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셰르파들의 아주 모험적이고 광범위한 삶의 국면들을 길고 복잡한 연쇄 속에 놓고 이해하려는 시도다. 이 책이 기존 셰르파 연구들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즉 시골 생활과 초국가 이주, 농·목축업과 국제 산악 관광산업, 친족 및 젠더 관계와 웃음의 심리학, 토착 종교와 세상과 미래에의 상상, 종족 정체성과 출신 마을과의 상관관계 등등,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서론」중에서
오늘날 히말라야 관광산업 현장에서 합당하게 사용되는 셰르파의 용법은 여러 가지다. 산악 관광에 참여하는 고용인 전반에서부터 원정대 직속 고용인을 가리키기도 하고, 그중에 등반 가이드/고소 포터만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는 종족성을 가리키는 용법과 모순되지 않고 중첩돼 사용되는데, 바로 그럼으로써 ‘종족 집단 셰르파’와 ‘원정대의 핵심 피고용인 셰르파’ 두 집단 모두의 위세를 함께 신장시키는 전략으로 사용돼왔다.
셰르파족의 집단적 성공은 힌두 종족이 득세한 다민족 국가 네팔에서 티베트계 소수민족의 생존 사례가 된다. 이들의 집단적 전략의 핵심은 바로 셰르파족이라는 집단적 정체성의 강화다. 여기서 ‘셰르파’라는 단어는 정체성을 확립하는 발판이면서 동시에 점점 더 큰 쟁점으로 드러난다.
---「1장 정체성: ‘셰르파’라는 이름의 기원과 사용」중에서
셰르파들의 독특한 역할 설정은 20세기 내내 계속 변화하고 세분되면서 히말라야 등반의 진화를 이끌었다. K2(8611미터) 등반을 시도한 1939년의 미국 원정대에서는 다른 미국인 대원들의 불만 넘치는 질투를 뒤로하고 셰르파 고소 포터가 정상 등정 대원으로 선발돼 나서기도 했다. 1954년에는 셰르파가 정상 등정 등반에 관한 의사 결정을 내리기까지 했다.
초오유(8188미터) 초등을 시도하던 오스트리아 원정대에 고용된 셰르파가 원정대 대장을 ‘이끌고’ 정상에 섰다. 이후 셰르파 없는 히말라야 원정대는 드물었다. 셰르파들은 등반에서 항상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실질적인 등반을 도맡았다. 다만 외국에서 발간된 보고서나 언론 보도에는 셰르파의 역할을 포함해 그들의 이름도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셰르파들의 지위가 단순히 원정대 내에서만 짐꾼에서 고소 포터, 정상 등정 등반가, 등반 가이드로 격상된 게 아니다. 히말라야 산악 관광 전반에서 꾸준히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해갔다. 호텔 운영, 장비 판매, 원정대와 단체 트레킹 조직 등에 뛰어들어 기업가적 면모를 발휘했다.
---「2장 인류낭만주의 : 셰르파 히말라야 등반사」중에서
국제적 동향에 큰 영향을 받는 산악 관광산업과 함께, 중국과 인도 사이에서 활로를 모색하는 네팔의 에너지 전략 산업 등 개인의 수준에서는 통제가 불가하고 예측을 불허하는 불투명성이 셰르파들의 미래상을 특징짓는다. 셰르파들이 도출하는 가장 합리적인 전략은 활용 가능한, 때로는 상충하는 선택지들까지도 모두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래를 ‘열려 있게’ 만들고, 셰르파들은 그에 용감하게 뛰어드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이렇듯 마칼루 셰르파들이 가능성이 보이는 새로운 영역이라면 도전적으로 뛰어드는 낙관적인 기질을 지닌 것은, 그에 따르는 불확실성의 부담을 복잡하면서도 견고하게 다져가는 공동체적 결속 관계를 통해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4장 열린 미래 : 셰르파의 도시 생활과 이주」중에서
셰르파들이 히말라야 원정대에 참가하는 방식과 이를 회고하는 방식 모두 특유의 역동적인 사회관계를 반영한다. 세밀하게는 식구와 친지, 동료 간의 일상적인 대화와 협력으로부터 소개와 후견, 암묵적 계약 협의 등 신중하고 전략적인 관계 설정, 그리고 대중매체와 지구적 산업 관계 저변에 깔린 유럽 중심주의적 의미체계에 이르기까지, 셰르파들의 등반 경험은 다층적 맥락 속에서 구성된다.
네팔 사회 전반에 뿌리내려 문제시되는 사기·기만·횡령·착복·뇌물·족벌주의 등의 부패 문제는 이러한 다층적 맥락 속에서 이해돼야 한다. (중략) 개인 간의 갈등은 마을 혹은 집단 정체성으로, 마을 간의 갈등이라면 지역 전체의 정체성으로, 종족 간의 갈등은 국가의 정체성으로, 그리고 히말라야 등반의 초국가적 갈등은 세계시민적 태도로 맥락을 확장해 재인식하는 것이다.
---「6장 독점과 착복 : 셰르파의 히말라야 등반 경험」중에서
삶의 가장 부정적인 국면들에 대한 이와 같은 오래된 침묵의 관습은 셰르파들의 히말라야 등반 참여를 남성성의 기조 아래 이상화한다. 끔찍한 고난과 충격적인 괴로움을 피해 갈 수 없는 이 스포츠를 그들은 혹독한 고산지대에서 얻은 체력과 낙관주의로 무장하고 자랑스럽게 뛰어들었고, 그리하여 큰 경제적·사회적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집단적 독점을 이루었다.
셰르파 종족성은 ‘피’나 ‘뼈’ 등 혈통을 타고 내려오는 본질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실체 없이 사회적 관계의 역학만으로 구성되는 개념 체계인 것만도 아니다. 본질주의와 구성주의의 이분법을 벗어나, 셰르파들의 종족성의 실천에는 숱한 경로를 통해 먼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관계의 역학이 있다.
---「7 안살이 : 셰르파 웃음의 인류학」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