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에서 도를 행하는 요체이자 지극한 최상의 원리로서 인간의 선한 행위의 표준이 되는 ‘중中’이란 무엇인가? ??설문??에 따르면 “중中은 ‘곤?’과 ‘국?’으로 구성되어 사방으로 둘러싸인 안(?)의 가운데를 관통(?)함을 나타내는 지사문자 혹은 씨족사회를 상징하는 ‘깃발(幟)’을 의미한다. 나아가 중中은 치우침(偏)과 구별되면서도 다른 것들과 알맞은 상태(合宜)에 놓여 있는 것을 말한다. 결국 ‘중中’이란 자타·내외의 연관성에서 판단·설정되는 것이며, 자기의 변동에 따라 외변의 한계가 달라지고, 또한 외변의 변이에 따라 중의 위치도 옮겨질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고정된 불변의 어떤 것일 수 없다.
---「2장. 유교란 무엇인가?」중에서
그렇다면 하늘의 명령으로 우리가 품부 받고 태어난 본성의 덕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은 차갑고, 불은 뜨거운 본성을 타고 났듯이, 인간의 본성은 인仁하다고 유가는 주장한다. 따라서 사람에게 필수적인 것을 배우면서 가르치는 인문주의를 표방하는 유학(교)에서는 인을 통한 자기 정립이 가장 중요하다.
---「2장. 유교란 무엇인가?」중에서
공자 이전에는 일반적으로 인간은 생물학적 몸(生) 혹은 혈통(姓)에 의해 금수와 구별되었다. 그러나 ??논어??에서 공자가 최초로 ‘성性’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자연적·생물적 신체 혹은 혈통의 차원을 넘어, 그것을 주재하여 자신의 의미를 실현하는 인간의 자기정립을 문제시하는 계기를 마련되었다. 즉 성 개념이 제기·정립됨에 따라, 이제 인간은 동물과 공유하는 식·색·안일과 같은 신체적 욕망을 추구하는 생물학적 존재의 차원을 넘어서는 인간의 고유본성과 그 본성에 따르는 인간의 길과 인문세계를 추구할 단서를 마련했다.
---「3장.『논어』에서의 마음」중에서
적어도 시간적·역사적·사이의 존재로서 여타 존재자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자기의 완성을 기도하는 인간은 수직적-전승적인 과거·미래와 수평적-공간적 사회관습에 착안할 때, 상대적으로 자기존재의 결핍과 그 충족을 통한 완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여기서 지혜사랑의 철학이 인간에게 가능하며, ‘지혜사랑’이란 “불안전한 정신이 완전한 정신에 도달하기 위한 자기초월적 귀향편력(mentis itinerarium ad deum)”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4장. 공자, 인간 본성과 인간의 길을 제시하다!」중에서
서恕의 원리는 칸트 정언명법의 제1원리 즉 ‘보편법칙의 정식’인 “그대의 행위의 준칙이 그대의 의지에 의해서 보편적인 자연법칙이 되는 것처럼 행위하라!”는 언명, 그리고 목적 자체의 정식 즉 “그대의 인격 및 모든 타인의 인격에서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우하지, 결코 단순히 수단으로서 사용하지 않도록 행위하라!”고 하는 공평성의 원리 또한 함축한다. 보편화가 가능하다는 것은 엄밀한 학적 객관적 윤리학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도덕 행위의 주체가 목적적 존재라는 것은 도덕성의 근거 정립을 가능하게 해준다.
---「4장. 공자, 인간 본성과 인간의 길을 제시하다!」중에서
주자의 ?격물치지론?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는 존재(대상)가 무엇인지를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을 때에, 비로소 그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알고 있지 않다면, 물음 자체도 불가능하다. 이러한 논리적 순환성은 형식 논리학의 측면에서 보면 역리라고 하겠지만, 이 순환성은 우리 인간의 모든 인식 활동의 본질적인 한계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탐구 활동에 원동력과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그 긍정적인 성격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6장. 『대학』, 큰 배움의 이념과 방법을 제시하다!」중에서
지知자는 시矢(화살) + 구口로 구성된 회의자로 많은 것을 알아서 화살처럼 빠르게 입을 통해 표현한다는 뜻이다. 이와 비교되는 것이 지智자이다. 지智자는 일日이 뜻이 되고, 지知가 성부聲部를 구성된 형성자로 진정한 지혜를 뜻한다. 지혜란 개별적인 앎에서 출발하여 그 앎들을 관통하는 원리들을 발견하여 훤하게 밝아져(日 - 豁然貫通) 자신의 것으로 체득된 상태를 말한다.
---「7장. 『중용』에서 마음」중에서
일반적으로 선이란 악과 상대되는 개념으로 도덕 실천상의 가치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유교에서는 악이란 독자적 실체가 아니라, 품부된 본성을 온전히 실현하지 못하거나 왜곡하는 것이다. 예컨대 도덕적 선이란 하늘의 도를 계승하는 것(繼之者善) 곧 인간이 천으로 부터 부여받은 인성을 남김없이 실현하여 천의 화육·역운에 동참하는 것이라면, 악이란 선의 결핍으로서 부여받은 인성을 왜곡하거나 온전히 실현하지 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8장.『중용』, 유교 윤리를 정립하다!」중에서
전국 시대의 맹자는 당시 사회와 시대상을 통탄하고, 당시 인간들의 방심과 인간성 상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역사의식에 충만하여 공자의 도를 계승·수호자를 자임한 인물이었다. 그는 위대성은 피폐한 인간 현상에서부터 인간 마음과 그 본성이 악하다는 부정적·비관적 결론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악한 인간 현상은 선한 본 마음의 상실에 기인한다고 진단하면서 그 본성의 회복에 진력한 데에 있다.
---「10장. 『맹자』, 인간 본성의 선함을 증명하다!」중에서
마음은 그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그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이는 분명 형식 논리적으로 순환성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 된다. 이러한 순환성은 이미 플라톤이 시적詩的으로 묘사한 바 있듯이, 인간 인식 활동의 본질적인 한계인 동시에 적어도 인간의 자기-이해에서 원동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사태를 현대 철학에서는 ‘해석학적 순환성hermeneutische Zirkel’이라고 말한다. 즉 적어도 인간 마음의 자기이해는 자신의 선이해와 ‘학學과 반성反省’의 상호 침투와 상호 보완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는 방식 이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
---「10장. 『맹자』, 인간 본성의 선함을 증명하다!」중에서
오늘날의 주도적인 심리철학은 (금수와 구별되는 고유한 인간의 본성을 정립하는) 맹자적인 인성론이 아니라, (생물학적·자연주의적인) 고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진화론과 20세기에 행동주의 심리학이 발흥한 이래 인간과 동물간의 질적 차이, 본성간의 차이는 완전히 말살되었다. 즉 현대 주도적인 실증 심리학에서는 인간을 단지 ‘상대적’으로 보다 진화된 동물로 보거나 혹은 ‘인간의 사고’를 기껏해야 ‘작동하는 컴퓨터’에 유비하고 있을 따름이다. 우리가 볼 때, 이는 고자의 현대적 부활을 의미한다. 고자가 부활한 이 시대에 과연 맹자가 말한 인성은 진정 다시 의미 있는 재구성될 수 있을 것인가? 바로 여기에 인성을 상실하고 동물과 같은 본성을 지니는 것으로 파악되는 인간이 진정 부활할 수 있는 관건이 가로 놓여 있다.
---「11장. 맹자와 고자, 인성을 두고 최초로 논쟁하다!」중에서