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독자들로 하여금 철학자들과 더불어 섭생과 관련 있는 여러 주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령 진정한 와인 감별은 가능할까? 슈퍼마켓에서 장을 볼 때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면,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를 조종하는 모든 유혹의 목소리에 저항할 수 있을까? 혹시 나도 채식주의자 대열에 합류해야 하는 건 아닐까? 다도는 어떤 관념 혹은 어떤 이상을 함축하고 있을까? 요리를 하나의 예술로 간주할 수 있을까? 유명 셰프들의 명성은 과장된 감이 있지 않을까? 이외에도 생각해볼 거리들은 산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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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시음할 때면 우리는 자기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음을 알리기 위하여 현란한 단어들을 동원하는 ‘전문가들’ 앞에서 기가 죽고 만다. “뭔가에 대해서 언급할 수 없다면 침묵을 지켜야 한다”는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년)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는 그러한 느낌을 겉으로 드러내지도 못하고 그저 마음속에 담아둘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입이 느끼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제대로 표현할 역량이 없다고 믿는다면 그건 우리의 판단력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 p.12
이러한 종교적 관점에 따르면, 육체는 지상에서 사는 동안 영혼을 가두는 일시적인 감옥이다. 또한 육체는 본질적인 것으로부터 우회하도록 유도한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잠을 자고, 성관계를 갖고, 음식을 먹는 등 육체만의 고유한 필요에 의해 영혼의 앞길을 막아서는 장애물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우리는 육체의 기쁨을 거부함으로써 정신의 기쁨을 얻을 수 있다”고 쓴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 p.55
로컬 푸드 소비라는 개념을 고전적인 경제 원리의 관점에서 살피면 상당히 씁쓸한 역설에 봉착한다. 로컬 푸드 소비 지지자들이 내세우는 주장이 그릇될 뿐 아니라, 심지어 본래 목표했던 것과는 전혀 반대되는 효과를 초래하고, 일자리도 줄어들게 하며, 식품 안정성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고, 오염도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 한 가지 분명하게 해둘 점은, 식품 운송으로 인한 온실 가스 배출량(GES)은 전체 GES의 4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지역 시장으로 물건을 사러 가기 위해서 소비자와 생산자, 즉 구매자와 판매자가 각자 자가용을 이용할 테니,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아마도 대규모 식품 유통 업체 체제보다 약간 더 많은 GES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다.
--- p.79
우리가 동물을 대하는 방식에 관한 성찰이 실제 함축하는 내용은 정말 엄청나다. 가령, 그 방식에 따라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느냐마느냐 여부가 결정될 수 있고, 동물을 오락이나 유흥의 목적으로 이용해도 좋은지, 동물로 옷을 해 입어도 되는지, 동물 사냥은 허용되어도 좋은지 등이 합의된다. 여기엔 물론 우리가 그것을 먹어도 되는지의 문제도 포함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그 동물들이 어디서 오는지, 오늘날 그것과 함께 먹는 다른 동물성 식품들이 어떻게 태어나서 자라는지 알아야 한다. 이 동물들의 고통은 때 이른 죽음과 동의어다.
--- p.107
“슈퍼마켓에 들어오자마자 거의 언제나 과일과 채소를 제일 먼저 만나게 된다는 것쯤은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으리라 믿어요.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한 번 알아 맞춰볼래요?”
“예쁘니까!”
“진짜 그렇군요.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죠.” 로라가 말한다.
“여기 이렇게 영리하게 진열되어 고객에게 제공되는 이 모든 과일과 채소, 흠이라고는 (거의) 전혀 없고(솔직히 그런 이유 때문에 그 위치에 놓이게 되었을 테지만), 우리가 마음대로 만져보고 선택할 수 있는 이 물건들은 우리가 슈퍼마켓이라는 공간, 다시 말해서 주로 산업 생산 제품들을 판매하는 공간 안에 있음을 잊게 만든다고요. 이 과일과 채소들 덕분에 우리는 거의 예전에 드나들던 식료품점, 우리가 마음대로 물건을 고를 수 있었던 가게에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거든요.
