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치료는 강박장애를 완전히 뿌리 뽑지는 못하지만 증세를 완화시킬 수 있다. 이는 어떤 행동을 시작하지 못하도록 막거나 특정 행동을 멈추게 하는 뇌 영역이 비정상적으로 기능할 때, 약물로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한다. 하지만 약물치료가 모든 사람에게 효과적이진 않으며, 중단하면 약효도 사라진다. 반면에 인지행동치료는 일생 동안 실천할 기술을 가르치기 때문에 보통은 치료를 중단하더라도 효과가 오래 지속된다. 인지행동치료는 현존하는 강박장애 심리치료법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손꼽힌다. 이 치료법은 생각과 감정이 서로 얽혀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감정은 변화시키기 어려운 반면에 생각은 심사숙고해서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만약 현재에 처한 상황을 공정하게 판단하지 못한다면, 과장되거나 비뚤어진 감정반응이 나올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강박적 생각을 떠올리지만 대개는 그 생각에 얽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생각이 특별하다거나 사건, 사고가 발생할 신호라거나 어떤 조치를 취해서 막아야 한다고 해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내 쉽게 떨쳐버릴 수 있는 것이다. ---pp.23-24
강박사고란 불쾌하거나 부적절하거나 괴로운 생각이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다. 이럴 때는 온 신경이 그 생각에 집중되어 다른 것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주의를 분산시킨다고 하더라도 효과는 그때뿐이고, 못된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온다. 이러한 강박사고의 내용은 본인의 인격이나 도덕가치, 이상, 목표에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사실‘강박’이라는 단어는 취미, 연예인, 연애 대상 등 무언가에 대한 정열, 열광, 집착을 설명할 때도 흔히 사용한다. ‘그는 기차에 강박적으로 빠졌어.’나‘그녀는 그에게 강박적으로 집착해.’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강박’이라는 단어는 정열이나 집착, 열광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는 원하지 않고, 싫은데도 자신의 의지를 거슬러 자꾸 떠오르는 불쾌한 주제에 관한 생각을 말한다. 만약 하루에 한 시간 넘게 이런 생각에 빠져 있거나 강박행동 혹은 상쇄행동을 매일 한 시간 이상 한다면 강박장애를 의심해볼 수 있다. ---p.40
보통 사람은 하루에 4천 가지 정도의 생각을 하고 그 중 상당수가 현재 상황과 거의 혹은 전혀 상관없이 불현듯 떠오른다는 2장의 내용을 기억하는가. 게다가 다른 사람들도‘정상적인 강박사고’를 한다. 이렇듯 사람들 대부분이 원치 않게 떠오르는 생각을 접하면서 살아가고 하루에 수백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구름처럼 스쳐가는 게 정상이라면, 어떤 사람은 유독 두세 가지 생각에 지나치게 연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그 사람이 그런 생각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당신은 그 생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가 아니면 가볍게 무시하고 넘기는가? 여기서 진지하게 다룬다는 것은 그 생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위험한 사고나 위협의 전조로 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 생각은 훨씬 더 의미심장한 것이 된다. ---pp.73-74
어떤 행동이 불쾌지수를 낮춰준다면 사람들은 그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기분이 나아지니까, 적어도 더 불쾌해지는 것을 막아주는 것 같으니까 이런 행동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만두고 싶어도 이런 행동이 선사하는 위안이 너무 커서 멈출 수 없다. 이런 행동은 반복할수록 점점 일상이 되어가고 결국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 마음의 안정이 필요한 상황이 아닌데도 무의식적으로 이런 행동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습관은 버리기 어렵다. 자신의 다른 습관들을 떠올려보라. 손톱을 깨무는 것, 불량식품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 TV를 너무 많이 보는 것, 돈을 아낌없이 펑펑 쓰는 것 등. 그러지 않겠다고 여러 번 맹세했지만 결국 실패했을 것이다. 자신의 강박적 행동이 과하거나 터무니없거나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들어도 예전에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혹은 이미 습관이 되어서 저항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냥 하게 된다. 결코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p.116
