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전설에 등장하는 고린도의 왕 시시포스는 거만한 태도로 신들을 무시하다가 거대한 바위를 언덕 꼭대기로 영원히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았다. 바위를 밀어 올려 정상에 이르면 바위는 다시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져 그는 계속해서 같은 일을 반복해야만 했다.
20세기의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이 전설 속에서 목적 없이 불합리한 삶을 사는 현대인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가 만약 고린도에 보낸 바울의 두 서신을 읽었다면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것은 방향 없이 사는 사람에게 주어진 목표가 뚜렷한 소망의 메시지이다.
1세기의 고린도 교인들은 그리스 전설의 왕처럼 자기중심적이고 거만했다. 그러나 그들은 변덕스러운 제우스 신을 대신해 은혜롭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그리고 그의 종 사도 바울과 관계를 맺었다.
저자와 수신인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의 저자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무리 혹독한 비평가라 해도 이 의견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갈리오가 총독 직을 수행하기 시작한 AD 51년으로 추정된다. 갈리오는 이 해 7월부터 총독 직을 수행했다)중에 고린도를 방문했다(행 18:1~18). 이곳에서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났는데, 이들은 AD 49년 글라우디오 황제가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했을 때 떠났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바울과 마찬가지로 천막을 제작해서 파는 일을 했다. 성경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회심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다. 아마도 이들은 바울을 만났을 때 이미 그리스도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바울과 이들 부부는 영적으로나 민족뿐만 아니라 직업도 동일하였으므로 자연스럽게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바울은 그의 관례대로 회당을 방문하여 예배에 참석하면서 사람들에게 예수의 메시아 되심을 증거할 기회를 얻고자 했다. 회당이 문을 닫으면 바울은 회당 옆 디도 유스도의 집을 찾았다(행 18:7). 디도 유스도는 바울의 설교를 듣고 하나님을 믿게 된 이방 신자로, 고린도 지역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인간적인 시각에서는 ‘과연 고린도에서 많은 성도를 전도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고린도는 예로부터 천박한 물질주의로 악명이 높았다. 초기 그리스 문학을 보면 고린도는 부의 도시오, 비도덕의 온상이었다(호메로스, Iliad 2. 569-70). 플라톤은 창녀를 언급하면서 ‘고린도의 여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Politeia, 404d). 극작가인 필레타이로스는 [호 코린티아스테스]라는 제목의 해학극을 지었는데, 이는 ‘호색가’라는 뜻이다(Athenaeos 13. 559a). 또한 아리스토파네스는 ‘고린도인처럼 행동하다’라는 뜻의 헬라어 동사 코린티아조마이(Korinqia,zomai)를 ‘매춘’과 같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Fragment, 354).
스트라보는 고린도의 부유함과 악은 주로 아프로디테 신전과, 그곳을 섬기는 천여 명의 매음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한다(Geography 8. 6-20).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당시에는 “고린도로 항해하지 말라”는 격언까지 생겼다.
실제로 BC 146년 이후 약 백 년 동안 아무도 고린도로 항해하지 않았다. 고린도는 로마에 항거한 죄로 파괴되었던 것이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겨우 아폴로 신전의 기둥 몇 개뿐이었다. 모든 시민은 죽임을 당하거나 노예로 팔려 갔다.
그러나 지정학적으로도 훌륭한 위치에 있었던 이 도시가 그대로 버려질 리는 없었다. BC 46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고린도를 로마의 식민지로 재건했다. BC 27년 이 도시는 아가야의 행정 수도가 되었다. 후에 바울이 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허락했던 갈리오가 바로 아가야의 총독이었다. 바울이 방문한 AD 51년의 고린도는 여전히 악행이 성행한 곳이었지만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었다.
바울의 고린도 방문과 서신을 보내게 된 경위
바울은 AD 51년 고린도를 처음 방문한 이후에도 몇 차례에 걸쳐서 고린도를 찾았고, 서신도 여러 번 보냈다. 이 만남의 목적과 서신의 성격은 현재 중요한 논쟁거리다. 우리는 성경의 기록을 통하여 사건들이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1. 바울이 고린도에 머문 기간은 1년 반이었다. AD 52년 가을에 그는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여정에 에베소에 들렀다. 에베소에서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 함께 머물면서 알렉산드리아인이었던 아볼로를 가르쳤다. 그 후 아볼로는 고린도에서의 사역를 위해 파송되었다(행 18:18~28).
