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한가득 써 내려간 일기장을 꼭꼭 감추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책상이 필요했다. 친구와 이야깃거리가 떨어질 때까지 편하게 통화를 할 나만의 침대가 필요했다. 정말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내 방에 들어와 모든 걸 내려놓고 펑펑 울고 싶었고, 잠이 올 때 스위치를 끄고 싶었다. ‘우리 방’은 그 역할을 하나도 해내지 못했다.
--- p.17, 「내 방 아니고 우리 방」 중에서
내 집이었다면, 처음부터 내가 이 모든 물건을 내 선호에 따라 살 수 있었다면. 가족들의 의견 없이 내 마음대로 주방부터 화장실까지 집 안 전체를 손댈 수 있다면. 그런 생각들에 사로잡히곤 했다. 언젠가 내 집이 생겨 작은 방 하나를 넘어 집 안 곳곳에 손을 댈 수 있기를 바랐다.
--- p.25, 「자기만의 방」 중에서
잠이 오지 않으면 밤을 새우고, 그러다가 혼자 견딜 수 없는 날이 오면 친구들을 잔뜩 불렀다. 모두가 돌아간 새벽엔 침대에 누워 공허한 천장을 보며 울었다. 벽을 보고 돌아누울 필요가 없는 방이었다.
--- p.29, 「스물셋, 독립」 중에서
그즈음 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살아온 익숙하고도 지겨운 동네를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삶을 환기하길 바랐다. 버스 정류장에 가득 붙어 있는 노선표를 보지 않고도 어디든 갈 수 있고,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때 굳이 휴대폰을 붙잡고 지역 맛집을 찾아보지 않아도 맛이 보장되는 단골집을 찾아갈 수 있는 생활은 편리했지만 권태로웠다. 추억이 많으면 잊고 싶은 기억도 덩달아 늘어나는 법이었다.
--- p.55, 「갈매기가 나는 곳」 중에서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내가 살아지고 있다고 느꼈다. 삶에 목표라는 게 없고, 태어났지만 죽지는 못해 그저 하루하루 살고 있는 ‘살아지는 삶’. 나의 전부이자 내가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인 베베가 세상을 떠난다면 나도 주저 없이 함께 이곳을 떠날 거라고 한동안 입버릇처럼 주변에 이야기하고 다녔다.
--- p.84, 「사는 것과 살아지는 것」 중에서
집에 식물이 있으면 조금 더 부지런해지고, 조금 더 책임감이 생기고, 조금 더 환기와 채광에 신경을 쓰게 되고, 조금 더 행복해진다. 특히나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몹시 긍정적인 경험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 p.155, 「초록 친구들」 중에서
누군가의 기분을 맞출 일도,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를 듣느라 진이 빠질 일도, 상태를 살피며 눈치를 볼 일도, 예의나 격식을 차릴 일도, 멀쩡한 척할 일도 없다. 화나면 화나는 대로, 늘어지면 늘어지는 대로 다 표현해도 괜찮다.
--- p.202, 「혼자 있는 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