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굳은 신앙을 가진 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형편없는 믿음을 가진 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거듭난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더욱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언젠가는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로 거듭나고 싶은, 지금은 형편없는 믿음을 가진 자의 신앙고백일 뿐입니다. 이 글은 제 아픔에 대한 기록이 아닙니다. 한 개인이 아픔에 대한 기록이, 그것도 분별력이 없어 당한 개인의 아픔이 독자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 밖에서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제겐 더 힘들었습니다. ---「프롤로그」중에서
“오늘 새벽, 교회 가는 길에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어요. 중풍에 걸리셨는지 걸음걸이가 많이 불편해 보이셨어요. 새벽 예배 때마다 만나는 분이라 부축해드리려고 가까이 갔더니 할아버지가 웃으시며 괜찮다고 완강히 거절하셨어요. 더 이상 말씀드릴 수 없어 제가 앞장 서 걸어가는데 뒤쪽에서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할아버지는 혼잣말을 하셨는데 뭐라고 하셨는지 알아요? 할아버지는 아주 느릿한 동작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뗄 때마다 ‘주여, 힘을 주세요. 주여, 힘을 주세요.’라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셨어요. 어찌나 눈물이 나던 지요……."
아내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눈물을 감추려고 저는 얼른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내가 해준 이야기가 온종일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한 걸음을 걷기 위해 기도하는 중풍 걸리신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 p.71
이명과 어지럼증을 고쳐 달라는 저의 기도를 하나님은 아직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이 원하는 기도의 응답 방식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응답 방식은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명과 어지럼증을 고쳐주지 않는 것이 차라리 저에게 더 이로울 거라고 하나님은 생각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이명이 없어졌다면 저는 더 큰 병을 얻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또다시 몸을 돌보지 않고 미친놈처럼 글을 써댔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저 자신을 믿지 않습니다. 때로는 변덕스럽고, 때로는 무분별하며, 때로는 거짓되고, 때로는 비이성적이며 때로는 악하기까지 한 저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때로는 비합리적이며 때로는 비상식적이고 때로는 비신앙적인 제가 어떻게 저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입니다. --- p.87
“아빠는 그렇게나 많은 꽃 이름을 어떻게 다 외웠어?”
“외운 거 아냐. 꽃을 자주 바라봐주면 꽃이 자기 이름을 말해주거든…….”
... 아이는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 꽃이 어떻게 말을 하냐고 다시 내게 물었다.
꽃도 말을 한다고, 나무도 말을 하고 새들도 말을 하는데,
모든 사람이 꽃과 나무와 새들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꽃과 나무와 새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 p.89
눈앞의 결과만 보고 행복과 불행을 예단하는 저 때문에 주님은 얼마나 상처받으셨나요. 기쁜 일에는 주님을 찬송하고 슬픈 일에는 주님을 원망하는 저 때문에 주님은 얼마나 슬프셨나요. 암송한 성경말씀 몇 개를 징검다리 삼아, 사람들에게 제 믿음의 크기를 자랑하려 했던 저를 보며 주님은 얼마나 답답하셨나요. 저의 숱한 허물에도 제 손을 굳게 잡고계신 '바보예수'를 생각하며, 저는 오늘도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흘러가겠습니다. 저희를 세상에 보내신 주님의 뜻을 생각하며, 오늘 하루도 아무렇게나 살지 않겠습니다, 주님. --- p.108
잠든 강아지를 깨울까 하다가 그냥 돌아서는데 번개처럼 제 시선을 잡은 것이 있었습니다. 아…… 빗물 가득 고인 강아지 밥그릇에 별이 총총 떠 있었습니다. 소나기 지나간 하늘에도 별이 총총했습니다. 강아지 밥그릇에 떠 있는 별빛은 하늘에 떠 있는 별빛보다 아름다웠습니다.
강아지 밥그릇에 별이 뜰 수 있었던 건 찌그러진 밥그릇 때문이었습니다. 강아지 밥그릇이 새것이었다면 별은 뜨지 않았을 테니까요. 반짝이는 새 그릇이 별보다 더 반짝이려 할 테니 별이 뜰 수 있었겠습니까?
별빛 내려앉은 찌그러진 강아지 밥그릇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겸손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민박집 마당에서 만난 강아지 밥그릇은, 일그러지고 찌그러진 모습으로도 별빛을 담을 수 있다는 주님의 말씀처럼 들려왔습니다. --- p.156
악마의 얼굴은 흉측한 줄 알았는데, 악마는 생각보다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악마는 언제나 빛의 모습으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어떤 날은 포도주의 향기로 다가왔고, 어떤 날은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떤 날은 분에 넘치는 멋진 승용차나 멋진 집으로 다가왔고, 어떤 날은 사람들의 박수소리로 다가왔습니다. 이성과 상식과 논리를 갖춘 멋진 악마도 있었고, 더없이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온 악마도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저는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내는 저를 위해 40일 작정 새벽 예배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새벽 예배를 다녀온 아내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 p.199
오렌지를 그린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오렌지의 향기를 그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 ‘오렌지의 향기’를 그린다는 것은 ‘실제의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눈’을 가질 때 비로소 가능할 것입니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어쩌면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겠다는 다짐일지도 모릅니다. … 그리하여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어쩌면 ‘눈’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으로 삶을 바라보겠다는 다짐일지도 모릅니다. --- p.206
예수님을 통해 복(福)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단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잘 풀리는 것만이 복 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음 한 쪽에 자리 잡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뿌리 깊은 의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나를 포기하시지 않고 여전히 내 손을 잡고 계신다는 것, 그것이 예수님을 통해 복을 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 p.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