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네가 장애를 지니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모습도 지금과는 달랐겠지. 네 덕분에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도 변했단다. 우리는 우정, 상냥함,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것, 연민, 온정, 관용, 나와 다른 점을 받아들이는 것,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과 같은 소중한 가치들을 다시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모리스 블랑쇼는 이렇게 말했어. “빛을 비추는 것은 암담한 재앙이다.” ---p.10
언젠가 나는 회복할 가망이 없는 예쁜 아이를 포기하게 될까? 그것에 대해 글을 쓰기가 부끄럽구나. 나는 소박하고 결핍된 모습 그대로 너를 영원히 사랑하니까. 사람들은 네가 나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너는 나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었단다. 우리가 함께한 중요한 경험들은 신기하고 놀랄 만큼 강렬했어.---p.42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나는 너무나 예쁘지만 너무나 의존적인 너를, 글을 읽을 수도 없고 쓸 수 없는, 그러나 이해력은 있는 너를, 마음속의 질문들과 소망, 낙담, 슬픔을 분석해내기가 너무나 힘든 너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단다. 자주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어. 뭔가 해야 한다고 느꼈지만 잘 해낼 수 없었고, 소득 없이 녹초가 될 뿐이었어. 하지만 모든 것이 간단했지. 너를 사랑하고, 네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는 것으로 충분했어.---p.62
하지만 너는 너도 모르는 사이에 그 길고 힘든 세월을 살아내도록 나를 도와주었어. ‘진정한’ 삶에는 항상 고통이 개입하지.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타인들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도록 도와주고, 고통이 없었다면 알지 못했을 밀도를 우리의 삶에 부여해준단다. ---p.136
언젠가 우리 각자가 비극적인 사건을 맞이한다 해도, 삶의 곳곳에는 기쁨의 순간들이 흩뿌려져 있단다. 우리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는 기쁨은 매우 소박한 것일 때가 많아. 베르감의 오래된 광장에서 마신 커피 한 잔, 처음 바포레토를 타고 베네치아의 대운하를 거슬러 올라갔던 일,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뮈세의 연극 [당나귀와 시냇물]을 관람한 일, 햇빛을 받으며 뤽상부르 공원을 산책한 일, 모르생의 담벼락에 자라난 등나무에 향기로운 하얀색 꽃이 피었던 일 등이 그랬듯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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