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이미지는 우리네 삶의 전 영역을 지배하고 있다. 온 세상이 아날로그적 이미지, 디지털 이미지로 뒤덮여 있으니 가히 이미지가 중심이 된 세상이라고나 할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미지의 의미는 “정신활동의 특수한 현상으로 구체적인 현실도 추상적 개념도 아니며, 어떤 대상에 대한 의미를 규정한 것이 아니라 대상을 감각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이미지는 물질적으로 혹은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이미지의 영역은 그러한 이미지를 낳게 한 의식, 무의식적 동인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이미지는 시각적 이미지나 영상 이미지만을 일컫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미 비주얼 컬쳐 시대의 이해 지의 활동 영역은 시각 외에도,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등 전신의 모든 감각으로 확대되며, 그 결과물 역시 회화뿐만 아니라 문학이나 음악 등 여러 예술 분야에서 고유한 방식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이미지(image)의 어원적 뿌리는 주지하듯 라틴어 이마고(imago)이다. 하지만 이미지는 상상력(imagination)과 또한 깊은 관계가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상상력은 실제로 경험한 또는 경험하지 못한 사물이나 세계를 마음속으로 ‘그려 보는’ 능력이다. 즉 인간이 창
조한 다양한 이미지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상상력에 기인하고 있다. 상상력이 인간의 감각 활동을 축으로 하여 여러 다양한 경험(experience) 요소들을 종합하고 조직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능력이라고 정의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돌려 말해 인류는 이미지를 매개로 새로운 세상을 구상하기도 했고, 그렇게 구상된 이미지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왔다고 말하는 게 억지스런 주장이라 할 수 없는 이유다. 이미지는 인간의 자기 창조의 기재인 동시에 인간을 스스로 인간이라고 규정할 수 있게 한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다양한 형태의 이미지 중에서도 본고에서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요의 ‘비주얼 이미지(visual image)’이다. 비주얼 이미지는 상징이나 기호로서 혹은 영상 언어로서 어떤 특정의 의미를 직접 혹은 상징·은유적 방식으로 전달하는 장치로 보통 이해한다. 하지만 현대의 미디어를 온통 도배하고 있는 비주얼 이미지는 하나의 시각 혹은 그 시각의 결과물에 국한된 경향이 있다. 하지만 주지하듯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원시시대부터 인간은 비주얼 이미지를 동굴벽화로 그려 부족들끼리 세계를 공감하는 매개로 사용했다. 이미지는 인간의 지능이 발달하면서부터는 각종의 심상을 표현하면서 다양화된다. 이미지에 대한 이해가 인간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록 유
아가 비주얼 이미지에 완전히 익숙해지기 이전에 먼저 말을 하기 때문에 문자나 기호가 인간의 본질이라고 정의하는 학자도 있지만, 문자는 표음문자든, 표의문자든 간에 기표로서의 이미지로 인식될 수 있으므로 결국 문자보다는 이미지가 먼저라고 해석될 수 있다(캘리그래피(calligraphy)의 발달이 좋은 예다). 말이나 글로 표현된 것보다 몸짓 이미지 혹은 회화적 이미지로 표현된 것이 보다 많은 해석을 가능하게 만드는 내용들을 함축하고 오랜 생명력을 갖는 경우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미지는 어느 사회이든 간에 그 시대 및 문화적 생산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당대 인간의 삶과 행동 등을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데 사용되어 왔다. 그렇기에 이미지에 대한 미-추 문제, 인지 과정, 배경 이해나 해석, 제작-수용자의 관점 등에 대한 논의들이 다층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며, 이러한 논의들이 문화생산 및 문화 이해의 주요한 부분을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미지는 정치, 경제, 사회, 과학, 종교, 예술 등 인간의 거의 전 영역과 연결되어 있다. 카메라 옵스쿠라, 망원경, 현미경, 엑스레이 등과 같은 과학기술의 발달 역시 이미지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중요성을 인식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비주얼 이미지는 도처에 존재한다. 넓은 의미에서 인간이 시각을
통해 접하는 모든 대상물이 곧 비주얼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들은 특정의 콘텐츠 형식을 띄고 보다 정교하게 발달하였다. 성화(聖畵), 풍경화, 인물화 등과 같은 회화나 건축, 조각, 디자인 등과 같은 이미지만이 아니다. 사진, 영화, 광고, 애니메이션, 장식은 물론이고 자동차 디자인, 쇼핑몰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앱, TV 프로그램, 위성촬영사진, 컴퓨터 소프트웨어, 비디오 게임 등 인간의 일상생활 모두가 다 이미지로 구현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취향, 경험, 지적 레벨 등을 바탕으로 이러한 이미지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다. 현대인들의 이미지 경험은 점점 더 시각적이고, 시각화되어가고 있다. 스마트폰 등 미디어 기술의 비약적인 발달에 힘입어 시청각적인 요소
