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휴식의 공간 중 한 곳으로 한시를 제안한다. 혹여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와서 이 한시의 그늘에서 쉼을 얻기를 바란다. 특히 대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꼭 와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그들에게 한시는 아주 적합한 휴식 공간으로서 역할을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대도시의 생활은 속도 숭배와 자연 상실로 요약될 것이다. 속도를 추구하면 피곤해지기 쉽다. 과속에는 긴장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 긴장으로 인한 피로를 적당한 때에 풀어주지 않으면 바로 병이 되는 법이다. 과속으로 인한 피로를 푸는 방법은 그 속도를 줄이는 데 있다. 그리고 속도를 줄이는 방법은 속도가 느린 공간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게 바로 자연이다. 자연은 속도가 느리다. 강물이 바쁘다고 서둘러 흐르는 법이 없고, 산이 급하다고 계절을 재촉하지 않는다. 태초의 속도 그대로 고요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자연 속에 머물면 절로 그 전체적인 느린 속도에 우리의 호흡과 생각의 리듬이 맞춰진다. 느려진 삶의 속도 속에서 우리의 심신은 휴식을 얻는 것이다.
--- pp.11~12, 「초대의 글」 중에서
농사꾼에게 봄날 가장 긴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 없으려니 바로 때맞춰 내리는 ‘봄비’가아니겠는가. 마침 애타게 기다리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참으로 고마운 비이다. 처음 두 구절은 이 때맞춰 내리는 비를 의인화하여 표현한 것으로 ‘호우’에 대한 반갑고 고마운 마음을 여실하게 드러낸다. 비라고 다 좋은 비가 아니다. ‘호우’는 ‘시절을 안다’. 자신이 내려야 할 때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줄 아는 비가 바로 ‘호우’이다. 내리지 말아야 할 때 내리는 비는 ‘폭우’이거나 ‘악우惡雨’일 뿐이다. 사람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나설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를 가릴 줄 아는 사람이 참 좋은 사람 아닌가. 만물이 싹을 틔울 준비하는 시절, 수분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때에 알아서 내리는 비. 그런데 이 비가 언제 내리는가? 바람을 타고 밤에 들어온다. 그리고 만물을 촉촉이 적시는데 너무 가늘어서 소리조차 없다. 태평한 시절에 내리는 봄비는 꼭 밤에 온다고 했다. 낮에 바깥에서 일하는 농부들을 배려해서 밤에 내리는 것이다. 이 정도 되면 ‘호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인우仁雨’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참으로 어진 비이다.
--- p.32, 「1.2 두보의 〈춘야희우春夜喜雨〉」 중에서
이백이 노래한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황하의 물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미친 듯 흘러 바다로 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못함을.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대갓집 밝은 거울 속, 아침에 푸른 실 같던 머리칼이 저물녘 흰 눈처럼 하얗게 됐다네. 인생은 득의하면 즐겨야 하는 법, 달빛이 빈 잔에 부서지게 해서는 안 될 것이라.” 호탕한 이백의 노래가 밤공기를 가르며 멀리 메아리친다. 달이 웃는다. 그의 웃음을 따라 천하가 잠시 더욱 밝아진다. 갑자기 이백이 일어나 검을 빼어들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림자도 그와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춘다. 춤사위가 격렬해지면서 이백이 허물어지듯 외친다. “황하를 건너자 했더니 얼음장이 가로막고, 태항산을 오 르고자 했더니 눈이 산에 가득하네. 내 앞길을 막는 무리들이여! 내 꿈을 걷어차는 세상이여!” 흐느끼는 듯, 하소연하는 듯, 원망하는 듯 이백의 노래와 춤이 끝없이 이어진다.
--- p.72, 「1.7 이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 중에서
김성곤: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쓴 〈수조가두水調歌頭〉라는 작품은 중추절의 달빛 아래서 그리운 동생에게 쓴 노래입니다. 거기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인생에 슬픔, 기쁨, 헤어짐, 만남이 있는 것은
달에 흐림과 밝음, 둥긂과 기욺이 있는 것과 같다네.
어찌 좋은 일만 있을 수 있는가.
그저 바라기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서
천 리 멀리 떨어져서도 저 아름다운 달을 오래토록 함께 보세나.
人有悲歡離合, (인유비환리합)
月有陰晴圓缺, (월유음청원결)
此事古難全, (차사고난전)
但願人長久, (단원인장구)
千里共嬋娟. (천리공선연)
다시 둥근 달 아래서 함께 모여 기쁨을 나눌 때까지 모두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단원인장구但願人長久, 천리공선연千里共嬋娟!
--- pp.201~202, 「2.3 한시로 전하는 위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