란 듯이 달아맨 것은 밀드레드의 시체가 아니라 자신의 삶이었다.
--- p.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