치료를 방해하는 가장 첫 번째 문제는 증상을 숨기는 것이다. 강박장애 환자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두려워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혼자만의 비밀로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면 자신의 문제를 최소한 한두 사람에게는 말해둬야 한다. 이 책에서 추천하는 훈련중에는 먼저 친구나 성직자 등 주변 사람들에게 강박적 생각의 기준으로 삼을만한 정보를 얻어야만 완수할 수 있다. 만약 자신의 강박사고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면, 이 책에서 추천하는 치료법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나 의심이 든다고 해도 전혀 큰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강박사고를 숨기는 한, 그 생각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없으므로 결과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자기 자신에게 관대해질 수도 없다. 이 책의 몇몇 훈련을 수행하려면 당신의 강박사고를 다른 사람에게 공개해야 하는데, 될 수 있으면 당신의 상황을 이해해주고 강박장애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선택하기를 권한다. ---pp.126-127
생각을 의식적으로 통제하거나 억제하려고 노력할 때의 효과를 조사하는 연구는 활발히 진행되어왔다. 조사 대상에는 강박장애처럼 불안과 기분장애로 고생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가 없는 사람들도 포함되었다. 이 중 몇몇 연구에 따르면 생각을 억제했을 때 일시적으로는 어느 정도 성공하지만 긴장을 풀었을 때 오히려 그 생각이 더 자주 떠오른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생각을 억제하려고 하는 즉시 그 생각이 떠오르는 횟수가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생각을 억제하려고 하면 그 생각이 떠오르는 횟수가 정확히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아직 논란의 대상이지만, 사고통제에 관한 수십 건의 연구에 근거할 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바로 불쾌한 생각·영상·충동을 단지 몇 분이라도 완벽하게 억제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p.149
폭력과 성에 관한 강박사고는 다른 종류의 강박사고와는 달리 당사자를 겁먹게 만든다. 가령 위생이나 세균, 먼지에 강박관념이 있는 사람들은 이것이 지나친 걱정이라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걱정을 한다는 사실에 겁을 내지는 않는다. 반면에 소중한 이를 해치거나 무고한 사람들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상상이 들면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마음을 품었다는 사실에 몹시 놀란다. 이는 폭력과 성에 관한 강박사고가 다른 강박사고들보다 훨씬 더 당사자의 도덕적 가치와 성격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런 강박관념을 극복하는 비결은 바로 그 생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으며 이런 생각이 든다고 해서 자신이 반드시 살인자나 소아성애자인 것은 아니라고 인정하면 된다. 여기서 인정한다는 것은 그런 생각을 좋아하거나 용납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도 흔하게 겪는 현상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pp.163-164
종교적 강박장애를 치료하려면 심리치료와 신앙상담을 모두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심리치료와 신앙상담을 적절하게 조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지나친 양심주의를 치료해줄 치료사를 선택할 때는 세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먼저 치료사가 강박장애에 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어야 한다. 미숙하거나 경험이 없는 치료사의 손에 잘못 맡겼다가는 강박장애를 치료하기도 힘들뿐더러 오히려 상태가 더 악화될 수도 있다. 둘째, 치료사에게 불안장애 인지행동치료의 실전 경험이 있어야 한다. 강박장애도 다뤄봤다면 금상첨화다. 심리치료 이론과 그 치료법은 수도 없이 많기 때문에 이 책에서 추천하는 인지행동치료법이 생소한 심리치료사도 적지 않다. 마지막으로 치료사가 종교적 강박장애를 존중하면서 거부감도 없어야 한다. 지나친 양심주의는 강박장애의 증상에 불과하므로 치료를 위해 굳이 치료사가 그 종교를 믿을 필요까지는 없다. 하지만 환자의 신앙을 존중하고 신앙생활과 강박장애 증상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pp.226-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