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카리스마’는 글쓰기이다. 나와 함께 오랫동안 사역한 사람이 아니라면 국어, 창작, 외국어가 학교에서 내 최악의 과목이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가끔 내가 국어 과목에서 낙제하지 않은 것이 선생님들이 나를 또 만나기 싫어서 그냥 합격시켜 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국어 선생님이 겨우 1-2페이지에 불과한 숙제를 내주어도 나는 그것을 해내기 위해 몇 시간을 끙끙 앓아야 했다. 1-2개의 문장을 쓰고 나서 한참 보다 보면 너무 말이 되지 않아 머리를 쥐어박고 싶을 정도였다. 결국 종이를 구기고 새로 시작했다. 이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다 보면 종이와 함께 정신적 에너지가 다 떨어졌다. 1시간을 씨름했는데도 처음 두 문단조차 완성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믿지 못하는 독자들이 있을지 몰라 SAT 점수를 공개한다. 알다시피 SAT는 많은 대학에서 요구하는 시험이다. 내가 그 시험을 치를 때 두 가지 주요 과목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수학’과 ‘언어’가 그것이었다. ‘언어’는 그냥 국어 시험이라고 보면 무방하다. 읽기와 쓰기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 이었다. 가장 높은 점수는 800점이었다. 그런데 내 점수는 무려 370점이었다(그렇다. 370점이다. 당신이 잘못 읽은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 정도면 낙제점이다. 30년 넘게 전 세계를 돌아다녔지만 SAT 언어 영역에서 나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사람은 딱 한 명밖에 만나보지 못했다.
시계를 빨리 돌려, 내 인생의 30대 초로 가 보자. 1991년의 어느 여름 날 아침, 한적한 곳에서 기도를 하던 중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아들아, 글을 써라.” 나는 속으로 웃었다. “하나님, 지구상에 당신의 아들딸이 너무 많아서 저를 다른 사람과 혼동하신 것 아닌가요? 제가 글을 쓰는 것은 원치 않으실 거예요. 제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들에게 물어보세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침묵만 흘렀다. 나는 하나님의 침묵을 동의로 해석했다. 하나님의 반박이 없었기 때문에 내 설명이 통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난 뒤, 다른 주에 사는 두 명의 여성이 2주 간격으로 나를 찾아와 같은 말을 했다. “목사님, 하나님이 쓰라고 주시는 것을 쓰시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 메시지를 다른 사람에게 주실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 목사님은 하나님 앞에서 이 일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겁니다.”
텍사스 주에서 온 두 번째 여성이 플로리다 주에서 온 첫 번째 여성과 똑같은 말을 했을 때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이 나를 감쌌다. 결국 나는 행동을 했다. 그 당시에는 아이패드 같은 기기는 없었다. 그저 펜과 종이만 있었다. 그래서 나는 노트 한 장을 찢어 맨 위에 굵은 글씨로 ‘서약서’라고 적었다. 그러고 나서 다음과 같이 썼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글을 쓸 줄 모릅니다. 그래서 당신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제가 꼭 글을 써야 한다면 단어 하나하나가 성령의 영감으로 쓰이게 해 주십시오. 글자 하나하나에 넘치도록 기름을 부어 주십시오. 제 글이 수많은 남녀와 교회, 도시들, 열국을 변화시키게 해 주십시오. 모든 영광과 찬송과 감사를 오직 당신께만 드리기로 서약합니다. 예수님의 강하신 이름으로 당신과 이 계약(언약)을 맺습니다.” _당신의 아들이자 종, 존 비비어
다시 시간을 현재로 빨리 돌려 보자.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 나는 20권이 넘는 책을 썼고, 그 책들은 수천만 부가 팔렸다. 몇몇 책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일반 분야와 기독교 분야에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내 책들은 10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었고, 몇몇 나라에서는 일반 분야와 기독교 분야를 통틀어 가장 많이 판매된 책들로 꼽힌다.
대부분의 책에서 전체 분량의 20-30퍼센트는 내가 듣지도 읽지도 생각 하지도 못한 것들이다. 그 내용들은 내가 글을 쓰며 떠오른 것들이다. 우리 집 서재나 호텔방에서 내가 쓰고 있는 글에 스스로 깜짝 놀랄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자리에서 펄쩍 뛰면서 “와우, 이건 너무 좋다!”라고 외친 적도 몇 번이나 된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교만한 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답변을 하자면, 나는 이런 내용이 어디서 왔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나 자신에게서 나온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이런 책에 내 이름이 저자로 적혀 있는 것은 하늘 외에 내가 이런 내용을 처음 읽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이 모든 일들이 성령님이 하신 일임을 알고 있다. 이는 사도 바울이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라고 말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도 바울의 말도 다소 교만하게 들린다. 경쟁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심지어 자기애가 심한 사람의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성경을 통해 우리는 바울이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 은혜의 선물을 자랑하는 것임을 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여름날 하나님이 기도 중에 말씀하셨을 때 글쓰기의 ‘카리스마’가 삶 속으로 ‘들어왔다’고 믿는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심하기 전까지 그 카리스마는 내 삶 속에서 ‘활성화되지’ 않았다. 물론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래도 어쨌든 내 생각이 틀렸을 가능성도 있으니 반대 의견에 관해서 잠시 생각해 보자.
어떤 이들은 내가 1979년 거듭나는 순간에 이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할 것이다. 나는 1979년에서 1992년까지 글쓰기라는 것을 시도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뭐라고 확실히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앞서 소개했던 피아니스트처럼 이 은사를 타고 나지 않았다.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그 피아니스트처럼 어떤 은사는 잉태와 함께 주어진다. 예를 들어, 성경을 보면 세례 요한은 어머니의 배 속에서부터 (은사를 주시는) 성령으로 충만했다. 그는 어머니 엘리사벳의 복중에 있을 때 마리아의 복중에 계신 그리스도를 알아보았다(눅 1:41 참조). 30년 뒤 요한이 세례를 받으러 오신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본 것도 같은 은사 덕분이었다(요 1:29 참조).
반면, 어떤 은사들은 나중에 찾아온다. 기스의 아들 사울은 처음부터 예언을 하지 않았다. 그가 예언을 하게 된 것은 청년이 되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면서부터다. 사무엘은 사울이 나중에 악기를 연주하며 예언을 하는 무리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