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글쓰기의 주제는 아버지십니다. 아버지의 가슴에 안겨 푸념하지 못하는 것들만 글에서 털어놓았을 뿐입니다. 글쓰기는 아버지로부터의 작별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기 위한 방책이었습니다. 이 작별은 아버지에 의해 강요된 것이지만, 제가 정한 방침에 따라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글로 쓴 것들은 모두가 변변치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제 삶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이야기할 가치가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예 있는지 없는지조차 식별하지 못할 만큼 하찮은 일이었을 겁니다. 그것이 쓸 가치가 있었던 이유는 오직 그것이 제 어린 시절에 예감으로서, 그후에는 희망으로서, 또 그후에는 절망으로서 저의 삶을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 p.59
아버지께선 제가 어떤 말씀을 드리려 할 때 신기하게도 그 내용을 미리 감지하시는 것 같아요. 가령 얼마 전에도 이런 말씀을 제게 하신 적이 잇지요. '나는 늘 너를 좋아했단다. 겉으로는 다른 아버지들이 자기 자식을 대하듯 다정하게 해주지 못했지만, 그건 다만 내가 다른 아버지들처럼 가식적인 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아.' 아버지, 저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저에 대한 아버지의 따사로운 속마음을 의심해본 적이 없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그 말씀만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버지께서는 가식적으로 행동하실 수 없는 분이에요. 그 말씀이야 옳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는 아버지들의 다정한 행동이 가식적이라고 단언하신다면, 그 주장은 아마 재론의 여지가 없는 독선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독선이 아니라면, 그 주장은 우리 사이의 뭔가 잘못되어 있고, 그 원인-책임이 아닌-의 한쪽이 아버지께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려주고 있지요. 제 생각으로는 후자가 진실에에요. 아버지께서도 사실 그건 그러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아버지와 저의 생각은 일치하는 겁니다.
--- p.17-18
따라서 가족이란 하나의 유기체이긴 하지만 극히 복합적이고 균형이 잡혀 있지 않은 유기체이다. 그러므로 다른 유기체들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균형상태를 추구하지. 앞에서 말한 저 '가족이라는 동물적 유기체'는 균형 잡힌 상태를 필요로 하지. (....)그래서 아이들이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모와 대등한 위치에 놓이게 되면 마침내 진정한 균형이 가능해진단다. 동시에 그것은 사랑의 균형이야.
--- pp.177-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