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으려는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아주 평범한 대한민국의 청소년입니다. 그들이 가진 특별한 점은 부산 남천동 학원 골목가의 작은 서점인 인디고 서원에서 매주 한 권 이상의 책을 읽으며 함께 토론하고 글을 쓴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청소년으로서 시험에도 직접적으로 연관 없는 공부를 하는 것은 현실과 괴리되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주어진 문제에 답을 찾는 시험기계가 되기보다, 자기 삶의 주인이자 이 세계의 책임 있는 시민으로서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는 인간이 되길 꿈꿉니다.
세계에 일어나는 불의를 외면하지 않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자기 삶의 행복을 위한 첫걸음임을 깨달은 민주시민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세대로서 선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들의 뜨거운 목소리가 조금 더 자유롭게 울려 퍼질 수 있다면, 분명 이 세계는 더 나은 곳으로 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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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언제 집단적으로 결집되는 것일까요? 사회 변혁은 어느 지점에서 촉발될까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우리 사회는 완전히 바뀌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서로에게 더 적대적이어지고, 그 적대감을 적나라하게 표출했지요. 경쟁의 논리는 더욱 공고해져서 이제 무너질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고, 생명보다 자본의 힘이 더 강하다는 것을 경험한 이 사회는 인간다운 삶을 포기한 듯 보이기도 합니다.
점점 더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으로 변해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뿐입니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오랜 투쟁이 법정에서 패배하여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배상액으로 되돌아와 노동자들의 삶을 옥죄고, 여전히 개발이나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돌이킬 수 없는 자연파괴가 일어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16년, 역사상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국정농단의 파행까지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 p.14
제가 생각하는 좋은 시민은 ‘질문’을 많이 가지고 있는 시민이에요. 항상 물음을 던지는 시민이 되어야 하는데, 그 물음이 ‘힘있는 자’들을 당황하게 하고 초조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더욱 좋겠죠. 한 개인의 물음도 나쁘지 않지만, 개인이 아닌 ‘공동체적 물음’으로 이끌어낼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시민이라 생각합니다. 질문이 많다는 것은 더욱 알고 싶어 하는 것이고, 그것은 관심이 있다는 거잖아요. 관심이 있을수록 좋은 사회로 나아가지 않을까요? 반대로 궁금한 점이 없고 물음이 없는 자들이 과연 좋은 사회로 나아가는 힘을 가질 수 있을까요?
--- p.48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상당히 위험하게 들린다. 하다못해 동아리 공간을 빌릴 때도 정치적인 성격의 모임은 안 된다고 못 박을 정도다.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도 그의 책 『하워드 진, 교육을 말하다』에서 “정치에 대한 생각을 드러내는 행위는 교육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솔직하게 표현될 수도 있지만 교묘하게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으니, 정치적 발언이 조심스러운 것이 다만 한국의 일만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중립적 태도를 지니기를 강조하는 교육자뿐만 아니라 거의 전 국민이 ‘정치적’이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한국 사회의 정치에 대한 인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 pp.67-68
가난한 사람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의 고통과 슬픔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크나큰 것일 테지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 가난을 개인의 무능 때문이라 여깁니다. 게을러서, 무식해서, 심지어 천성이 나빠서 가난해진 것이라 말합니다. 노력하지 않아 공부를 못했고,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버젓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이지요. 그렇게 얻은 가난은 다 “네 탓”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가난의 문제는 그를 겪고 있는 사람 탓만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의 삶도 똑같이, 어쩌면 그 누구보다도 치열합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도록 육체적?정신적 노동을 하는 사람보다 땅 투기로 돈을 버는 사람이 더 성실하고 현명한 것이 아니듯,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난은 사회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한 것이 더 많습니다.
--- p.88
단순히 특목고를 폐지하느냐 마느냐, 교육을 하향 평준화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이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학교를 어떻게 하면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자사고, 특목고가 논쟁거리가 되는 이유는 학교의 구조 그리고 입시 제도의 구조가 권력화, 계급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저는 단순히 자사고나 특목고를 폐지하는 방식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고의 수준을 올리되 자사고나 특목고의 본래의 취지를 살리는 정책을 동시에 시행해 특성화 고등학교처럼 완전히 어느 한 부분에 ‘특수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과정이 성적이나 금전적인 문제에 치우치지 않고 진로에 맞추어지지는 않을까요?
--- p.129
왜 서로를 혐오하게 되었는가를 이 세대가 겪고 있는 생애 주기별 우리 사회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오히려 서로와 이 사회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기가 참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좁은 자리를 향한 경쟁 속에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인식해야 했고, 물질적으로 빈곤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미래가 불안정한데 어떻게 감정이 안정적일 수 있겠는가. 이전 세대에는 ‘독재’라는 명백한 악에 대해서 분노를 터트릴 수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디에 ‘분노’해야 할지 모른 채 서로 ‘혐오’하는 형국이 되었다.
--- pp.140-141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갈 주체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첫 번째는 바로 우리 삶이 놓여있는 이러한 총체적 구조를 직시할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총체적 구조란 단순히 선?악으로 구분되는 이데올로기나 정치체제의 대립 형태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전 지구적 인류 문명을 움직이는 힘은 몇 명의 정치 권력자들과 다국적기업을 거느리고 있는 거대 재벌과 같은, 어떤 의지를 지닌 주체라기보다, 그들이 타고 있는 자본주의라고 하는,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고 그렇기에 도저히 길들이거나 제어할 수 없는 거대하고 흉포한 괴물이기 때문이다.
--- p.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