그뿐 아니라, 요즘 세상에선 누구나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죠. 따라서 우리는 초입에서 건강을 챙긴다는 이 중요한 임무를 일단 해치우고, 이어서 더 중요한 일로, 그러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상인들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말이 될 테지만, 아무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겁니다. 이를 테면 숙제를 미리 했으니 별다른 양심의 가책 없이 다른 물건들을 사들일 수 있게 되는 거라고요.”
--- p.131~132
그러나 선 사상은 직접적으로 의식에 도달하려는 것이며, 좀 더 정확하게는 각자 안에 현존하고 있으나 무엇이든 개념화하려 하고 자신을 외부와 분리된 총체로서 독자적인 대상으로 생각하려는 우리의 본성에 가려진 충만한 의식에 이르고자 하려는 것이다. 선 수행이란 자신의 몸짓과 활동, 지향하는 목표를 일치시킴으로써 이원성과 일시적인 선형성을 뛰어넘어 지속적으로 일상적인 행위를 영위하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는 존재와 우주 사이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융합이 있다는 뜻이며, 따라서 식탁에서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살기 위해서는 절대로 하찮게 취급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p.155
따지고 보면 분자요리는 똑같은 질감과 맛, 색상을 지녔으면서 그것을 먹는 자들에게 똑같은 느낌을 자아내기 위해 동물 혹은 식물의 조직이 아닌 화학적 요소를 요리에 첨가하는 요리법으로 정의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분자요리에서는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의미에서의 식품의 조리는 잠시 제쳐두고 그보다는 그 식품의 구성 요소들의 새로운 배합에 주의를 기울인다. 티스는 이러한 요리법이 자원(특히 물)을 아낄 수 있을 거라고 예견하면서, 그런 식으로 확산되어나가면 결국 세계의 식량 문제도 해결하게 되리라고 내다보았다.
--- p.197
테이블에서의 즐거움은 자연적인 것에서 벗어나 문화적인 것에 접속하게 해준다. 테이블에서의 즐거움은 그 세련미와 함께하는 먹는 즐거움과 그로 인한 만족감으로부터 발생한다. 브리야-사바랭은 이 두 가지 즐거움을 명확하게 구별한다. 즉 테이블에서의 즐거움은 우선 우리의 필요, 그리고 그 필요를 충족함으로써 얻어지는 만족감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다.
이 즐거움은 실제로 필요가 충족되는 순간보다 선행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하여 기대를 품게 만드는 식으로 표현된다. 예를 들어 멋진 식사 시간이 가까워진다는 생각에 식욕이 샘솟거나, 앞으로의 기쁨이 증폭될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식욕을 억제하는 것이다.
--- p..227~228
사르트르는 해산물이라면 질색이었고, 채소도 좋아하지 않았으며, 사람의 손으로 요리하지 않은 음식이라면 모조리 싫어한 반면, 달걀 요리만큼은 몹시 즐겼다. 그리고 전해지는 소문에 따르면, 카페 드 플로르에서 벌어지는, 자크 프레베르와 그의 형제 피에르, 앙토냉 아르토 또는 보리스 비앙 같은 이들의 행색을 특히 더럽게 만들었던 전설적인 달걀 전쟁도 퍽이나 재미있어 했다고 한다.
--- p.256
각 문화마다 고유한 섭생 관습과 세계보건기구에서 권유하는 사항, 이른바 다른 것들보다 건강에 훨씬 낫다고 자처하는 식품들, 예전부터 있었거나 영양학자들이 최근에 새로이 발견했다고 하는 각종 다이어트 방법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솔직히 뭘 어떻게 해야 좋은 건지 알기란 매우 어렵다. 아폴론적으로 먹어야 할까, 디오니소스적으로 먹어야 할까?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우리가 먹을 음식을 머리로 택해야 할까, 가슴으로 택해야 할까? 엄청나게 영리한 꾀돌이가 아니고서는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기 힘들다. 지금 상태 그대로의 식생활 세계와 매일 우리 식탁에 오르는 식품을 어떻게 화해시킬 것인가?
--- p.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