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직장이 없었던 나는 누구보다 시간 부자였다. 주어진 시간을 후회 없이 누리고 싶었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사 마실 여윳돈이 없어도 괜찮았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있고, 책 쓰기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수업을 들으며 하루에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읽고 쓰기에 투자했다. 그렇게 해서 2017년 3월, 처음으로 내 이름 석 자가 새겨진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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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잘나가는 유명작가의 성공기나 글쓰기 비법은 나와 있지 않다. 그저 5년 차 무명작가의 지극히 현실적인 글 쓰는 삶과 소소한 글쓰기 이야기와 책 쓰기 과정이 담겨 있다. 이번 책도 내가 쓴 다른 책들처럼 ‘솔직함’을 넣어 읽기 ‘쉬운 글’을 쓰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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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예전 같으면 얼마의 돈이 들든 등단이란 타이틀을 택했을지 모른다. 정당하게 응모해서 당선된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이젠 아니다. ‘신인’의 간절함을, 사람들의 꿈을 미끼로 삼는 곳이라면 그깟 등단, 안 해도 된다. 수십만 원으로 증서를 살 만큼 등단에 목을 맨 것도 아니다. 이참에 글쓰기 근육을 더 단련해, 더 권위 있는 곳에서 등단하고 만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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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성장한 실력이 기회와 타이밍을 만나면 좋은 날이 올 거라 믿는다. 어차피 장기전이니 괜찮다. 조급할 이유는 없다. 억지로 하면 하늘의 계획에 방해만 될 뿐, 순리대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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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책을 만드는 ‘자가 출판 플랫폼’으로 눈을 돌렸다. 그곳에서는 자신이 알아서 디자인하고 편집해서 책을 낼 수 있단다. 일명 ‘셀프출판’이다. 그래도 명색이 계약서에 사인하고 계약금에 선인세까지 받으며 책을 낸 작가인데 자가 출판 플랫폼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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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다행인 건, 내게도 7년째 꾸준히 운영하는 블로그, 3년째 내 방식대로 운영 중인 인스타그램, 지금은 휴업 중이지만 영상 몇 개 올려져 있는 유튜브가 있다. 그래, 나도 있긴 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이득을 바라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서’ 시작했다. 그런데도 나를 팔로우해주며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다. 그분들이 있어서 다행이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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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을 가슴에 얹고 그의 말을 잘 곱씹어보았다. 혹시나 생길 요행을 꿈꾼 적은 없지만, 결국 SNS 인지도가 아닌 내 실력이 문제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래, 실력 향상을 위해 글 한 편 더 쓰고 책 한 권 더 읽자. 딴생각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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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로 먹고살고 싶지만 인세만으로는 힘들다면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 끝에 ‘글쓰기 전문가’로 나를 다시 세팅했다. 부가 캐릭터를 뜻하는 ‘부캐’로 영역을 넓혀 블로그, 브런치, 인스타그램 등에 책 서평이나 글쓰기에 관한 글을 올리면서 나 자신을 홍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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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파고드는 기막힌 필력은 아니지만, 다리털이 솟을 만큼 멋들어진 어휘력은 없지만 뭐 어떠하랴. 내가 경험한 일을 글로 써서 내 글을 읽는 분들께 깨달음과 지혜를, 위로와 격려를 드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평생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 이상 물러서지 않으련다. 독자님들의 아낌없는 칭찬이 내 글쓰기의 원동력이 되어주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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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몸과 마음가짐 모두 180도 달라진다. 내가 말한 ‘반드시’ 해야 할 일이란 다음 책을 만드는 과정인 기획과 원고 쓰기, 글쓰기 강의 준비, 칼럼 기고, 강연 등의 준비를 말한다. 완벽주의자는 아니어도 이 같은 일 앞에 우선이 되는 건 없다. 일단 약속을 잡지 않는다. 부득이하게 만나야 하는 일이 생기면 용건만 간단히 처리하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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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내 글을 읽는 독자나 작가 지망생에게 ‘이지니 작가의 글귀를 훔치고 싶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잘 쓰고 싶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노력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데, 하물며 재능이 없으니 노력을 붓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욕심인 줄 알지만 꿈은 크게 가지라 했으니, 독자들이 내 글을 사랑해 주는 그런 날이 오길 오늘도 간절히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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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시작! 내가 메모 앱을 사용하게 된 계기를 시작으로 글쓰기를 할 수 있는 플랫폼을 소개했다. 더불어 동기부여의 중요성을 전하려 애썼다. 글쓰기 비법도 중요하지만, 동기부여가 먼저라 여긴다. 동기부여가 되면 작심삼일 글쓰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나의 경험담을 많이 이야기하게 되어, 수업이 끝나면 자기계발서를 읽은 느낌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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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게 최대의 투자처가 나타났다. 바로 ‘책 쓰기’다. 지금 생각하면 미치지 않고서야 그 비싼 수업료를 낼 수 있나 싶지만, 어지간히 꿈에 갈급했나 보다. 지금 그때를 생각하니 짠하다. 뭐에 홀리지 않고서야 전 재산에 육박하는 금액을 덜커덕 내밀 수 있을까 싶다. 나는 분명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꿈꿔온 방송작가의 길에서 무참히 퇴장한 후, 속 빈 강정처럼 영혼 없는 삶을 살았다. 나이가 들어도 ‘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십수 년 만에 다시 찾아온 운명을 모른 척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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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나라는 사람, 한 걸음 한 걸음 잘 걸었다. 느릴지라도 잠시 주저앉았을지라도 제자리에 멈춰 서지 않고 일어서서 계속 걸었다. 남과 비교할 때도 있었지만 이내 일어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돌아봤다. 조급할수록 더욱 하늘의 타이밍을 신뢰했다. 