2. 아볼로가 고린도에서 사역하는 동안(행 19:1) 바울은 제3차 전도여행을 시작하여 AD 53년 가을에 에베소로 되돌아와서 2년 반을 머물렀다(행 19장). 에베소 체류 초기에 바울은 첫 서신을 고린도에 보냈다. 이 서신은 고린도전서 5장 9절에 언급되어 있으며, 고린도 교인들은 이 서신의 내용을 오해하였고(5:10~11), 후에는 분실하고 말았다.
3. 바울은 글로에의 집 사람들을 통하여 이 서신이 오해를 받았다는 것과 고린도 교회에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았다(1:11). 교회 대표로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가 교회를 분열시키고 있는 실제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바울을 찾아온 것이다(16:17). 고린도전서는 바로 이 문제들에 대한 답변으로 쓰여졌으며, 그 시기는 AD 54~55년 경이다.
4. 그러나 이 서신은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했다. 아마도 이 서신을 고린도에 전달한 사람은 디모데였을 것이다(4:17, 16:10). 결국 바울은 두 번째로 고린도를 방문하기로 작정했는데, 고린도후서 1장 15절과 2장 1절에서는 이 방문을 ‘괴로운’ 방문이라고 부르고 있다(참조, 고후 13:1. 여기에서 언급한 바울의 세 번째 방문은 제3차 전도여행의 마지막 여정이었다). 고린도후서 2장 5절과 7장 2절에서 언급된 고린도 교인들의 행동 때문이었다.
5. 바울은 두 번째로 고린도를 방문하고 에베소로 돌아와 서신을 써서 디도 편에 보냈다. 이 서신을 쓸 때 바울은 큰 슬픔에 빠져 있었다(고후 2:4). 이 서신이 고린도 교인들의 치리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고후 7:8~9).
6. 은세공인의 소동이 있은 후, 바울은 디도를 만나기 위하여 에베소를 떠나 드로아로 갔다. 그러나 바울은 디도를 만나지 못한 채 그의 안위를 크게 염려하면서 마게도냐로 떠났다(고후 2:12~13; 7:5). 그리고 마침내 그곳에서 디도를 만날 수 있었다. 디도는 바울에게 고린도 교회의 일반적인 상황이 매우 호전되었으나, 교인들 중 일부는 바울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7. 바울은 마게도냐에서 고린도후서를 썼으며, 곧 이어 AD 56~57년 겨울 동안에 세 번째로 고린도를 방문하였다(행 20:1~4).
서신의 목적과 성격
에베소서가 보편적인 교회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면, 고린도전서는 지역 교회를 강조한다. 교회에서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한다면 고린도전·후서를 읽음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얻게 될 것이다. 고린도전서는 AD 1세기의 교회의 한 단면을 보여 주고 있는데, 이 모습은 성도들의 거룩한 신앙생활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쓰게 된 이유이다. 즉 성도가 성화된 신앙생활을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에 성령의 은사가 충만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의 영보다는 세상의 영이 더욱 세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바울은 이러한 상황이 변하기를 원했다. 바울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서 설명했다.
1. 처음 여섯 장에서 바울은 글로에의 집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된 교회 내 분쟁(1:11)을 바로잡는다. 바울은 이 분쟁을 바라보는 관점과 실제의 일치를 가져오고자 하였다.
2. 7장부터는 특정한 질문들에 답변하고 있다. 이 질문들은 ‘-에 대하여’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결혼(7:1, 25), 자유와 책임(8:1), 영적 은사와 교회의 질서(12:1),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연보(16:1) 및 아볼로의 고린도 사역 가능성 여부(16:12)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3. 15장에서 바울은 몇몇 사람이 부인하고 있는 부활 교리를 다시 한 번 인정, 옹호하고 있다. 바울은 부활을 믿지 못하는 문제가 이상에서 언급된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생각하고, 이 내용을 고린도전서의 클라이맥스에서 다루고 있다.
결국 이 서신의 핵심은 지금까지 다뤘던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과 복음의 능력을 증거한다는 사실이다.
---「서론」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