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는 20세기에 21세기를 앞서 준비했거나 먼저 살아간 이들로 스무 명을 꼽았다. 물론 더 많은 새로운 세기의 사상가, 실천가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길지 않은 책에서는 우선 우리 사회의 이웃들에게 시급히 알리고 재평가를 주문하고픈 20인에 주목했다. … 이들 사상가가 남긴 묵직한 메시지가 현재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가며 새로운 미래를 기획하는 사업에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에 출간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혼돈과 전환의 시대이자 위기와 기회의 시대인 지금, 지난 100년의 자원이 다음 100년을 준비하는 데 지적·실천적 무기가 되어줄 수 있음을 확인하기를 바란다. --- p.11-12
실비아 팽크허스트의 시대만큼이나 오늘날에도 억압받는 자들의 연대는 쉽지 않다. 생존 경쟁으로 점철된 신자유주의를 거치면서 이제는 누구나 자기가 남보다 더 고통받는다고 강변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대중은 분열되고 사회운동 간의 거리는 멀어지기만 한다. 이것이야말로 99%가 아니라 1% 쪽으로 기울어진 전 지구적 세력 관계를 공고히 하는 토대다. 이 단단한 세력 관계는 오직 여성과 노동자가 한 방향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내고, 북반구 노동자가 남반구 민중의 외침에서 자기 이야기를 찾는 순간에야 흔들릴 수 있다. --- p.33
안창호 정신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기초일 뿐만 아니라 거울이기도 하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던 해부터 2019년까지 100년간, 한국은 민족공동체를 재건하고 강한 국가를 만들자, 그러기 위해서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고 민족의 역량을 배양하자는 ‘안창호 정신’으로 달려왔기 때문이다. … 하지만 그간 한국을 이끌어온 지도 이념은 어디까지나 ‘부분적인’ 안창호 정신이었다. 개별자의 인격적 성숙과 정신적 자립을 그 무엇보다 중시했던 안창호의 정신을, 민족의 공익을 위해 집단 간 분열을 넘어서고 평등국으로 이행하자고 했던 안창호의 정신을 우리는 2019년인 지금에도 다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p.48
안데스 산맥에 거주하던 선주민들은 아일루 ayllu 라는 농경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 아일루 안에서는 토지를 공유했고 모두 협력해 경작했다. … 마리아테기는 이를 인디오 농민들 사이에 잔존한 원시 공산주의라 파악했다. 그가 보기에 이는 사멸할 수밖에 없는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페루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선 새 사회를 건설하는 데 중요한 토대였다. 자본주의 ‘이전’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이후’의 씨앗이라는 것이었다. 마리아테기의 주장에 따르면, 인디오 촌락에 남아 있는 공유와 연대의 전통은 현대적 협동조합으로 발전할 수 있다. 여기에 도시 노동계급의 힘이 합쳐진다면, 페루는 유럽과는 다른 경로로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 --- p.62
솔트는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 즉 자기의 진정한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인간에게도, 다른 동물에게도 똑같이 최상위의 도덕적인 성격의 삶의 목적”이라고 단언한다. … 솔트는 이와 같은 주장을 전개하면서 당시 동물에 대한 폭력이 광범위하게 자행되던 영국 사회에서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심리적 기제 역시 문제 삼는다. 그가 보기에 고문자나 폭군이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폭력의 피해자와 자신이 동족 kinship 이라는 느낌이 없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최대한의 ‘심리적 거리두기’야말로, 악의 실행을 세계에 가능하게 하는 악의 근원자라는 말이다. --- p.139
신다윈주의자들의 입장은, 오직 자기 복제(후세대 생산)에 ‘적합한’ 유기체나 그룹이 (자연환경에 의해) 선택된다는 것, 이 과정에서 이기적 유전자가 결정적인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린이 보기에 이것은 맹랑한 소리에 불과했다. … 박테리아는 의식을 갖춘 존재, 선택하는 존재, 공생에 능한 존재였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지구상의 모든 유기체는 박테리아가 기본이 되는 공생체이자 공생 과정이었고, 그런 유기체는 무기체와 긴밀히, 부단히 얽혀 있었다. 따라서 자연선택의 단위는 결코 단일 요소가 결정적 힘을 행사하는 단일 단위일 수 없었다. --- p.167-168
란다우어는 새로운 혁명관에 도달한다. 혁명은 물론 기존 정권이나 체제를 타도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혁명은 새로운 정신이 탄생하고 이 정신이 대중들 사이에 깊이 스며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새로운 공통 정신의 등장으로 기존 질서는 와해되고, 이 정신은 마치 중세에 기독교 신앙이 그랬듯 새 질서의 토대 구실을 한다. 유토피아가 결국 토피아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피한 법칙이더라도 유토피아의 순간, 즉 혁명이 소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혁명은 정신을 남기기 때문이다. --- p.226-227
김성숙이 남긴 것은 오두막만이 아니었다.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하면서 장지락과 함께 나누었던 고민 또한 남았다. … 오늘날 기성 제국 미국과 신흥 강국 중국 사이의 긴장이 예사롭지 않다. 누구는 이를 대반전이라 반기고 누구는 익숙한 상전의 옷자락을 잡으려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김성숙의 고뇌와 결단이다. 패권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우선 한국 민중이 숨 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지혜와 인내, 용기를 총동원해야 한다.
--- p.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