되든 안 되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움직였다. 타인의 속도를 들추기보다는, 거북이만큼 느리지만 내가 해야 할 일에 초점을 맞췄다. 내가 무슨 유명한 작가나 뛰어난 사람은 아니지만, 스스로가 자랑스럽고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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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글쓰기를 다짐한 뒤부터일까?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나 겪은 일 등을 다른 시선으로 보려는 습관이 생겼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글이 탄생할지 대상을 보는 시선을 한 번 더 비튼다. 이때부터 머릿속 ‘생각 공장’은 쉴 틈 없이 돌아간다. 겉으론 세상 평안해 보여도, 머릿속은 난리다. 대상을 보는 시선이 내 마음에 들 때까지 완전가동이니까. 꼭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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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가 아니었다면 과연 일곱 권의 책을 출간할 수 있었을까? 누군가에게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꼭 개인 브랜딩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글을 쓰고 싶다면 블로그를 시작하면 좋겠다. 브런치나 인스타그램도 좋은 글쓰기 통로지만, 유행을 타지 않아 안정적이며 글의 분량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정보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블로그가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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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동기부여에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는, 먼저 그 길을 잘 걷고 있는 사람을 만나서 자극받기라고 생각한다. 영향력이 클수록 자극이 세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 위에 서 있는, 꼭 한번 만나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코로나19로 오프라인 만남이 쉽진 않지만 어떠한 방식을 사용하든 만나봤으면 좋겠다. 상대의 선한 자극 덕분에 길 위에서 내려오는 일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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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잘도 흘러 2020년 가을로 나를 데려가, ‘강사 계약서’에 사인하게 했다. 십수 년 동안 방송작가를 꿈꿨고, 이후엔 그저 흐르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눈 앞에 펼쳐진 대로 배우고 일했다. 6년 전만 해도 내가 책을 쓰며 글쓰기를 가르치게 되리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p.176
강사 계약서에 사인했던 그 순간, 지금껏 나를 스친 모든 일에 감사하며 부지런히 최선을 다해 살겠노라 다시금 내 마음에 선포했다. 처음으로 돈이 아닌 사명을 좇은 길, 역시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글 하나로 많은 기회를 얻고 있다. 감사한 마음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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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처음일 때가 있기 마련이고 우여곡절은 늘 있으니까요. 저 또한 작년에 임용된 초보 사서입니다. 그보다 블로그에 써주신 따뜻하고 진실한 문장들이 제겐 훨씬 더 섭외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아, 이 말이 앞으로 나의 10년을 일으키겠구나.’ 말의 힘을 누구보다 많이 믿지만, 그래서 타인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직접 그 말을 받으니 장난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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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수업이든 원고 작업이든 감사함으로 준비할 테다. 미래는 알 수 없어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 분명 기적에 닿을 것을 확신한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학창 시절 어지간히 공부 못하던 내가 일곱 권의 책을 내고, 여러 도서관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게 되리라곤 상상조차 못 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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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생애 처음으로 도서관에서 글쓰기 강의 제안을 받아 지금껏 다섯 군데에서 진행했다. 나의 ‘본캐(본래의 캐릭터)’는 글을 쓰는 작가지만, 수입은 강사인 ‘부캐’가 훨씬 많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인세…. 받아야 얼마나 되겠나. 책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돈을 생각했다면, 다섯 권 째를 준비하는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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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쓰기를 마치고 70군데 출판사에 투고했지만 한 군데의 러브콜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 결국 자가 출판을 하기로 결심했다. 자가 출판은 ‘셀프출판’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예전에도 ‘자가 출판’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지만 내가 찾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 일은 정말 모르는구나) 여하튼 자가 출판 플랫폼인 ‘부크크’는 내가 쓴 글을 책으로 만들어 줘서 참으로 고마운 존재가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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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가 많지 않아도 전자책 출간을 권하는 이유는, 내가 쓴 전자책이 출간되고 판매까지 이뤄지는 걸 직접 보고 경험한다면 종이책도 쓰고 싶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쓴 전자책을 보며 자극을 받고 계속해서 글을 쓰길 바라는 마음이다. 또한 규모는 작을지라도 직접 만든 책이 판매되는 경험으로 출판에 관한 감각도 기를 수 있다. 출판 지식을 어느 정도는 지니고 있어야 기획 출판으로 책을 출간했을 때도 일일이 출판사에 물어보지 않고 많은 정보를 스스로 습득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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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로 먹고산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어쩌면 이제 시작이다. 나는 돈을 보고 이 길로 들어선 게 아니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겨 앞만 보고 5년을 걸었더니 글쓰기 강의나 강연, 칼럼 등의 제안으로 수입이 생기기 시작했다. 커피 한 잔도 마음 편히 사 마실 수 없던 시절에 비하면 이건 뭐, 로또 당첨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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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한 해 책이 출간될수록 욕심 주머니가 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재에 감사한 마음은 못 가질지언정 과한 기대를 붙잡지 않는 내가 되고 싶다. 지난 5년이 그랬듯, 나를 찾아온 ‘하루’라는 선물에 최선을 다할 수만 있다면 더는 바랄 게 없겠다. 그런 의미로 나는, 가늘고 길게 가는 작가가 되고 싶다.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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