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틀렸지만, 풀이 과정이 옳다. 지금껏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네 힘으로 오지 않았네? 그럼 된 거다. 그러니까… 증명하라우. 전학이 옳은지, 그른지.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을 때, 화내거나 포기하는 대신 ‘음… 어렵구나. 내일 다시 풀어봐야 갓구나’ 하는 마음. 그런 게 수학적 용기다. 그렇게 담담하면서도 꿋꿋한 녀석들이 결국 수학을 해내는 거지.
전 인민이 입시 전문가 되는 거, 이 나라에선 당연한 거 아니네?
인간의 이성을 극한까지 밀어붙여서리 영원히 존재할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거… 아름답지 않니?
--- 본문 중에서
작가가 쓴 각본대로 만들어지는 영화는 없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탓이다. 배우와 감독 등 스태프의 의견을 수렴하고, 제작사나 투자사의 의사도 반영해야 한다. 예산과 일정의 제약, 로케이션의 불발도 각본과 다른 영화가 나오는 이유다.
이 책에 실린 각본 역시 영화와 다르다. 각본에 있으나 영화에 없는 장면, 각본과 사뭇 다르게 찍힌 대목을 그대로 남겼다. 무삭제 각본인 셈이다. 어떤 이는 영화와 대동소이하다고, 다른 누군가는 많이 다르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영화 감상이 배우와 스태프가 각본을 해석한 결과를 시청하는 행위라면, 각본을 읽는 것은 등장인물과 이야기를 독자 나름대로 풀어내 재구성하는 일이다. 따라서 각본을 읽는 동안 독자는 자연스레 배우나 감독 노릇을 하며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여러모로 부족한 각본을 책으로 내자는 제안을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인 이유 중 하나다.
두 번째 이유는 이 책을 영화나 TV 드라마 작가 지망생을 위한 참고 자료로 남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이 책에는 같은 제목의 각본 두 편이 실려 있다. 앞엣것이 실제 제작에 쓰인 각본이고, 뒤엣것은 이른바 ‘초고’다. 초고를 본 제작자가 수정을 요청했고, 그 결과물이 앞쪽 각본이다.
초고는 배우나 투자사에 보이는 글이 아니다. 아직 거칠고 부족한 구석이 많은 탓이다. 더구나 일반 독자에게 보이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작가의 밑천만 드러나는 민망한 짓이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초고를 넣은 이유는 작가의 머릿속에 반짝 떠오른 아이디어가 영화가 되기까지 겪는 역정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점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미에는 참고했던 책을 실었다. 신문, 잡지, 인터넷 등에 산재한 비도서 자료들이 훨씬 많지만 늘어놓기엔 너무 난삽하고, 이젠 구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아 단행본만 정리했다.
수정 작업에 앞서 두서없이 끄적였던 화이트보드 사진도 몇 장 곁들였다. 다시 보니 현재 각본의 큰 틀은 그 판서에서 비롯됐다. 이로써 이 책은 그냥 각본집이 아니라, 늦깎이 작가가 겪은 시행착오의 비망록이라고도 할 수 있게 됐다.
영화가 개봉하고 배우의 탁월한 연기와 스태프의 새로운 해석이 각본의 약점을 가려준 것 같아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각본이 책으로 나오면 보호막은 사라진다. 꼼짝없이 발가벗어야 할 시간, 식은땀이 돋는다.
출간을 독려해준 조이래빗 대표 하정완 님, 물심양면 배려를 아끼지 않은 쇼박스 이사 이창현 님에게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영화 일에 대한 용기와 영감을 준 배우 최민식 님이 없었더라면 이 각본집은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