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같은 시간을 지나가는 것은 ‘진정한 관계 맺기’를 위한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모든 과정은 관계 맺기를 향해 있었다. 우리는 늘 관계를 갈망하고 관계 속에 있을 때 진정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혼자 있는 게 편하고 혼자 있는 게 제일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면 감정은 그 누구보다 관계를 잘 맺고 싶은 욕구에 기반해 있다. 다만 이러한 바람이 좌절되거나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차라리 혼자이기를 선택한 것이다. 함께이고 싶지만 그 함께함이 너무 고통스러워 혼자이기를 바라게 된 것이다. 혼자 있는 삶은 편하고 자유로울 수 있지만 진정한 기쁨은 누릴 수 없다. 진정한 기쁨은 함께함을 즐거워하는 것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상담자가 건네는 말》을 통해 나로부터 변화가 시작되고 함께함의 기쁨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 pp.6-7, 「들어가기」 중에서
우리는 유연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시행착오를 거쳐 가장 적당한 거리를 찾아낸 고슴도치들처럼, 지금은 비록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우리는 모두 부모와 자녀 사이에, 남편과 아내 사이에, 나와 너 사이에 적절한 거리를 찾고 우리 내면에서는 온유와 겸손, 적극성과 독립심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을 수 있다.
우리의 치유와 회복은 책임에서 시작한다.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비난하면서는 결코 성장할 수 없다. 나의 과거를 원망하고, 나의 부모를 원망하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탓하는 상황에서는 결코 성장이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두 발로 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성장해야 한다. 나아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 p.65, 「고슴도치의 겨울 나기」 중에서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일상의 작은 경험이라고 할지라도 잘 처리되지 않으면 독성을 지닌 외상이 된다. 이러한 외상적 경험은 과거의 기억과 연결되는 단서를 만나면 고통을 재경험한다. 트라우마는 고통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실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통의 처리 과정을 성공적으로 지나가도록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채 어린 시절을 보내고, 그 고통스러운 경험이 성격의 연약한 부분을 심각하게 위협했다면 사소한 사건이라도 외상적 경험으로 자리 잡는다. 다만, 외상적 경험은 명시적으로 기억할 수도 있지만 사건의 발단이 되는 그 경험 자체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때도 있다.
--- p.83, 「무엇이 트라우마인가」 중에서
이처럼 칭찬을 감정에 접종하는 주사라고 한다면, 성격이나 인격에 주사하지 말고, 노력과 노력을 통해 성취한 것에 접종(칭찬)하는 것이 좋다(Ginott & Godard, 2003). 아이가 자기 방을 청소했을 때, 방이 아주 깨끗해졌다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칭찬이다. 하지만 매우 착하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아이를 진정으로 위하는 칭찬은, 어른의 의도대로 아이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이가 성취한 일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 되어 주는 것이다. 인격을 직접적으로 칭찬하는 것은 마치 머리 위에서 곧 바로 내리쬐는 직사광선과 같아서 눈이 부시고 불편하다.
-pp.188-189, 「칭찬의 기술」 중에서
우리 삶에서 없애고 싶은 어두움이 있는가? 나 자신이든 상대방의 문제이든 그 문제에 집중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시선이 주목하는 방향으로 우리는 이끌리게 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자신이 주목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 그동안 문제와 어두움을 주목해 왔다면 이제 해결과 빛을 주목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단순히 시선의 방향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결과가 달라지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 p.232, 「무엇을 바라보는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