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도의 예산이 법률과 다른 형태로 확정된다면, 즉 예산의 비법률주의가 채택된다면 예산의 확정 방법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예산이 법률이 아니라면 예산의 확정 방법에 대해 헌법이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행정부와 의회의 예산 의지가 서로 다를 때 이를 절충하는 방법은 헌법에 규정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의원내각제 하에서는 예산에 대해서도 내각불신임, 의회해산, 총선 등의 정치적 절차가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그 해결 방법이 사실상 규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제의 권력분립 체제 하에서 법률과 다른 형태로 예산이 확정되어야 한다면 그 방법에 대해 다양한 변형이 제안될 수 있을 것이다. ---p.28
위원회의 두 가지 중요한 제안, 즉 감사된 계정들의 검토와 보고가 회부되어야 할 하원의 상임위원회가 설치되어야 하고, 또한 정부의 모든 계정은 국왕으로부터 독립되며 의회에 직접 책임을 지는 공무원에 의해 감사되어야 한다는 것이 최종 채택되었다. 전자는 1861년에 이를 설치하는 ‘지속명령(Standing Order)’을 통해, 그리고 후자는 1866년에 ‘국고와 감사부처법(Exchequer and Audit Department Act)’이 통과되면서 채택되었다.
이 법률의 통과는 영국의 근대적 공공지출제도를 확립하는 거의 마지막 단계로 기록될 수 있다. ‘국고와 감사부처’는 감사원에 해당하는데, 거의 100년 뒤인 1983년에 제정된 ‘국가감사법(National Audit Act)’에 따라 ‘국가감사원(National Audit Office)’으로 변경되었다. ---p.69
1921년 ‘예산회계법(Budget and Accounting Act)’이 통과되면서 미국은 근대적 재정제도의 기본 틀을 완성시킬 수 있었는데, 이때부터 미국은 사실상 행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행정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비록 헌법에는 의회가 재정권을 보유하도록 규정하고 있었으나, 대통령이 정부기관의 제반 예산정보를 총괄 취합하는 예산편성권을 보유하였기 때문에, 또 그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과 함께 대통령은 실질적으로 재정권을 주도하였다. 대통령의 이러한 영향력은 1974년에 ‘의회예산 및 지출유보 금지법(Congressional Budget and Impoundment Control Act)’이 제정되기까지 큰 변화 없이 지속되었다. ---p.202
제5공화국 헌법에서 행정부는 자신이 중시하는 의제 또는 사업을 의회에서 조속히 통과시킬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였다. 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의 의회는 행정부 요청법안을 의안 순서에서 나중으로 미루거나, 상임위원회에 묻어두거나, 보지도 않고 개정하거나 또는 이도저도 안 되면 기각시켰다. 반면 제5공화국은 행정부가 원하는 형태로 입법될 수 있도록 최선의 방법인 절차적 수단을 행정부에 제공하였다. 이들은 의안에 대한 지배, 의회 위원회 권한의 제한, 개정사항을 기각하고 무시할 수 있는 권한, 모든 법률안에 신임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권한, 양원을 통과하는 ‘셔틀(shuttle)’ 절차에 대한 통제, 그리고 재정법안의 특수 조항 등을 포함한다. ---p.240
예산에 대한 정치적 합의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의회 내에서 합리적인 예산절차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의회 내에서 예산에 대한 의사결정을 ‘총량수준, 분야별 배분, 분야 내 사업’ 등으로 구분하여 이들에 대한 권한을 각 상임위원회별로 적절히 배분할 때 재정운용에 대한 총괄적인 시각이 견지될 수 있다. 만약 의회 내에서 이와 같은 절차가 확립되어 있지 않다면 의회의 예산심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지 않기 때문에 행정부의 예산권한이 더욱 강화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반면 의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다면 의회의 예산권한을 제한하는 것이 오히려 불합리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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