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모습은 비슷하게 생겼으나, 얼굴을 치장하는 화장술만은 대조적인 게 동양 3국의 여성이다. 따지고 보면 화장미의 차이는 결국 미의식의 차이를 나타내는 좋은 예이기도 핟. 매년 두세 번 꼴로 잠시 귀국할 때마다 중국인 친구들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기가 일쑤다.
“일본 여자들은 섹시하지? 화장도 진하고 색정적인 것 같아.” 아마 일본의 무희나 연예인들이 입고 다니는 기모노와 전통 화장술 때문에 나온 소리일 게다. 잠시 그네들의 화장술을 엿보자면 밀가루처럼 하얀 분을 떡칠하듯 바르고 그 위에 선지피처럼 새빨간 입술을 그린다. 그런 화장에 게다를 신고 폭이 좁은 기모노 자락을 살랑거리며 걷는 모습이 가히 색정적으로 보이고도 남을 것이다.
서양 남자들 중에도 일본 여자의 기모노를 차려입은 모습에 크게 매료되어 일본 여자가 세상에서 가장 섹시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적잖을 것 같다. 나 또한 일본에 유학오기 전까지는 이런 아름다운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에 온 뒤 내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일본 여자들은 짙은 화장을 꺼린다는 것이다. 전철안에서나 거리에서 일상적으로 부딪치는 여자들의 모습은 언뜻 보아서는 전혀 화장을 하지 않은 느낌마저 든다.
립스틱의 색깔도 옅은 핑크 계열이 많고, 눈 화장도 라인만을 은근히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더러 나이든 할머니들 중에 화장을 진하게 하고 다니는 이들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사람의 시선을 자극하는 짙은 화장은 삼가는 것이 일본 여자들의 화장원칙이라겠다. 이것과 대조적인 것이 바로 한국 여성.
한국 여성의 화장은 압도적으로 짙어서 분장을 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도가 세다. 거리를 걷다 생기에 넘치는 젊은 여성들의 울긋불긋한 옷차림새와 짙은 화장으로 치장한 모습을 보노라면 '이건 일본 밤거리에서 볼 수 있는 물장사하는 아가씨들의 모습인데'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하였다. 립스틱의 색깔도 화려하고 자극적인 색을 사용하기 때문에 '섹시'하다는 인상을 준다. 이래서 일본 남자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한국 여자들은 너무 섹시하단 말야!”
눈썹을 보아도, 곧 '그렸다'는 표시가 나고 일본의 문신(文身)과 같이 '문미(文眉)'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눈썹에 먹물을 들이는 사람도 많다. 일반적으로 한국인은 몽고족의 한 갈래인 만큼 외꺼풀 눈이 많다. 이러한 까닭에 많은 여성들이 아름다운 눈을 만들기 위해 쌍꺼풀 수술을 하기도 한다. 성형수술의 붐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식지 않을 징조다.
오래전에「서울의 달」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일정한 직업 없이 카바레를 전전하는 제비족 두 명이 여성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쌍꺼풀 수술을 한 뒤 흰 양복에 선글라스를 끼고 나와서는 '내가 잘났니, 네가 못났니, 하며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 나왔다. 한국이 아니라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진풍경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 내가 전에 사귀던 한국인 유학생 그녀도 본래 외꺼풀 눈이었으나 여름방학 동안 잠시 집에 다녀오더니 쌍꺼풀 눈이 되어 돌아왔다. 공항에 그녀를 마중 나갔더니, 한쪽 눈에 흰 붕대를 감고 있었다. “아니 웬 테러리스트?” 하고 그녀를 놀려 주었더니, “자기한테 이뻐 보이려고 한 거예요.” 어이가 없어 피식 웃어버렸다. 현대인은 자연만 파괴하고 줄 알았더니 이젠 자신의 얼굴에도 칼을 대는 구먼! 하고 빈정거리자, 그녀의 입에서 돌아오는 말. “미(美)는 곧 파괴예요.” 제법 철학자다운 '심각'한 '진리'에 또 한 번 웃었다.
