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하비에르(Francisco Xavier, 1506∼1552)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1506년 4월 7일 스페인 나바레에서 태어났다. 16세기 유럽 지성인들의 산실 프랑스 파리 대학에서 이냐시오 로욜라를 만나 생애의 전환점을 맞으며 복음을 전하는 수도자의 삶을 살게 된다. 예수회가 공인된 바로 이듬해 최초로 선교사로 파송되어, 아프리카 동부의 모잠비크에서 일본의 나가사키까지 당시 동인도로 불리던 아시아 지역 선교를 총괄했다. 이러한 그의 대장정은 아시아 문명과 유럽 문명이 본격적으로 교류하는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다.
1. 신학을 공부하셨는데, 목회자가 되지 않으시고 어떻게 선교학, 종교학을 공부하게 되셨는지요?
직업이 신학자, 대학교수지만, 스스로를 목회자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목회하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목회’입니다. 선교학과 종교학을 전공하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미국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 교정에 있는 벤치에 혼자 앉아서 점심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데 그 학교의 종교학과 학장님(Dr. Hal French)이 옆에 앉으셨고, 함께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국 교회와 종교에 대해 토론하게 되었고, 결국 그 교수님께서 제게 입학을 권유하셨습니다. 공부하는 것은 좋아하는데 학비가 없다고 하니까, 대뜸 장학금을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그 학교에 최초로 입학한 아시아계 학생이었습니다. 글로벌 교육을 지향하던 그 학교가 아시아계 학생이 지원을 하지 않자, 그냥 제가 길거리에서 뽑힌 것이지요. 하필 그 분의 전공이 힌두교였고, 저도 우연히 그 교수님의 지도에 따라 힌두교를 공부하면서 종교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그것이 계속 이어져서 에모리 대학과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2. 아시아 선교를 개척한 인물인데 개신교인으로서 그동안 잘 몰랐다는 게 아쉬운 생각마저 드는데요. 교수님은 어떻게 하비에르를 연구하고 글을 쓰시게 되었나요?
엔도 슈사쿠의 『침묵』은 한국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회 신부들이 일본에서 겪는 실존적 신앙의 위기를 다룬 책입니다. 이런 예수회 선교를 가능하게 한 인물이 바로 하비에르였습니다. 바로 이 사람 때문에 인도, 일본, 중국에 복음이 처음으로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하비에르의 다음 세대 선교사였으며 중국에서 활동했던 마테오 리치를 연구했습니다. 프린스턴 신학대학원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마테오 리치를 연구하던 중, 최초로 복음을 아시아에 전했던 하비에르에 대해 연구하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2000년의 일이니까 약 10년 동안의 준비와 연구를 거쳐서 드디어 하비에르에 대한 책이 마무리되어 정말 기쁩니다.
3. 16세기 인물인 하비에르를 통해 교수님은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으신지요?
이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정리하고 현장을 방문하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비에르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인도 고아의 봄 지저스 성당에선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그곳으로 가려면 뭄바이에서 기차로 15시간 정도를 가야 합니다. 마침 제가 방문했던 때가 우기라서 여행이 쉽지 않았습니다. 인도 여행을 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어떤 곳은 정말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그런 오지에 복음을 전하겠다는 열망 하나로 생애를 던진 하비에르의 생애를 생각하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의 시신은 썩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기적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의심의 눈초리로 봅니다. 저는 하비에르의 썩지 않는 시신을 바라보면서 썩지 않는 위대한 정신을 발견했습니다. 대충대충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비에르의 헌신된 삶은 큰 충격을 줄 것입니다. 위대한 정신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삶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겠지요.
4. 한 인물에 대해 그의 출생부터 행적, 사망에 이르기까지 관련된 곳들을 두루 답사하고 글을 쓰시는 모습이 정말 흥미로운데요, 이런 글쓰기 습관의 계기가 있나요?
신학은 지리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환경에 의해 상당 부분 결정됩니다. 따라서 신학적 탐구는 언제나 지리적 확인 작업을 거쳐야 합니다. 인물에 대한 연구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 인물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그 인물이 보았던 하늘과 땅, 산과 들을 같이 보면서 연구해야 합니다. 이번 겨울에 저는 그리스 여행을 했습니다. 직접 차를 운전하면서 올림피아, 델피, 올림푸스 산 등을 현장답사 했습니다. ‘델피의 신탁’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연구실 책상에 앉아서 ‘델피의 신탁’을 연구하는 것과 델피의 한 후미진 호텔 방에서 델피 신전을 바라보면서 연구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첫 올림픽 경기가 열린 올림피아에 갔더니 진짜로 올림픽 경기장이 있었습니다. 겨울이라 관광객이 아무도 없었지요. 그래서 저희 가족들은 올림피아의 올림픽 경기장에서 달리기 시합을 했습니다. 저는 진짜 올림픽 경기장에서 뛰어 본 사람이라는 것을 여기서 강조하고 싶습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