들이 증폭되고 있으며, 이제는 비주얼 이미지 문화가 곧 현대 대중문화의 핵심이라 해도 지나친 과장이 아닐 것이다. ‘비주얼컬쳐(visual culture) 시대’는 바로 이러한 전반적 상황을 통 칭해 부르는 말이다. 비주얼 이미지에는 원래 인간 본연의 시각적경이와 미감 또는 인간이 만들어 낸 미적 대상(이미지) 및 그러한 미적 대상의 감상이라는 3가지 요소가 작용한다. 그러나 21세기의 현시점에서 거의 모든 문명사회의 인간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제각기 이미지에 중독되어 있는 까닭에, 이 요소의 구분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 문자 텍스트와 비주얼 이미지조차 구분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스마트폰의 문자 메시지는 텍스트가 아닌 디지털 이미지라고도 볼 수 있다. 예전처럼 종이에 글을 쓰는 방식이 아닌 디지털 디스플레이에 그래픽으로 구현된 방식이기 때문이다.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이제는 어디까지가 이미지인지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비디오 게임 중독, 동영상 중독 등만이 중독이겠는가. 이것들 모두는 폭넓게 보자면 이미지 중독의 한 부분이다. 결국 이미지 중독의 순기능과 역기능 구분조차 애매해졌다. 문자 그대로 ‘기의를 상실한 기표들의 난무’라 아니 할 수 없다. 본서에서는 우리가 이렇게 하나의 21세기적 현상으로 경험하고 있는 소위 ‘비주얼 컬쳐’를 대중문화와 연관시켜 “현대인에게 이미지는 대체 어떠한 역할과 기능을 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해소해 보고자 했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이미지들은 수없이 많이,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 이미지텔링(imagetelling)을 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였다. 다시 말해, 이미지 개념 자체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이미지가 만들어 내는 여러 국면들에 대해 성찰하고, “이미지(image)가 주체가 되어 말을 걸고(telling) 의미를 생산한다는 이미지텔링”이란 개념이 이미지 관련 콘텐츠에서 각기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를 연구한 것이다.
“이미지텔링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책의 앞부분에 영화분석을 4편 배치해 독자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시도했다. 가네시로 카즈키의 소설 『Go』와 영화 ≪Go≫를 분석하면서 ‘타자’ 개념을 새롭게 해석해보았으며,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경우는 스피박의 ‘하위주체’라는 개념을 도입해 항간의 로맨스 영화라는 평가를 일신시켜 보았다. 인도 영화 ≪세 얼간이≫의 경우는 ‘사회적 정상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고찰해 보았고, SF 영화인 ≪블레이드 러너≫와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영화 속에 표현되어 있는 ‘알레고리’를 추적해보았다. 이어 애니메이션, 회화, 비디오 게임, 트랜스미디어 등 장르를 달리해 콘텐츠 분석을 시도해보았는데, ≪겨울왕국≫에서는 대중적 호소 메커니즘을 그리고 마그리트의 ≪폭포≫에서는 바슐라르의 창의적 상상력 개념을 도입해 이미지텔링의 구체적 분석 사례를 제시해보았다. 게임 ≪삼국지3≫에서 10 비주얼 컬쳐 시대의 이해 는 전쟁문화콘텐츠 및 통치성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어보았고,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의 관점으로 접근한 ≪매트릭스≫에서는 문화혼종 이미지에 대해서 성찰하는 기회를 가져보았다.
제1장이 이 책의 서론에 해당한다면, 제10장은 결론에 해당한다.
추가적으로 이 책을 읽기 전에 미리 주지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그것은 바로 ‘이미지텔링’에서 이미지는 인간 개인의 심리적 감성에 깊게 인지되는 인상(印象), 인간 심리·정신적 측면에서의 감성적인 이미지 이해인 심상(心像), 눈앞에 객관적 실재로 드러난 대상으로서의 영상(映像) 모두를 포함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활용된 이미지텔링이기에 각 장에서 약간의 의미차를 보일 수 있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이미지가 인간에게 말을 걸어오는 시대. 아니 이미지가 인간의 일상을 좌지우지하며 위협하는 시대. 이것이 본고를 집필하면서 시종일관 고민했던 화두이다. 의지가 앞서 다소 거칠게 논의된 장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미지, 이미지텔링에 관한 고민을 계속하면서 본서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은 나중 기회로 미루어둘 수밖에 없다. 공동 집필에 기꺼이 동참해준 김성수 박사에게 무엇보다 감사드린다. 그의 기획과 노력 덕분에 본서가 출판되는 행운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곁에서 늘 응원해주며 독려를 마다하지 않은 GCIC회원 모두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머리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