이제 한국의 화장술이나 성형수술 붐이 대륙까지 파급되어, 중국 조선족 여성이나 중국 대륙 여자들 사이에도 쌍꺼풀 수술 열풍이 불고 있다. 사실 중국 대륙 여성들의 화장은 그 기질을 한것 발휘하여 한국을 능가할 만큼 무서운 구석이 있다. 옛날 모택동 시대엔 여성의 치장도 부르주아적 저급 취미로 지목되어 무조건 경멸하고, 화장품도 저질 크림 이외에는 생산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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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이란 것은 서로의 의견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인류사의 비극으로 남는 전쟁도 그러하지만, 대개의 싸움은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니,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싸움의 원인이 아니라, 3국인의 싸우는 모습이다. 자, 그럼 거두절미하고 이제부터 싸움판으로 한 번 가볼까?
일본인의 진정한 우상은 뭐니뭐니 해도 사무라이다. 그래서 싸움을 할 때도 이 사무라이 정신이 발휘되는 건지, 말보다는 주먹이 앞서는 편이다. 평소 묘한 웃음기를 머금고 다니며 점잔을 빼던 것과는 달리 일단 싸움이 벌어지면, 어느새 주먹다짐이 오간다. 그러나 이것도 잠깐, 상대방이 '졌어!'하고 꼬리를 내리면 승자는 의기양양하게 손을 뗀다. 이것으로 싸움은 끝, 왠지 심심한것도 같지만 섬뜩한 데가 있다.
루즈 베네딕트의 명작『국화와 칼』이라는 책을 보면, 제목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일본인의 성격에 국화와 칼의 이미지가 공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온화함 속에 담겨진 잔혹함이라는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일본인들은 싸움을 통해 자신의 참모습을 드러낸다. 구구한 말싸움 대신 단칼에 베어버리는 사무라이적인 습성은 실로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최근, 오사카 거리에서 목격한 싸움 풍경 하나. 어지간히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두 장년 남자가 있었다. 티격태격 몇 마디 말이 오가더니 이내 주먹다짐이 시작되었다. 일본에서는 좀처럼 보기드문 구경거리라 두 눈에 힘을 주고 지켜보려는 찰나 한 사람이 손을 든다. “나 졌어.” 싱겁게 끝나버린 싸움에 아쉬움도 남았지만, 자기보다 강한 적에게 재빨리 화해의 손을 내미는 그 약삭빠른 몸짓에 묘한 배신감마저 들었다. 승자는 기세 등등, 발걸음도 가볍게 그 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이것과 좋은 대조를 이루는 것이 한국인의 싸움, 한국인들은 주로 주먹다짐보다는 입씨름을 많이 한다. 젊은층이나 어린아이들은 서로 치고 받고 싸우기도 하지만, 어른들은 그야말로 농담을 주고받듯 걸쭉한 욕설 맞상대를 한다. 한국의 욕이 발달한 이유를 알듯도 하다.
우연히 대전에 내려갔다가 두 남자가 싸움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싸움의 원인은 잘 모르겠으나 슬슬 설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마침 그날은 별다른 일정도 없는 날이라 아예 한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두 사람은 담배를 피워가면서 상대방을 설복시키고자 여념이 없었다. 네 탓이네, 내 탓이 아니네 하는 말이 오가고 점점 더 열기를 더해 가면서 침이 튀기 시작했지만, 절대 무력을 사용하는 일은 없었다. 어느새 구경꾼둘의 삼삼오오 밀려들었다. “왜 이 야단들이래?” 구경꾼들의 말이 들리기 시작하자, 싸움은 더욱 흥미롭게 전개된다. 목청이 점덤 커지며 서로 자신의 장당성을 주장하느라 정신이 없다. 마치 구경꾼들이 싸움의 심판이라도 된 형국이다.
이때 한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를 비난하는 목소리 사이로 중개인 하나가 등장한다. “이쯤에서 끝내지” 하며 주인공들을 말리는 제 3자의 개입으로 드디어 이 길고 긴 싸움은 끝났다. 이 대전에 걸린 시간은 무려 1시간 15분.
중국에 있을 때도 이런 싸움을 종종 보곤 하였다. 재중 조선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서 가끔씩 일어나는 일로, 모두들 달변이며 쌍욕의 대가들이다. 또 싸움의 마무리 역시 나이 지긋한 동네 어른이나 구경꾼 중 상황판단을 잘하는 사람이 나서서 해결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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