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유일신을 죽였어. 너를 사랑함으로써.”
--- p. 5
아담은 귀찮은 게 질색이었다. 책을 펴두고 별 생각 없이 펜이나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굴려댔다. 아담은 아침자습시간 특유의 어색한 정적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어색한 정적이 어느 때보다 크게 와 닿았다. 아담은 자신의 마음을 점검했다. 평소와 똑같은 아침자습시간인데, 뭐가 그리 달라졌다고 자신의 마음이 이토록 허무함에 침잠하는지. 결국 답을 알아내지 못한 아담은 턱을 궤고 창밖의 하늘을 들여다봤다. 하얀 뭉게구름이 자신의 마음을 닮았다. 어떤 마음이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마음은 소녀의 향기를 아담에게 불어넣었다. 마음이 그녀의 형상을 불러오자, 아담은 자신이 느끼는 허무함의 정체를 발견했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자, 하늘이 온통 아담의 마음속에 몰려들었다. 그는 생각했다. 나에겐 그녀가 필요해.
--- p. 38
아담이 정신을 차렸을 때, 본부장은 가정의 중요성에 관하여, 하나님, 하나님, 부르짖으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는 이 교회가 자신의 가정을 화목하게 만드는 데에 있어서 얼마나 큰 축복을 줬는지 간증했다. 본부장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이 교회를 이끌어가는 선지자를 찬양했다. 아버지는 그에게 깊이 공감하듯,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아담은 아버지를 흘겨보며 익숙한 짜증을 느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자신의 가정을 화목하게 만들어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교회는 가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다. 가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에 다니지만, 자신의 부모는 이혼했다. 이혼한 것도 모자라서 서로를 아직도 격렬히 증오한다. 아담은 신을 믿을 수 없었다. 선지자를 믿을 수 없었다. 교회를 믿을 수 없었다. 본부장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아담의 짜증도 커졌다. 아담의 짜증이 극에 달하자, 어떤 생각이 아담의 머릿속을 강타했다. 세상에 정말로 신이 있고, 그에게 선택된 선지자가 있다면, 부디 나에게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
--- pp. 52~53
“나를 감당할 수 있겠어?”
루시퍼의 질문은 아담을 당황시켰다. 그 질문은 다른 말도 없이 갑자기 던져진 질문이었지만, 이 상황이 모든 걸 이미 말해주고 있었다. 아담은 그 문신을 보자마자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일에 휘말리고 있다는 예감을 받았다. 여기에 더 깊이 휘말리면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에서 더 이상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이 엄습했다. 아버지의 꾸짖음, 교회 사람들의 멸시, 학교에서 더욱 심해질 따돌림, 이 모든 게 루시퍼와 휘말리며 더해질 것이란 느낌이 엄습했다. 루시퍼의 표정이 어떤지 전혀 알 수 없어서 더욱 불안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한 아담이었지만, 정말 생존의 위협이 될 만한 공포가 눈앞에 닥치니, 엉뚱하게 갑자기 살고 싶다는 욕구가 솟아났다. 아담은 입을 열었다.
“이게 뭔데?”
“사탄의 상징, 역방향 오망성과 바포메트.”
--- pp. 104~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